인월고원
지리산 자락 삼정봉을 넘어 해가 뜨고,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달빛에 물들기 시작하는 인원고원은 예로부터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던 묵객들이 소회를 남기는 원고지였다.
인월 사람들에게 달은 할아버지, 아버지를 이어 온 소망이자 기다림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이면 연을 날리고 마음에 달을 하나씩 품으니 모여 인월의 인심이 되었다.
인월의 지정학적 위상 변화
인월은 삼한시대 진한에 속하였고, 고려 태조 23년(940)에 역원(驛院)이 설치되며 운봉헌 인월역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팀에 의하면, 인월역은 서쪽의 운봉·남원 방면과 동족의 함양 냉면을 연결하는 교통로였는 데 서쪽으로는 남원 응령역, 동쪽으로는 함양 제한역과 연결되었다.
인월역은 고려시대에는 남원도(南原道)의 소속 역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오수도(獒樹道)의 소속 역으로 편제되기도 하였으며 역노 15명, 역비 13명, 역마 4마리가 배속되어 있었다.
갑오개혁으로 인월역은 폐지되었다.
문헌상 기록으로 미루어 인월이란 아름이 지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940년경 부터로 추정된다.
흥부전의 시작
인월은 우리나라 판소리의 효시이자 고전소설의 백미인 흥부전이 태어난 곳이다.
함양과 경계한 인원 성산마을에서 태어난 흥부가 많은 질곡을 이겨내고 오봉산을 넘어 봉화 산 아래 복덕촌을 찾아가는 '역전의 인생역정이 흥부대박 길(14km)로 남아있다.
인월 속 가야와 삼국시대
유곡리 성내마을에는 가야 고분군이 있는데 이는 우리 인월이 당시 운봉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기문가야의 영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 인월은 신라와 백제의 접경 지역으로서 아영의 성리에서 시작된 성리산성의 동북쪽 토성이 있었던 성내마을이나 합미성(속칭 할미성)의 북쪽에 있었던 성산마을의 지명은 삼국시대의 흔적을 말해준다.
마을이 품고 있는 역사의 흔적
중군(中軍): 임진왜란 시 전.중.후, 선봉대 중 규모가 큰 중군 주둔지
서무(西茂): 고려말 왜적퇴치를 위한 이성게 부대의 서쪽 매복지, 피바위 (람천)
동무(東茂): 고리말 왜적퇴치를 위한 이성계 부대의 동쪽 매복지
사창(社倉): 구휼미를 비축하던 관리청이자 창고이면서 이성계 부대의 군량미 창고
유곡(四谷): 대장군석이 있음 (과거 사찰의 유물로 추정)
성내(城內): 신라, 백제의 접경지대로서 신라에 속했음
상우(上牛): 조선시대 군사 주둔지
성산(城山): 팔랑채(513m. 임진왜란시 조경남 장군 등 8명의 장수가 왜적 퇴치)
달빛으로 이긴 싸움, 이성계의 한산대첩
1380년(고려 우왕5년) 영남을 거쳐 북진을 하던 왜장 아지발도를 황산(荒山)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성계 장군이 하늘을 우러러 "이 나라 백성을 굽어 살피시며 달을 뜨게 해 주소서" 하고 간구하니 칠흑 같은 그믐밤 하늘에 어디서 솟았는지 보름달이 천지를 밝혀주었다.
이 때를 노려 이성계 장군의 화살이 적장의 목을 꿰뚫었다.
이에 기세가 오른 아군이 왜군을 섬멸하니 람천에는 적들이 흘린 피가 흥건하였는데 그 핏자국이 바위에 남아 있다.
이 승리를 기념하여 황산대첩비가 세워졌는데 이는 우리 역사상 보기 드문 승전이었다.
이성계 장군이 달을 끌어 올렸다 하여 이 곳을 인윌(引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홍부대박길
흥부놀부의 출생지인 인월 성산마을에서 윗까막제골 옆 산림도로를 넘어가면 흥부가 박을 타서 부자가 된 마을인 봉화산 아래 아영 성리로 연결된다.
흥부의 인생역정을 말해주는 고난길-희망길-고진감래길이 이어지는데 총 14km이다.
지리산둘레길
민족의 명산 지리산을 두른 산길과 마음들을 만날 수 있다.
살아온 날들을 성찰하고 살아 갈 날들에 대한 명상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지리산 둘레길은 인월에서 출발한다.
달 벚꽃길
람천 뚝방 길을 따라 걸으면서 삼정산을 넘어오는 달을 보면 하늘의 세계를 옮겨놓은 듯한 활홀경에 빠진다.
노인요양시설인 경애원 뒤에서 부터 선인들이 달맞이를 하며 음풍농월하던 영월정까지 2km 벚꽃길은 비록 거리는 짧지면 달과 함께하는 감동은 길다.
구수한 사람들의 풍물장터
예로부터 인원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풍물 장터였다. 지리산에서 나온 약초와 산나물을 비롯하여 경상도에서 올라온 수산물들과 소금들이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운봉과 함께 판소리 광대들의 굿마당이 벌어졌는데 5일장 풍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전통시장 3일 8일) 지리산으로 가는 관문이지 경상도로 넘어가는 길목인 인월은 할머니가 담은 된장
처럼 구수한 고을이다.
토속 먹거리 그 별미
3일과 8일에 장이 서는 전동 전통시장에는 계절마다 다른 산나물들과 약초들이 팔린다.
투박한 인월말씨가 오가며 에누리의의 정을 주고 받는 전통시장은 조선시대 역참(인월역)이 있었던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역주민들이 애써 가꾼 농산물이 직거래되며 걸쭉한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목로주점도 남아 있다.
흑돼지, 염소탕, 자라탕, 순대국밥, 어죽, 순두부, 청국장. 추어탕은 인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라고 하겠다.
신기마을 숲 : 이 숲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토성을 쌓고 조성된 숲이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와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10km의 지리산 둘레길.
남쪽으로는 정령치, 고리봉, 바래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바라보고 북쪽으로는 수정봉, 여원재 그리고 고남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조망하며 걷는 길이다.
이 길은 옛 통영별로 길과 람천변의 제방길이 연결된 폭이 넓고 평이한 길이다. 운봉 일대의 역사문화 유산을 즐기며 걷기에 좋은 구간이다.
운봉읍 : 운봉들판은 고산지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모내기를 한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 다툼이 있던 지역으로 조선시대까지 운봉현이 있던 곳이다.
석장승 : 운봉 석장승은 서림공원, 서천, 북천에서 볼 수 있는 돌로 만든 장승이다.
신기마을 숲 : 이 숲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토성을 쌓고 조성된 숲이다
당산은 마음의 수호신인 당산신(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을 모시고 마음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남원 서천리 당산에는 남녀 한 쌍의 돌장승이 서 있다.
외형상으로는 남녀를 구분하기 쉽지 않은데 북쪽에 서 있는 장승이 남장승, 남쪽에 서 있는 장승이 여장승이라고 전해진다.
각각의 돌장승에는 '방어대장군(防御大將軍)',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뜻이다.
두 장승은 모두 수염이 있고 벙거지를 썼는데 남장승인 방어대장군은 귀가 없다.
두 장승이 부부 싸움을 하다가 진서대장군의 목이 부러져 마을 사람들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원 서천리 당산의 돌장승은 마을을 수호한다는 신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서민의 소박한 표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민속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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