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지환玉指環
"여자의 명심불망銘心不忘 지환빛과 같은지라,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여보오"
지환指環은 여성이 주로쓰던 가락지로 반ㆍ상의 구별없이 여성 절개의 마음을 담은 장신구의 하나이다.
옥지환은 춘향이 몽룡과 이별할 때 준 정표이기도 하며, 암행어사로 출두한 몽룡이 춘향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할 때 쓰였던 정표의 상징물로써 굳은 사랑의 언약을 나타낸다.
월매집
조선 시대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 길에 그네를 타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하여 사랑을 하게 되었다.
이 집은 후에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은 집이다.
춘향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월매집이라 하였다.
월매방
이도령이 한양으로 떠나기 전 날 밤에 춘향이의 치마에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며 글을 쓰고 있는 장면입니다.
부용당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장소입니다.
행랑채
향단이가 기거하는 방으로 조선시대 서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춘향전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춘향전의 매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도출할 수 있습니다.
춘향전은 춘향과 이도령의 러브스토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신분제의 질곡에 대한 거부와 변학도의 폭정에 대한 항거에 초점을 맞추면 춘향전은 전근대 시대의 모순에 저항하는 문학작품이 됩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폭넓은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춘향전은 오늘날에도 다향하게 즐길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춘향을 따라 사랑을 만나다
일년 중 가장 좋은 때 단오일에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은 광한루에서 그네 뛰는 춘향을 만납니다.
첫눈에 반해 혼약을 하지만 이 부사가 서울로 가는 바람에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새로은 남원부사 변학도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명령하지만 춘향은 거부하고 옥에 갇힙니다.
그 사이 이도령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에 내려옵니다.
춘향이 옥에 갇혀 내일이면 죽게 된다는 말을 들은 이도령은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어사출두하여 춘향을 구하고 오래도록 행복한 일생을 보냅니다.
신분 차별이 엄격했던 시대, 양반과 기생의 딸이라는 신분 격차를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이겨낸 춘향은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지난 해 어느 때에 님을 이별하였던가
엇그제 겨울이더니 이제 또 가을이 깊었네
거친 바람 깊은 밤에 찬비는 내리는데
어찌하여 남원 옥중에 죄수가 되었는고
이천이십사년 봄 성춘향 옥중 시 청하 최중희
春香館 移轉 建立記 춘향관을 옮겨 지으며
天府之地 玉野百里
예로부터 우리 남원을 일컬어 하늘이 정해준 고을이요
기름진 땅이 펼쳐 진 풍요로운 고장이라 하였다.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사는 광한천廣寒川을 세우고 요천蓼川을 끌어들여 은하수ㆍ오작교烏鵲橋 삼신산三神山등 하늘나라로 꾸민 것이 이 곳 광한루원廣寒樓苑이다.
오늘날 우리 남원하면 광한루(보물제281호)와 오작교, 춘향전을 떼어놓고는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춘향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랑 문화와 예술의 원천源泉으로서 판소리, 소설, 창극, 영화, 오페라, 연극, 드라마, 시, 가요 등으로 일찍이 세상에 널리 퍼져나갔고 지금도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
또 남원을 한류韓流의 수도首道로 일컫기도 한다.
따라서 '춘향전'의 방대한 학술 연구 자료와 이본異本들, 재창조된 예술 작품과 문화 자료를 찾아 모아서 우리 남원에다 보존하고 물려주자는 시민들의 바람이 커졌다.
1992년 광한루 서쪽에다 춘향관春香館을 처음 세우고 춘향전 유화油畵, 춘향전 자료, 서화, 장신구 등을 전시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수집 자료들이 늘어나 비좁아지게 되었다.
특히 콘크리트 건물이 문화재인 광한루와 너무 근접하여 주변 경관과 품격을 크게 헤친다는 각계의 여론들이 이어져서 광한루 남쪽의 이곳 선취각璇翠閣 자리로 옮겨짓기로 하고 문화재청과 전라북도에 이의 승인을 여러 번 건의하였다.
마침내 승인을 받아서 2013년 3월에 실시설계를 하였고 2016년 3월까지 60억 원을 들여서 새 춘향관春香館을 지었다.
여기에 강암剛庵선생의 현판을 옮겨 붙여서 지난 세월을 더하고 광한루원(명승제33호)과 춘향제 변천사 등을 함께 알림으로서 "대한민국 대표 문화도시-남원"의 위상을 드높이고 영원히 새롭게 피어나는 "춘향 문화"와 "광한루원"을 모든 사람들이 오래도록 사랑하고 기념 하도록 하고자 한다
2016년 4월 5일 남원시장 이 환 주
춘향사당
열녀 춘향의 굳은 절개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다.
사당의 대문을 단심문이라 하는데, 이는 "임
향한 일편단심" 이란 의미이다.
사당의 중앙에는 "열녀춘향사" 라는 현판이 있고 사당 안에는 춘향의 영정이 봉인되어 있다.
이 사당에서 축원을 빌면 백년가약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많은 참배객이 찾고 있다.
광한루
1419년 황희 정승이 누각을 짓고 광통루라 하였는데, 1444년 정인지가 달나라의 옥황상제가 사는 궁전인 광한청허부가 바로 이 곳이라 하여 후일 광한루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582년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 앞을 흐르는 요천을 끌어다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오작교를 만들었으나 광한루는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
현재의 광한루는 1626년(인조 4년)에 재건된 것으로 고전소설 춘향전의 무대이며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세월이 흐르면서 선조들이 광한루 주변에 연못을 만들고 방장정, 영주각 등의 정자를 지어 도교사상을 반영한 이상향을 꾸미니, 이 정원이 바로 명승 제33호로 지정된 광한루원이다.
춘향의 사랑과 향기가 어우러진 광한루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사랑의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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