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전라남도

낙서재, 곡수당 2026.05.29 금요일

방극만 2026. 5. 30. 04:18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산 38-4

낙서재
09:50~10:27 낙서재
낙서재 300m, 곡수당 200m
09:55 낙서재 매표소
10:19 동와東瓦, 낙서재樂書齊
10:21 귀암龜巖
10:24 소은병小隱屛
10:26 사당祠堂
10:27 전사청典祀廳

10:34~10:36 곡수당
10:34 곡수당曲水堂, 서재書齋
10:35 일삼교日三橋
10:36 하연지
10:37 큰길재로 가는 등산로에서 중간에 길이 별로인데다가 습해 되돌아 나옴
10:45 서재와 국수당에 와 동천석실과 침실 관찰
10:49 낙서재 매표소





낙서재樂書齋 Nakseojae Library

낙서재논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1637년(인조 15년)에 들어와 1671년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윤위의 보길도지에 따르면 처음 이곳에 집을 지을 때는 수목이 울창해서 산맥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사람을 시켜 장대에 깃발을 달고 격자봉을 오르내리게 하면서 그 높낮이와 향배를 해아려 집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잡은 낙서재 입지는 보길도 안에서 가장 좋은
양택지라고 한다. 이곳은 강학하고 독서하면서 소요하고 은둔하고자 하는 선비의 생활공간이었다.
최근 낙서재 마당 북쪽에 고산이 달 구경하던 귀암(龜巖)이 발견되어 남쪽의 소은병과 낙서재, 귀암의
축선이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모옥(茅屋)으로 지어 살다가 그 뒤에 잡목을 베어 거실을 만들었는데 후손들에 의해 와가(瓦家)로 바뀌었다.



곡수당 曲水堂 Goksudang (House)

고산의 아들 학관이 거주하며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조성한 공간으로, 낙서재 골찌기에서 흐른 물이 이곳 인근에 이르러서 곡수를 이루고 있다.
1칸짜리 집으로 사방에 퇴를 달고 반자를 두었으며.
남쪽 난간에는 취적헌(取適軒), 서쪽은 익청헌(益淸軒)이라는 편액을 학관의 글씨로 새겼다. 주변에 일삼교(一三橋)와 유의교(有意橋)가 있다.


09:55 낙서재 매표소


10:19 동와東瓦, 낙서재樂書齊
동와 Dongwa
보길도지에 의하면 낙서재와 무민당 사이에 이곳과 서와를 지었다하며 각기 한 칸씩인데 사방으로 퇴를 달았다고 한다.


10:19 동와東瓦, 낙서재樂書齊

낙서재樂書齋 Nakseojae Library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1637년(인조 15년)에 들어와 1671년 돌아가실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윤위의 보길도지에 따르면, 처음 이곳에 집을 지을 때는 수목이 울창해서 산맥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사람을 시켜 장대에 깃발을 달고 격자봉을 오르내리게 하면서 그
높낮이와 향배를 헤아려 집터를 잡있다고 한다.
이렇게 잡은 낙서재 입지는 보길도 안에서 가장 좋은 양택지라고 한다.
이곳은 강학하고 독서하면서 소요하고 은둔하고자
하는 선비의 생활공간이었다.
최근 낙서재 마당 북쪽에 고산이 달구경하던 귀암이
발견되어 남쪽의 소은병과 낙서재. 귀암의 축선이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모옥(茅屋)으로 지어 살다가 그 뒤에 잡목을 베어 거실을 만들었는데 후손들에 의해 와가(瓦家)로 바뀌었다.
*모옥(茅屋) 띠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만든 집

정자Jeangja (Pavilion)
기록에 의하년 서재옆에 정자가 있었다고 전하며 현재 건물의 형태나 규모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귀암과 낙서재


10:21 귀암龜巖

귀암 龜巖
고산유고孤山遺稿 귀암龜巖 시편에 나오는 4령(四靈)주의 하나요,
윤선도선생이 달맞이하던 장소로 기록된 이 바위는 화강암을 쪼아 거북형상을 만든 370cmX270cm 규모의 바위로서 선생이 낙서재 터를 고르는데 중요한 지표였다.

2011년, 이 바위의 발견으로 보길도지甫吉島識에 기록된 소은병小隱屛, 낙서재樂書齋, 귀암龜巖의 축선을 확인하게 되어 낙서재 원형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0:24 소은병小隱屛

소은병小隱屏 Soeunbyeong

주자가 경영한 중국 복건성 숭안현 무이산의 대은봉大隱峯 건너편에 있는 봉우리 이름으로,
윤선도는 산속에 은거하며 학문에 몰두한 주자의 행적을 따른다는 뜻에서 낙서재 뒤편 바위에 이 이름을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은병 바위 위에는 삼각형의 홈이 크게 파여 있어서 빗물이 고이면 바위벽을 타고 훌러내리게 되어 있다. 윤선도는 숲이 빽빽한 이 부근에 나와 사색에 잠기곤 했다고 한다.
북쪽에 있는 낙서재와 귀암이 이 바위와 축을 이룬다.


10:26 사당祠堂

사 당祠堂Sadang (Shrine)

고산 윤선도선생이 낙서재에서 돌아가신 뒤 이곳에서 얼마간 초장을 지낸곳이다.




10:27 전사청典祀廳

전사청典祀廳 Jeonsacheong (Hall)

학관의 아들 이관이 제사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고 제물 . 제기 등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보관하던 곳이다.



10:34~10:36 곡수당

곡수당 曲水堂 Goksudang (House)

고산의 아들 학관이 거주하며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조성한 공간으로, 낙서재 골찌기에서 흐른 물이 이곳 인근에 이르러서 곡수를 이루고 있다.
1칸짜리 집으로 사방에 퇴를 달고 반자를 두었으며.
남쪽 난간에는 취적헌(取適軒), 서쪽은 익청헌(益淸軒)이라는 편액을 학관의 글씨로 새겼다. 주변에 일삼교(一三橋)와 유의교(有意橋)가 있다.


10:34 곡수당曲水堂, 서재書齋

서 재書齋 Seojae (House)

곡수 남쪽 두골짜기 중앙에 입지한 강학을 위한 건물로 건립
당시에는 학유공 정유악鄭維岳, 심진사단沈眞士檀, 학관學官(고산 5남)등 여러사람이 고산 선생에게 배우던 곳이다.



10:35 일삼교日三橋

일삼교日三橋

일삼교는 고산의 5남 학관이 하루 세번 아버지께 문안을 드리러 건넌다리다



10:36 하연지

하연지 real (lotus pond)
하연지의 형태는 정방형에 가깝고 한변의 길이가 13m 정도이다.
호안 축대의 높이는 약 1m 가량 되며, 발굴당시 연못
입수구와 출수구가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었다.
연못 옆에 석정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0:37 큰길재로 가는 등산로에서 중간에 길이 별로인데다가 습해 되돌아 나옴


10:45 서재오ㅑ 국수당으로 회귀


10:45 서재와 국수당에 와 동천석실과 침실 관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