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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4차 19구간 역방향 : 난동-> 구례안내센터->오미 19km 2024.02.18

방극만 2024. 2. 19. 13:42





1. 광의면 온당리 난동 ~ 구례읍  서시교



  난동마을에는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 등 두 개의 당산이 있다.
  조탑 옆에 서 있는 당산나무가 할아버지 당산나무라면, 난동마을의 할머니 당산나무는 마을 안쪽에 자리를 잡고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고 있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 당산제를 지내는데, 할아버지 나무가 있는 윗 당산과 할머니 나무가 있는 아랫 당산 두 곳에서 당산제를 거행한다.
  지리산 생태숲이 있는 지초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으며, 당동마을처럼 산 중턱에 자리해 들판 내려보는 전망이 좋다.
  지리산 둘레길은 마을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그 길 끝에 마을의 역사만큼 오래 묵은 소나무 몇 그루가 어울려 자라고 있다.
  솔숲 가운데는 제당을 꾸려놨는데, 정자도 있어 쉬어가기 좋다  --퍼온 글--
------ 찾지 못하고 말았다-----

온동마을
  서기 1500년대 중반에 全州 李씨가 설촌하였으며, 서기 1600년 경 金海 金씨와 全州 崔씨가 입촌하면서 마을이 형성 되었다.
  1592년에는 남원부南源府, 1708년에는 운봉진雲峰縝에 속했으나, 1895년 지방관제 개편으로 다시 南源府에 속하였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온동溫洞마을로 칭하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온동 마을은 옛날 마을뒤쪽 골농계谷籠溪라는 골짜기에 온수가 솟아났다고 하여 온수골이라고도 불렀다.
  한 편 그 당시 이 물이 피부병에 좋다는 소문이 퍼져 전국 각지에서 피부병 환자들이 몰려들자, 마을 사람들이 혐오감을 느껴 고심 끝에 온수가 솟아나는 물구멍을 솥뚜껑으로 덮어버리고 사용을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위치를 찾을 수가 없고 전설로만 전해져 오고 있다.



삭녕최씨朔寧崔氏 崔尙重 선생이 158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을 거쳤으며,
임진왜란때에 권율장군의 휘하에서 종사관으로 활약하였다가 서기 1602년 봄에 사간司諫의 관직을 버리시고,
성원촌星院村으로 낙향하시면서 세심정을 지어 시서詩書와 경전經典으로 음풍농월吟風弄月 하시면서,
낚시를 즐기시고 세이洗耳, 세심洗心하시면서 명현들하고 도의로 교류하셨고 학문을 숭상하시고 향풍교화鄕風敎化를 하셨다.
  1656년에 崔尙重선생의 손자 휘지徽之께서 세심정을 중수 하셨다.


면민헌장
  지리산이 동북으로 병풍처럼 감싸고 서시청류가 서남으로 흘러 정겹게 펼쳐진 옥토낙원에 충과 의를 숭상하는 광의면민은 순박하고 온후하며 인정 넘치고 투철한 의향인 임을 자랑으로 여기며 더욱 복되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가꿔가기 위하여 이에 헌장을 마련하고 우리의 지표로 삼는다.
1. 우리는 충의와 학문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자존과 긍지를 드높인다.
2.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건전한 가정으로 사회에 봉사하며 나라에 충성하는 민주시민과 인재육성에 진력한다.
3. 우리는 화합과 협동정신으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인정이 넘치는 신의사회를 이루어간다.
4. 우리는 성실 검소하고 근면한 생활풍토를 조성하여 보다 즐겁고 평안하며 거룩한 고장 만들기에 앞장선다.
면민의 날  :   매년 4월 1일


선월船月마을
  1820년 경 안동권씨 31세손 권덕일權德佾씨가 처음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갱변가라 하여(갱변뜸) 즉 강변촌江邊村이라고 부르다가 1930년 여수 삼일면 강을용姜乙龍씨 께서 입주入住하여 이장직을 맡아 일하면서 마을 지형이 배船와 달月 모양 같다고 하여 1938년도에 선월船月이라 개칭하였다.
  2012년 현재 전체 농가 호수는 36호다.
2012년 9월 30일 선월마을


서시천 이야기
  2200여 년 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불사의 생명으로 영원한 권력을 누리고 싶어 했다.
  폐하, 조선(고조선)의 방장산(지리산의 옛 이름)에 불로초가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불로초는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게 하는 영약이니 그것만 얻으신다면 만대의 치세를 누릴것입니다.
  진시황은 지략과 용맹이 뛰어난 서불을 불러 명을 내렸다.
  조선으로 가서 반드시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해라.
  예, 폐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서불은 9척의 배와 3000의 무리를 이끌고 조선의 방장산으로 향했다.
  이 강은 모래가 많다하여 다사강(심진강의 옛 이름)이라 불립니다.
  이쪽 지류늘 타고 오르면 곧 방장산에 이를 것입니다.
  과연 산세가 수려한 것이 불로초가 있을만한 절경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도록 하자.
  이 지류를 '서시천'이라 하는데 서불이 머물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서불천이라 불려야 하는데 슬갑 불(市) 자와 저자 시(市) 시자가 비슷하여 혼동하고 서시천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역만리 타지에 닿았으니 이 땅의 물맛도 한번 보자. 벌컥 벌컥
  카-  이 마을의 물맛이 아주 차고 맑다!
  서불이 물을 마셨는데 그 맛이 아주 차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냉천(冷川)'이 되었다.
  이후 서불의 여정은 탐라(제주)로 갔다거나 여ㅓ나라(일본)로 갔다는 등 여러 가지 설만 남긴 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데 진짜 불로초라는게 있을까요?
  또 다른 이야기로 중국 월나라의 구천은 어느 날 냇가에서 빨래하는 서시를 보고 그 모습에 한눈에 반해버려 그녀를 후궁으로 맞이하였다.
  서시는 중국 역사에서도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 마을의 아낙네들이 빨래하는 모습이 마치 사시처럼 아름답다 해서 사시천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2. 서시교 ~ 용호정 ~ 곡전재 ~ 오미리 운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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