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서해랑길

선운제~김소희 생가 : 고창 서해랑길43코스 2026.05.18 월요일

방극만 2026. 5. 19. 08:58





10:01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선운제 아래에서 출발
미당시문학관 1.5km, 소요사 3.4km
10:05 선운리 뒤 정자 쉼터
10:14 미당시문학관
10:23 미당서정주생가
11:09~12:24 길을 잘못들어 온 반월마을 뒤 새로 생긴 정자에서 내친김에 쉬면서 점심
12:30 고창군 부안면 상암리 반원마을
12:40 김소희생가 7km 전으로 미당시문학관 지나온지 언제인데 인제 겨우 1km 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12:48 고창군 부안면 상암리 상포마을 상암길 안쪽 마을 좁은 길로 들어 부둣가 둑방길로
13:15 고기잡이 그물 : 고창군 부안면 수앙리 1240
13:16 대구에서 왔다는데 해파랑 남파랑 이어 서해랑길 43코스 진행중이란다
13:21 김소희 생가 :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13:26 사포버스정류장 무명의병충의위령탑에서 고창 서해랑길43코스 종료 :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469-3



10:01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선운제 아래에서 출발
미당시문학관 1.5km, 소요사 3.4km


10:05 선운리 뒤 정자 쉼터


소요산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 위치한 소요산은 소요대사가 창건한 소요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별칭으로 높이가 같은 경수산(경수봉)과 형제처럼 솟아서 형제봉으로 불리며, 두개의 산중에서 하나가 흥하면 하나는 쇠퇴한다는 속설이 있다.
또 소요산의 형상이 붓끝처럼 뾰족해서 문필봉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산의정기를 받아 동학농민혁명 선봉장 전봉준 부찬이 소요산 암자에서 글공부를 할 때 소요산 만장봉이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전봉준 장군이 태어났다 하여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고창예향천리마실길


10:14 미당시문학관 : 월요일 휴관


10:23 미당서정주생가

서정주 (徐廷柱, 1915~2000) 전라북도
아호는 미당(未棠)!
미당은 이곳에서 태어나 9살 때까지 살았다.
미당이 살았던 그 집터는 그대로 있지만 집은 1972년 에 스레트지봉을 얹어 새로 고친 것이다.
원래는 초가집이었다.
초자가 :김영희
작품규격: 100× 200× 150cm
작품재료. 황 등석


菊花와 산돌  미당 서정주

산에 가서 땀 흘리며 주어온 산돌
하이얀 순이 돋은 水晶 산돌을
菊花밭 새에 두고 길렀습니다

어머니가 심어 피운 노란 국화꽃
그 밑에다 내 산돌도 놓아 두고서
아침마다 물을 주어 길렀습니다


11:09~12:24 길을 잘못들어 온 반월마을 뒤 새로 생긴 정자에서 내친김에 쉬면서 점심


김소희 생가



만정 김소희 생가  晚汀 金素姬 生家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흥덕면 김소희길 33

국악계의 사표(師表)이며 국창(國唱)으로 불리운 만정
(晩丁) 김소희(金素姬, 본명 김순옥)는 1917년에 이 곳에서 태어났다.
13세에 광주로 가서 명창 송만갑의 제자로 국악에 입문하고 15세에 서울로 올라가 조선 성악연구회에서 정정열 등에게 소리ㆍ춤ㆍ기악을 두루 사사하였다

김소희는 100년에 한번 나기 힘든 천부적인 목소리에 노력을 더하여 3~4년의 짧은 기간에 명창의 반열에 올랐고 정악ㆍ한학ㆍ서예 등을 익혀 그의 예술에 품격을 더하여 왔으며 판소리 춘향가 김소희(制)를 창제하고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보유자로 지정 받았다.

국창 김소희는 도제교육으로 많은 제자를 길러 냈으며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설립 운영하여 국악 전문교육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해외공연을 통하여 우리 전통음악의 진면목을 세계에 떨친 선구자이다.

김소희는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제1회 동리대상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등을 수상하였고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이사장을 역임하던 중 1995년 4월(향년 79세)에 타계하였으며 묘소는 유언에따라
고향에 모셔졌다.

정부에서는 금관문화훈장(제1호)을 추서하였고 광복 50주년 -역사를 만든 한반도의 주역 50인에 선정되었다.
작품으로는 판소리. 민요. 구음 등의 음반과 다수의 창극 창작품들이 있고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으며 명창 박윤초가 어머니의 뒤를 잇고 있다

이 집은 마을주민이 개축, 관리하여 오던 것을
2002년 5월에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13:26
사포버스정류장
무명의병충의위령탑에서
고창 서해랑길43코스 종료 :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469-3




420년전 이곳은 사진포
기적소리 울리고 조기 홍어 쌀을
수출 항구 왜군이 손쉽게 점령
세월은 구름가듯이 황금의 들판
으로 변한 사포리의 화순의 학자
들께서 60년전부터 왜 하필이면
이 소자에게 전적지에 충효열의
흔적을 남기라하네
눈물을 머금고 이곳의 인성교육의
문화를 전함
竹松 최일수



정유재란대 왜군은 조총화총으로 아군은 죽창화살
칼로 대항하다 전멸하였다.
파도와 같이 출렁이던 왜군들과 부패된 시체들이 뒤엉킨채 어디로 갔을까?
현지 주민 손동규씨에게 확인한바 이 모든것이 사실
임을 알았을때 머리끝이 창공으로 솟고 눈물이 감돌
고 한이 맺혀 竹松 최일수는 이곳에 영혼탑을 세우다



정유재란
1597. 9. 29 전투
이곳에서 500m쯤 법성포 쪽으로
하천 따라가면
사포리 임야 274-1원이 나오며
최서생 의병장 부인 문화류씨께서
투신한 전적지 거사방죽이나옴



의병장 최서생
품은 장도는 번개빛보다 더 반짝인 날로
유방을 베니 사진포 노을빛 보다 더
붉은 피를 왜적에 비치고 파도에 누워
낭군따라 가노라
류씨 부인의 시     작사가 최일수



해주최서생海州崔瑞生 부인夫人
문화유씨열행비文化柳氏烈行碑

열부문화류씨烈婦文化柳氏
노비순동공노비奴婢順童功勞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