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전라남도

선암사~송광사(선암사~장박골삼거리) 1-2 2023.08.13

방극만 2023. 8. 14. 10:16



08:02 선암사 주차장에서 출발
08:26~08:52 선암사 투어
08:52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선암사 좌측 대각암 300m 전 입구로
08:53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08:58 대각암 삼거리
09:00 작은굴목재 ㆍ비로암 삼거리
10:17 행남절(향로암) 터
10:58~11:43 조계산 해발 888m의 장군봉
12:05 접치삼거리
12:23 장박골삼거리
12:47 연산봉사거리
13:05 연산봉 해발 851m
13:31 송광굴목재에서 송광사로 계속해서 내리꽂는 길과 옆 계곡을 따라 내려 가다.
14:33 연산봉4거리에서 출발해서 오는 길과 마주하는 토다리
14:51 수석정교 삼거리
15:02 송광사 도착


  선암사의 입구 격인 승선교[3]와 강선루.
뒷간과 더불어 절을 대표하는 구조물이다.


  삼인당
알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을 한 이 연못은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 짐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이며, 현재 한국불교 태고종의 유일한 수행 총림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역사[편집]
백제 성왕 5년(527년) 현재의 비로암지에 초창주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처음 사찰을 창건하였고, 산 이름은 청량산(淸凉山), 사찰 이름은 해천사(海川寺)라 하였다.

신라 말 이창주인 도선국사가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지금까지 쓰이는 이름 선암사로 지었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으며, 지금도 이들 중 1철불 2보탑 3부도가 전한다.

고려 중기 삼창주인 대각국사 의천이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였다. 대각국사는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였고 선암사는 호남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대각국사 중창건도기에 의하면 당시의 중창은 법당 13, 전각 12, 요사 26, 산암 19개 소등의 방대한 규모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김극기(1171-1197)는 시에서 "적막하고 고요한 수행의 사찰"이라고 묘사했다.

조선 전기 선암사가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중종 35년(1540년) 일주문을 중수했다는 기록만 남았을 뿐이다. 선암사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1597년 정유재란 때 큰 피해를 입었는데 모든 전각이 불에 타고 철불, 보탁, 부도, 문수전, 조계문, 청측만이 남았다고 전한다. 현종 1년(1660년) 경준(敬浚), 경잠(敬岑), 문정(文正) 등 세 승려가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간 크게 중창했지만 전쟁 이전의 사세를 복구하기에는 무리였다.

선암사의 중창불사를 마무리한 이는 호암약휴(護巖若休) 스님이었다. 호암은 승선교를 비롯하여 워통전 불조전 등을 만들었다. 중창 이후 법당 8채, 전사(殿舍) 12차, 중료(中寮) 16채, 산암 13채를 갖추고 선적암(善積菴), 도선암(道詵菴) 등을 부속암자로 두었다. 그러나 영조 35년(1759년) 봄에 선암사는 또다시 화재를 만나 큰 피해를 입었다. 상월새봉(霜月璽封) 스님과 서악(西岳) 스님이 이듬해(1760년) 재건불사를 시작하였다. 이는 아도화상 이래 도선-의천-경잠-경준-문정-호암의 뒤를 이은 오창(五創)이라 할 수 있다.

상월새봉 스님은 중창불사뿐만 아니라 1734~35년에 두 차례 화엄대법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참가한 1287명의 명단이 선암사 해주록(海珠錄)에 전한다. 그리고 상월스님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1761년 산 이름을 청량산, 사찰명을 해천사로 개칭하였다.

정조 13년(1789년)에 임금이 후사가 없자 눌암스님이 선암사 원통전에서 해붕 스님이 대각암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1790년 순조 임금이 태어났다. 이후 왕위에 오른 순조 임금은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이라고 쓴 편액[4]과 은향로, 쌍용문가사, 금병풍, 가마 등을 선암사에 하사하였다.

순조 22년(1798년)에는 승중문음(僧中文音)으로 유명한 해붕전령(海鵬展翎)이 칠전(七殿)을 중창하였다. 순조 23년(1823) 3월 30일 실화로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동의 건물이 불에 타자 다음해부터 해붕(海鵬), 눌암(訥庵), 익종(益宗) 스님 등이 6번째 중창불사를 하여 현재의 가람 구조를 갖추었다. 그리고 산명과 사명을 다시 복칭(複稱)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함명태선(涵溟太先)-경붕익운(景鵬益運)-경운원기(景雲元奇)-금봉기림(錦峯基林) 등 4대 명강백을 배출하였다.

  1919년 조선총독부가 본발사법으로 전국의 사찰을 30본산으로 지정했을 때 선암사는 전남의 4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어 순천, 여수, 광주 지역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전성기 시절에는 건물 100여 동이 있었으나 여순사건 당시 40여 동이 소실되었고, 남은 건물들도 이후 6.25 전쟁으로 꽤 많이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만 남았다. 게대가 후술되는 조계종과 태고종과의 갈등으로 지금까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 갈등 때문에 예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선암사 일원은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고, 2018년 6월 30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돌기둥[6]에는 8·15 해방 후 조선불교의 초대 교정(종정)을 지낸 대단한 학승인 박한영 스님이 지은 계송 댓구가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글씨도 좋지만 내용이 이 절집에 딱 맞아 지날 때마다 소리내어 읽어보게 된다.
放出曹磎 一派淸 방출조계 일파청 / 劈開南岳 千峯秀 벽개남악 천봉수
번역해보면 “조계(육조 혜능)스님이 나타나자 온 물결이 맑게 되었고, 남악(회양懷讓)스님이 등장하자 일천 봉우리가 빼어나게 되었네”라는 뜻이다.

선암사의 선암매
  원통전,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50주 정도가 있는데 원통전 담장 뒷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600여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192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간판을 ㅅ계 합용병서를 넣어 우횡서(오른쪽에서 왼쪽을 읽어가는 방식)로 써서 'ㅅ간뒤(발음은 뒤깐)'로 쓰여져 있다.


  소유권 분쟁[편집]
태고종 본산이지만 조계종에서 재산의 소유권을 가지면서 1960년대 이후 양 측의 갈등이 심해졌다. 심지어 관리 권한은 1970년대부터 순천시에 있는 등 관리 주체가 꼬여 하단의 불상 실종 사태 등 여러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현재도 사찰의 직접적인 운영은 태고종이, 문화재 구역 입장료 징수는 태고종과 조계종이 공동으로 하는 이원적인 상황이 지속 중이다.

그러다가 결국 순천시가 권리를 반납하면서 태고종과 조계종의 법정 다툼이 벌어졌는데, '태고종 선암사'가 '조계종 선암사'[5]에 재산권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2011년 2월 “조·태 분규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선암사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불조 혜명을 잇기 위해 분규종식을 선언한다”고 합의하고, 1966년부터 순천시가 가지고 있던 선암사 재산관리권을 인수했다. 양측의 합의로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조·태 분규는 사실상 마무리됐으며, 선암사는 조계종과 태고종이 공동 관리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듯 했지만, '조계종 선암사'가 순천시를 상대로 실질적 소유자 동의 없이 건립한 '차 체험관'을 철거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양 측의 갈등이 더욱 커졌다.

2014년 1심에서 "태고종의 소유권을 인정한다." 하는 판결이 나왔다. 조계종은 판사가 불교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며 반발하여 항소하였다. 이어 2015년 2심에서는 "40년간 태고종이 관리하고, 이후 조계종에 반납한다."라고 화해 권고를 했으나, 양 쪽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 거절하였다. 결국 해당 소송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는데, 2020년 12월 24일 대법원은 '조계종 선암사'의 실체를 사실상 부정하며 파기환송을 시키면서 다시 광주지방법원으로 넘겼다.

이후 2022년 7월 20일 광주지법 대법원 파기환송심 결심 판결에서도 태고종 선암사가 승소했고, 11월 17일 대법원에서 조계종 측 항고를 모두 기각하며 태고종이 최종적으로 승소하였고 선암사에 대한 소유권이 태고종에 있음을 인정하였다.

2023년 6월 15일, 조계종은 2심 판결이 종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민사사건처럼 판단해 문제가 있다며 재심을 신청했다.

이와는 별개로 '태고종 선암사'가 '조계종 선암사'를 상대로 낸 '등기말소 소송'에서도 2022년 7월 7일 광주고법은 “토지의 실제 소유주는 태고종 선암사가 맞다” 고 판결했는데, 이로 인해 그동안 갈등을 빚어 온 불교계 두 종단인 태고종과 조계종의 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
평범한 암벽 위에 조각 된 입상(빨간 표시)은 높이가 5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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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송광사(장박골삼거리~송광사) 2-2 2023.08.13

12:23 장박골삼거리 12:47 연산봉사거리 13:05 연산봉 해발 851m 13:31 송광굴목재에서 송광사로 계속해서 내리꽂는 길과 옆 계곡을 따라 내려 가다. 14:33 연산봉4거리에서 출발해서 오는 길과 마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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