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7 보길도 윤선도 원림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572-2
11:11~12:20 세연정
11:13 흑악암
11:13 팽나무
11:14 사투암
11:16 세연정
11:23 동대
11:24 서대
11:26 판석보
11:29 옥소대(윤선도가 사투암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는 표적으로 이용했던 곳) 오르는 길
11:36~12:13 옥소대
12:12~12:34 보길도 윤선도 원림


11:07 보길도 윤선도 원림을 경유해서 세연정으로


세연정으로 가는 길

백정화
11:11~12:20 세연정

11:11~12:20 세연정


왜개연꽃


11:13 혹약암
혹약암은 세연정 연못에 있는 일곱 바위 중의 하나이다. 이 바위는 마치 힘차게 뛰어갈 듯한 황소의 모습을 닮았다.
'혹 은 바로 역경(易經))에 나오는 혹약재연(或躍在淵 : 뛸듯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 이란 말에서 따온 것이다.


11:13 팽나무
낙엽활엽교목(落葉闊葉喬木)
낮은 지대에서 자라는 향토 수종.
꽃은 5 월에 피며 열매는 10월에 익고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목세는 가구재.
11:23 동대
11:24 서대
11:26 판석보
11:29 옥소대(윤선도가 사투암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는 표적으로 이용했던 곳) 오르는 길
11:36~12:13 옥소대
12:12~12:34 보길도 윤선도 원림

11:14 사투암
사투암 射投岩
세연정 주변의 잘생긴 바위 일곱을 지칭하여 칠암(七巖)이라 불렀는데, 그 중 하나인 사투암은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는데 발 받침 역할을 하였다" 고 전해지는 바위로 연못 쪽이 들려진 모습이다.
들려진 부분에 발들 딛고 옥소대쪽 과녁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11:16 세연정
세연정(洗然亭)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 이란 뜻이다.
고산연보(孤山年譜)에서는 1637년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들어 와 부용동을 발견했을 때 지은 정자의 명칭이라 하고 있다.
정자의 중앙에 세연정(洗然亭), 동쪽에 호광루(呼光樓), 서쪽에 동하각(同何閣), 남쪽에 낙기란(樂飢欄)이란 편액이 걸려 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七巖軒) 이라는
편액이 따로 걸려 있다.
비홍교 飛虹橋
"보길도지, 에는 "세연정이 못의 중앙에 있었다" 고 기록되어 있고, "정자 서쪽 제방
동쪽에는 한 칸쯤의 넓이에 물이 고여 있으며, 중앙에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암석이 있다.
거북이 등에 다리를 놓아 누(樓)에 오른다" 고 기록하고 있어, 이 다리를 비홍교라 불렀다.
지금은 그 자리에 잡석을 쌓아 호안과 (方檀)0|
연결되어 있어 흔적을 찾기 어렵다.











11:23 동대
세연정에서 바라보아 오른쪽 판석보 옆에 자리하고있다. 규모는 가로 6.7m와 세로 7.5m의 장방형이며, 높이는 약 1.5m이고 자연석으로 쌓아 올렸다.
어부사시사가 불리면 여러 사람이 어울려 군무(群舞)를 즐겼던 곳으로 평형이다.

11:24 서대
현재는 나선형으로 세단이 남아 있으며,
규모는 축단(築壇)의 한 변이 7.5m 정도의 정방형으로 높이는 2.2m에 이른다.
동대와 대칭을 이루고 있는 곳을 동대에서 행했던 군무(群舞) 행위를 했던 곳으로 춤을 추며 돌면 정상에 오르도록 나선형 계단을 이뤘다.


11:26 판석보
판석보
우리나라 조원 유적 중 유일한 석조보(石造洑)로 일명 "굴뚝다리" 라 부르며,
세연지의 저수를 위해 만들었으며,
건조할 때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일정한 수면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보의 구조는 양쪽에 판석을 견고하게 세우고 안에 강회를 채워서 물이 새지 않게 한 다음 그 위에 판석으로 뚜껑돌을 덮었다.



11:29 옥소대(윤선도가 사투암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는 표적으로 이용했던 곳) 오르는 길









11:36~12:13 옥소대




























12:12~12:34
보길도 윤선도 원림

12:12~12:34 보길도 윤선도 원림
보길도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유적이 잘 어우러진 명승으로 격자봉(해발 431m)을 중심으로 하여 북동쪽으로 흐르는 계곡 주변의 원림문화가 형성되었다.
부용동 지역에 고산 윤선도(1587~1671)는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강화도에 도착하였으나,
인조는 이미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한 이후였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탐라)로 가는 길에 보길도의 경치에 취하여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고산은 보길도 내 경관이 수려한 곳곳에 경처를 명명하고 그곳을 오가며 성정 함양과 작품활동을 하였다.
또한 부용동은 그가 13년간 오가며 <어부사시사> 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고산은 노년을 자연과 산수를 노래 하다가 85세(1671)로 낙서재에서 일생을 마쳤다.
보길도 부용동원림(명승 제34호)은 세연정을 비롯하여 최근 복원된 곡수당, 낙서재, 동천석실 등에 고산의 경관의식과 자연에 순응하는 전통적인 조경수법이
내재된 조선시대 대표적 원림 유적이다.

고산이 이곳을 부용동이라 한 연유
"지형이 마치 연꽃 봉오리가 터져 피는 듯하여
부용(芙蓉)이라 이름했다"
고산 은누구인가?
Who is Gosan?
'예로부터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갈림길에 선 시기에는 하늘이 반드시 한 인물을 내려보내 목숨을 걸고 예의를 지키게 하여 한 세상에 경종을 울려 주고
후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는데
바로 윤선도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용주 조경 -
*늘 목술을 걸고 불의에 맞섰던 고산에게 같은 시대
선비인 용주 조경이 바친 말
보길도와 유선도의 인연
Destiny between Bogildo Island and Yun Seon-Do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것이 족하다.'
윤위(尹威), "보길도지(甫吉島識)" 가운데
늘 곧은 뜻을 꺾지 않고 직신(直臣)의 정신을 지켜 연이은 상소 등으로 생애 중 16년이 넘는 귀양살이의 고초를 겪어야 했던 고산
1637년 2월. 인조대왕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백이(伯夷)처럼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고 기자(箕子)처럼 은둔하여 거문고를 타며, 관녕(管寧)처럼 목탑에 앉아 절조를 지키는 것이 오직 나의 뜻이며, 육지에서 살아가는 것도 부끄럽다 하여 마침내 제주를 향해 떠난다.
항해 도중 보길도의 수려한 봉을 멀리서 보고 그대로 배에서 내려 격자봉에 올라 참으로 물외가경(物外佳境)이라 감탄하고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것이 족하다"하여 이곳에 드높은 정신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4백 년 전 고산과 보길도의 한 줄기 맑은 인연이 오늘에 이어져 당신의 발걸음이 지금 이곳에 머문다.


시무팔조
외천(外天, 하늘을 두려워하라),
치심(治心, 마음을 다스려라),
변인재(辯人材, 인재를 구별하라),
명상벌(明賞罰, 상벌을 명확히 하라)
진기강(桭記剛, 기강을 세워라)
파붕당(破朋黨, 당쟁을 없애라)
강국유도(强國有道, 강한 나라에 길이 있다)
전학유요(典學有要, 학문이 필요하다)
강직한 고산의 성품을 그대로 담았다
왕가의 스승
왕가의 스승으로 보낸 세월이 5년이었다.
42세에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두 왕자를 가르치는 사부에 임명되었다.
다른 벼슬을 겸직하면서까지 5년의 세월을 사부로 보낸 것은 '학부형' 이었던 인조의 신뢰와 더불어 대군들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높아서였다
유백와 이배
조정이 바르지 못하면 곧바로 상소하고 "항의하는 직신
(直臣)의 정신을 올곧게 지킨 고산, 그가 자초한 귀양살이가 평생 무려 16년이었다.
기득권 양반의 권좌를 버리고 권력에 맞서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생애를 두고 부를 이용하여 풍류나
즐겼다는 뒷사람들의 평이 생각해 볼 가치 없음을 보여주는 가슴 시린 숫자다.
그의 시조 75수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는 단지 자연을 벗으로 삼고 유유자적하게 산 사람은 아니다.
조선의 정치와 사회에 대하여 조정에서 치열하게 논쟁을 하고 상소를 하고 직언을 하다가 사직과 유배를 반복하는 삶 속에서 오우가(1642년)와 어부사시사
(1651년) 등 75의 시조가 나왔다.
해배 解配
윤선도 '석방되지 않았는데 하늘이 어찌 비를 내리겠는가!'
계속된 가뭄에 탄식하는 민심이 그러하였다.
효종이 "이 사람은 아첨을 해서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다" 하여 현종 8년에 고산을 석방하였다.
세연정을 증축하고 석실을 구축함.
회수당, 무민당, 정성당 등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침.
'발견'의 해
인조는 마침내 청나라에 무릎을 끓고 항복하고,
이 소식을 접한 고산은 육지에서 살아가는 것도
부끄러워, 제주도로 건너가 일생을 마칠 계획으로 해남에서 제주를 향해 배를 타고 가다가 보길도를 발견한다
49세 11월 1일 경상 감사 유백증이
고산을 모략하여 파직되고 해남으로 내려감
1671년 6월 11일 보길도 낙서재에서 85세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
해남 현산면 구시리 금쇄동에 안장

'물에 씻은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상쾌해지지라'
- 세연정에 담은 세연(洗然, 의 의미-
부용동의 원림
어지러운 시속에서 벗어나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려
했던 고산이 본디 거기 있었던 물과 바위 등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최소한의 인위적 개입만으로 주변 대자연을
모두 품어들여 이루어낸 장대한 원림이다.
물의 흐름을 섬세하게 연출한 세연지는 자연의 변화를 투영하는 물거울이자 성정을 수양하는 예악의 무대가 되고 있다.
또한, 신묘한 바위절벽에 자리한 동천석실은 선계(仙界)에 든 듯 초월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으니. 이곳 부용동
원림은 자연과 교감하는 기쁨을 담은 '어부사시사漁夫四詩詞'등을 빚어낸 고산 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하노라"
고산의 작품 산중신곡(山中新曲) 만흥(漫興)
부용동원림의 의미
Meaning of the Garden in Buyong-dong
한국전통조경사에 전무후무한 독창적인 조경방식을 채택한 부용동 원림은 자연의 질서와 조화에 수응하려 했던 고산이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물과 바위 등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주변의 대자연을 한껏 품어들여 이루어낸 장대한 원림이다.
세연지는 판석보를 쌓아 계곡물을 담은 계담과 인공으로 만든 회수담을 두고 S자형 제방과 칠암의
배치 및 오입삼출(죠7 크버) 고입저출( 지 비)의 수구로 물흐름을 조절한 과학적 지혜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또한, 성정을 수양하는 예악의 무대로 삼고자 연못과 정자, 축대와 높다란 절벽 등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자연의 대극장에선 종합예술가로서 고산의 면모가 드러난다.
아득히 먼 인간세상을 굽어보듯 신묘한 바위절벽에 자리한 동천석실은 초월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으니, 이곳 부용동 원림은 고산이 세속을 떠나 자연과 교감하는 삶의 기쁨을 담은 '어부사시사 등을 빚 낸 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현재 복원된 부용동 원림은 고산의 5대 손인 윤위(尹威.1725~1756년 )가 24세 때 보길도를 답사
하고 보길도의 위치. 고산 유적지의 배치, 고산의 사람됨과 생활상 등을 소상하게 기록한 [보길도지
(甫吉島識)
어부사시사 漁父 `见時詞
"이를 즐겨 노래하면 마치 산뜻한 강바람과 시원한 바다 비가 입안에서 생겨나듯 문득 몸이 가벼워지며 세속을 잊고 별천지에서 홀로 노는 것민 같다."
어부사시사(漁夫四詩詞)는고산 자신이 부친 발(跋 : 지은 사연)에서 드러나듯, 보길도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부 생활의 흥취를 통해 자연과 하나 되어 살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작품이다.
인간(人間)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秋詞. 2연)하는 어부漁父(고기잡이)'는 漁夫(고기잡이)'와는 달리, 세상의 명예와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허덕이지 않고 좁은 낚싯배이지만 대자연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춘하추동 각 10수씩 40수로 이루어진 단가로 후렴을 떼 완벽한 시조라 할 수 있으며, 아름답게 빚어낸 우리말의 결이 영롱한 이 작품은 고산이 65세 되던 1651년(효종 2년) 부용동에서 지었다.
부용동 팔경 (芙蓉洞八景)
제1경 연당곡수( (蓮塘曲水) 곡수당의 연꽃
제2경 은병청풍( (銀屏清風) 은병 석벽에 부는 맑은 바람
제3경 연정고송(然亭孤松) 세연정의 홀로선 소나무
제4경 수당노백(水塘老栢) 곡수당터의 늙은 동백
제5경 석실모연(石室暮煙) 석실에 감도는 저녁 연기
제6경 자봉귀운( (紫峰歸雲) 격자봉을 두른 해운
제7경 송현서아(松峴棲雅) 솔재에 둥우리를 튼 갈가마귀 코
제8경 미산유록(薇山遊鹿) 미산에 뛰노는 푸른 사슴

윤선도의 선물 Gift from Yun Seon-Do
세속의 소리일랑 저만치 밀어두고 맑은 물소리 가득한 낭음계(朗吟溪)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 (流觴曲水).
먼 옛날 고산이 띠운 청정한 마음 한 자락 같은 시편들은 오늘 우리가 받는 귀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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