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초등/대강초등 제37회 동창회

불국사 투어 2025.04.13

방극만 2025. 4. 13. 19:32


대강초등37회 2025년도 제20차 정기총회 경주 나들이


07:40 마우나오션리조트 1204호 출발  :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 산 304-12      






아침 식사 :
08:02 ~ 08:35 전주콩나물국밥ㆍ묵사발 : 울산시 북구 매곡동 795-91







09:20~10:20 불국사 : 경주시 진현동


慶州佛國寺  사적 제502호

시대 : 고대/남북국/통일신라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면적  : 409,315㎡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51년 김대성이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창과 중수를 거쳤으며 현존하는 주요건물들은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 복구된 것이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염원한 이상의 불국토를 3갈래로 구현한 것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의 사바세계는 대웅전으로,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극락전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는 비로전으로 대표된다. 즉 불국사의 경내는 석단에 의하여 단상의 불국토와 단하의 속계로 양분된다.
석단 위에 청운교·백운교, 칠보교·연화교라는 2쌍의 다리를 놓았다.
대웅전 앞에 있는 3층석탑과 다보탑은 쌍탑구조이다.
극락전에는 금동아미타불좌상을 안치했으며, 무설전 뒤에는 관음전이 있다.  ~다음백과~


관음송觀音松
학명: Pinus densiflond for, multi caulis Uyeki
나이: 94년(2023년 현재)
반송(토)으로 한국 원산이며 처음은 현 위치에서 서남쪽 500m 아래에 심어졌던 것을 1987년 봄에 이곳으로 이식
많은 관객으로 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불국사의 중요 조경수임


백송
5월에 개화하며, 다음해 10월에 결실한다.
수피가 큰 비늘치럼 벗겨져 밋밋하고 회백색으로  '백골송'이라고도 한다.


자하문紫霞門
Jahamun Gate

이 건물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구역의 정문이다.
백운교와 청운교를 올라 자하문을 지나면 대웅전이 보인다.
자하문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에서 발산되는 상서로운 자금색 광채가 서려 있는 문이라는 뜻이다.

원래의 문은 불국사를 처음 지을 때 함께 세워진 것으로 보이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현재의 문은 1781년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다시 세운 것이다.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慶州 佛國寺 青雲橋 白雲橋
Cheongungyo and Baegungyo Bridges of Bulguksa Temple, Gyeongju

국보 National Treasure
자하문紫霞門 앞에 설치된 돌계단 다리이다.
위쪽 16단이 청운교, 아래쪽 18단이 백운교인데 속계와 불국토를 연결하는 종교적 상징물의 성격을 지닌다.

이 두 다리는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보다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청운교에 비해 아래쪽인 백운교의 높이와 너비가 조금씩 더 커서 시각적으로 안정감과 상승감을 준다. 다리를 계단 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형태로 청운교와 백운교가 이어지는 부분은 둥근 무지개다리로 되어 있다.

이 두 다리는 통일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에 전체적으로 보수하였고, 1972년에 동자주*와 난간을 복원하였다.
*동자주(童子柱): 돌난간의 중간에 세우는 짧은 돌기둥


경주 불국사 다보탑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進峴洞) 불국사 경내에 있는 남북국시대의 화강암제 석탑이다.

535년(법흥왕 22년)에 불국사가 창건한 후 751년(경덕왕 10년) 김대성의 발원으로 불국사가 중건될 때 옆에 있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함께 수축(修築)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0.29m, 기단 폭 4.4m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 서쪽의 석가탑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탑으로 전형적인 쌍탑가람의 배치이다. 두 탑을 현재와 같이 동서로 나란히 세운 까닭은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인 다보여래상주증명(多寶如來常住證明)에 따른 것이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慶州 佛國寺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of Bulguksa Temple, Gyeongju (Seokgatap Pagoda)
국보National Treasure

석가탑은 동편에 있는 다보탑과 함께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탑 안에 나란히 앉았다는 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에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탑은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가장 정형화된 세련미를 보여준다.
다만 머리장식 부분은 남원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보물의 머리장식을 본떠서 1973년에 복원하였다.
탑 주위는 연꽃무늬를 새긴 주춧돌 모양의 돌로 구획하였다.

1966년에 탑을 수리할 때 2층 몸돌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을 비롯한 사리장엄구(국보*)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불국사 건립 시기인 경덕왕 10년(751)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사리함과 사리병을 비롯해 사리를 봉안하는 모든 장치


경주 불국사 대웅전慶州 佛國寺 大雄殿
Daeungjeon Hall of Bulguksa Temple, Gyeongju
보물Treasure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불국사의 중심 건물이다.
대웅전은 대웅석가모니의 다른 명칭을 모신 불전을 말한다.
신라 시대의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기단만 남았다.
영조 41년(1765)에 기단은 그대로 두고 건물만 다시 지었다.

현재의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다포계 건물*로 팔작지붕을 올렸다.
정면의 5칸 중에 가운데 칸이 두 배 이상 넓고 내부에는 기둥이 없어 공간이 더 넓어졌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에는 풀꽃무늬와 봉황머리 조각, 용머리 조각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 대웅전은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장식으로 우리나라 불교 건축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다포계 건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놓아 수평으로 하나의 공포대를 구성하여 매우 화려한 모습을 가지는 형식,
**공포: 지붕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 상부에 길이가 짧은 건축 재료를 짜 맞추어 놓은 것


무설전Museoljeon Hall

경전을 강의하고 공부하는 곳이다.
말로 설법이 이루어지는 곳임에도 '설법이 없는 곳', 즉 '무설전無說殿 이라고 한 것은 진리의 본질이 언어를 통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언어도단의 경지에 있음을 표현한 것 이다.
"불국사고금역대기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처음 건립하였고, 의상대사(625-702년)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의하였다고 한다.
1593년 임진왜란 때 불타 1648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1708년에 수리하였다.
1910년대 초반까지는 건물이 남아 있었으나, 그 뒤 허물어 진 채 방치되다가, 1969-1973년 불국사 복원공사 때 옛터에 정면 8칸, 측면 4칸 규모의 원래 크기 대로 건립하였다.


지장보살 김교각 스님
Priest Kim Gyo-gak, Ksitigarbha Bodhisattva
地藏菩薩、金喬覺和尚/地藏菩萨金乔觉大师

무설전 내부 동쪽에는 김교각 스님의 동상이 모셔져 있다.
신라 왕족이었던 김교각(金喬覺 696-794년) 스님은 출가하여 당나라에 건너가 안후이성安徵省 구화산(九花山)에서 수행하며 중생구제衆生求濟에 힘썼다.
794년 99세로 입적하셨는데, 3년이 지나도 생전의 모습과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후 신비한 일들이 계속되자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숭배되었으며, 구화산은 지장보살의 성지가 되 었다.
무설전의 동상은 1997년 중국 안후이성 불교협회中線安徽省佛敎協會와 중국 안후이 인민대외우호와 협회中線安徽人民對外友好協에서 불국사에 기증한 것이다.



관음전觀音殿Gwaneumjeon Hall

이 건물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1604년 중창한 뒤에도 여러 차례 보수와 중건을 거쳤으나 알 수 없는 시기에 허물어졌다.
1973년에 불국사가 복원될 때 관음입상도 다시 만들어졌다.


비로전毘盧殿Birojeon Hall

이 건물은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을 모신 전각이다.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현종 원년(1660) 다시 지은 뒤 여러 차례 고쳐지었으나 허물어졌다.
지금의 건물은 1973년 창건 당시의 기단과 초석 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사리탑


경주 불국사 사리탑
慶州 佛國寺 舍利塔
Stupa of Bulguksa Temple, Gyeongju
보물Treasure

불국사 사리탑은 비로전 옆에 설치된 석등 모양의 석탑이다.
기록에 보이는 '광학부도光學浮屠'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승려의 사리탑인지 여래의 사리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석등과 비슷한 3단의 받침돌 위에 몸돌과 머릿돌로 구성되어 있다.
몸돌에는 구획을 나누어 부처와 보살상을 새겼다.
지붕돌은 추녀 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위로 올라가면서 줄어들어 머리받침돌 아래에서는 6각으로 모인다.
윗받침돌에서 사리를 안치한 구멍이 확인되었는데, 합과 좁고 긴 원통이 나왔다고 한다.

이 탑은 1905년에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극적으로 반환되어 일제 강점기 수난을 겪었던 우리 문화재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나한전羅漢殿Nahanjeon Hall
이 건물은 석가모니부처님과 제자 16분의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은 깨달음을 이룬 경지인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수행을 통하여 모든 번뇌를 끊은 덕이 높은 승려를 뜻한다.

불국사에 십육응진전十六應真殿과 500명의 나한을 모신 오백성중전五百聖衆殿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인된 바 없다.
임진왜란 때 불국사의 모든 전각이 불탄 후 1647년에 새로 십육나한전을 세웠다가 1760년에 본래의 자리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79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앞면, 옆면 각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극락전極樂殿 Geungnakjeon Hall

이 건물은 금동아미타불좌상국보을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불이 거주하는 서방극락정토를 상징한다.
임진왜란 때 건물은 불타고 돌 기단만 남았다.
1750년 남은 기단 위에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을 다시 세웠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경주 불국사 극락전 앞 석등과 봉로대
慶州 佛國寺 極樂殿 앞 石燈과 奉爐臺
Stone Lantern and Incense Offering Table at Geungnakjeon Hall of Bulguksa Temple, Gyeongju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Gyeongsa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통일신라시대(9C) 극락전 앞에 불을 밝히는 석등과 향로를 놓았던 봉로대를 함께 건립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현재까지 온전한 형태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국사 당간지주佛國寺 幢竿支柱
Flagpole Supports of Bulguksa Temple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Gyeongsa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불국사 경내 입구의 대석단 앞에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서 있는 2쌍의 당간지주이다.
보통 1쌍의 당간지주를 세우는데 불국사나 황룡사, 익산 미륵사와 같은 큰 절에는 2쌍이 설치되기도 한다.

동쪽 당간지주는 통일 신라 때의 것이고, 서쪽 당간지주는 서로 다른 당간지주를 후대에 조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당간지주의 위쪽에는 홈이 있는데, 이것은 당간지주를 조선 시대에 괘불*을 거는 기둥으로 활용하였음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 괘불(掛佛): 부처, 보살 등을 그린 그림으로 법당 밖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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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용







황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