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유물전시관 : 구례군 토지멘 운조루길 56
2012년 7월 첫 삽을 뜬 후 5,905m2 부지에 건축 총면적 886m2로 전시실 1동, 주차장 및 부대 시설 등을 조성하고 2014년 12월에 준공하였습니다.
2015년 12월 운조루로부터 유물을 기탁받아 2016년 4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운조루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전시된 유물은 운조루에서 대대로 소장해 온 것들입니다.
운조루
운조루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곳으로 1776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운조루란 이름은 원래 사랑채 당호堂號로써 도연명陶淵明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운조루는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사랑채 부억 쌀뒤주에 적힌 타인능해他人能解 글귀와 낮은 굴뚝은 운조루 정신을 대표합니다.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나 열 수 있는 나눔 쌀독
운조루의 창건주 류이주는 마을의 배고픈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뒤주를 열어 필요한 만큼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통나무를 깍아 만든 이 뒤주에는 두가마니 닷되의 씰을 담을 수 있으며, 힌 달에 한 번씩 뒤주가 비워지면 쌀을 다시 채울 것을 명했다고 한다.
뒤주는 큰 사랑채에서 인채로 통하는 주간문에 두고 '누구나 열 수 있다'는 글귀를 새겨 둔 것은 가난한 이웃들의 불편한 마음을 헤아린 주인의 배려이다.
동학, 여순사건, 6.25전쟁 등을 지내면서도 운조루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 즉 타인능해他人能解의 정신때문일 것이다.
삼수공 류이주 영정 19세기 초
운조루 창건주인 류이주(1726~1797) 사후 홍살문이 내려져 1806년에 집을 중수하고 삼수공을 모실 사당을 건립하며 그곳에 봉안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된다.
류이주 홍패교지
류이주가 1753년 무과에 합격하고 받은 증서.
홍패교지는 문ㆍ무과 최종합격자에게 내려주던 증서로 당시 류이주의 합격등수는 병과 제5인이었다.
류이주가 작성해 준 분재기
가사전민도문기家舍田民都文記
1793년 류이주가 자식인 류덕호 형제 및 조카에게 주는 가사家舍와 전민田民, 즉 토지와 노비를 상속해 준 문기都文記.
이 문서는 그 가운데 큰 아들과 둘째 아들 몫만 따로 기재하여 작성한 것이다.
이익회 필 운조루 현판
조선후기 서예에 뛰어났던 고동 이익회(古東 李翊會, 1767~1843)의 글씨이다.
운조루 3대 주인이었던 류억(1796~1852)은 이익회와 교분을 나누던 친구사이였다.
이산공 류제양 영정, 1923년
손자 류형업이 당시 유명한 화가였던 석지 채용신(石芝 蔡龍臣 1850~1941)에게 부탁하여 그린 것이다.
시언是言
운조루 5대 주인인 류제양이 쓴 친필일기.
운조루 중수기록부터 주요사건과 관련된 구례지방의 사정 등 매우 다양한 내용들이 쓰여 있다.
기어紀語
운조루 7대 주인인 류형업이 쓴 친필일기.
할아버지(류제양)의 가르침으로 13세(1898)부터 쓰기 시작하여 52세(1937)까지 썼다.
시패詩牌
300여 개의 네모난 패에 청ㆍ적ㆍ흑색으로 글자가 적혀 있다.
패牌가 담겨 있던 상자에 시패보詩牌譜라고 쓰여져 있어, 시를 짓는 놀이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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