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부안군

우금산(부안 개암사) 2026.05.14 목요일

방극만 2026. 5. 15. 01:34




개암사주차장 ~ 개암사 ~ 우금바위(원효굴)0.7km ~ 산능선1.7km ~ 임도(월정약수터)2.6km ~ 개암사주차장(4.7km)


개암사는 백제 634년(무왕 35)에 묘련(妙蓮) 창건하였고 676년(문무왕 16) 원효와 의상이 우금암(禹金巖) 밑의 굴에 머물면서 중수하였다.
현재의 사찰은 1276년(충렬왕 2)에 원감국사(園鑑國師)가 조계산 송광사에서
이곳 원효방(元曉房 : 우금굴)으로 와서 지금의 자리에 절을 중창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우금산성은 백제가 멸망한 뒤 660~663년까지 백제 부흥을 벌였던 최후 항거지인 주류성으로 비정된 곳이다.



개암사開巖寺(부안) 2026.05.14 목요일 - https://bkm2400.tistory.com/m/3589

개암사開巖寺(부안) 2026.05.14 목요일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상서면 감교리 714-2)개암사는 백제 634년(무왕 35)에 묘련(妙蓮) 창건하였고 676년(문무왕 16) 원효와 의상이 우금암(禹金巖) 밑의 굴에 머물면서 중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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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마을과 우금암

봉은마을에는 커다란 대나무밭이 있다.
이곳에는 봉황이 날아와 신비의 알을 낳고 숨어서 알을 품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러한 연유로 마을 이름을 '봉은(鳳隱)'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마을 이름이 '큰점'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그릇을 굽는 가마와 이를 판매하던 점포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을 뒤편에는 우금암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백제 무왕 35년(서기 634년)에 묘련왕사가 창건한 개암사가 자리하고 있어 물이 풍부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우금암은 우금산성 서편 가장자리에 위치한 큰 바위로, '울금바위', '우진암'이 라고도 불린다
이 바위에는 큰 동굴이 있는데,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고 전해지며 '원효방'이라 불리고 있다


09:08 개암사 관람 후 뒷켠에서 우금바위를 향해 출발


09:58 우금바위, 울금바위, 우진암

우금산성
Ugeumsanseong Fortress, 禹金山城、 禹金山城(ウグムサンソン)
전라북도 기념물 제 20호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우금산성은 돌로 쌀은 성으로 백제의 부흥운동과 관련하여 유서가 깊은 곳이다.
둘레는 3.9km로 우금바위에서 개암사 저수지의 능선 밑까지 이어져있다.
[동국여지승람] , [동국문헌비고 등에는 삼한시대에 변한의 우와 금, 두 장군이 쌓아서 우금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가 멸망한 후 복신장군이 일본에 가 있던 왕자
풍豊을 앞세우고 백제 유민을 모아 백제 부흥운동을 벌리던 중, 신라의 김유신 장군과 맞서 싸우다 패한 성이기도 하다


10:13 능선 벤치 쉼터


11:06 통나무벤치쉼터 : 우금암 1.4km, 만석동 4.4km


11:26 임도삼거리


11:48 월정약수터 : 개암사주차장 1.4km, 우금암 2.6km


11:52 시멘트임도


11:53 만석동삼거리 3.0km 해발 73m
우금암 2.7km, 개암사주차장 1.1km


12:13 파크골프장과 우금바위


12:15~12:43 파크골프장 쉼터에서 점심


12:44 우제부령김공기병지묘


김기병은 부안(부령)김씨 김두회의 차남으로 1831년 1원 21일 부안군 상서면 내동마을에서 탄생, 유년시절
부터 두뇌가 명석하여 사서삼경을 통달하고 의지가 강직하며서도 우국출정이 충만한 인격으로 성장하였고 결혼 후 미개발된 장전마을에 이주, 광범위한 농지개발로 크에 번창하여 부안 국내의 유수한 농사 재벌이 되었다.
당시는 조선말 개화기로 외세의 침략과 수탈이 극심하고 국내적으로 누적된 부정부패, 매관매직, 탐관오리의 횡포 등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져있었으며 이러한 국가 사회의 비극상에 비분강개하던 김기병은 1894년
1월 10일 전봉준이 "보국안민"등의 기치를 들고 동학농민혁명을 추진하자 결연히 동참하여 부안 기포 두목이 된 후 정열적으로 의기투합한 농민들을 설득 취합하여 부안농민혁명군을 조직하고 부안 변산 해창에 있었던 국방용 무기고를 접수하여 농민군을 무장시킨 후 우덕동 앞 들에서 무기사용법을 훈련시켜 주민들로부터
환호와 경탄을 받았다.
1894년 4월 1일 부안군 하서면에서 500여명의 농민군으로 조직을 확장하여 지휘하며 부안성을 무혈 함
락하고 백산성 총집결에 참여 전봉준장군과 합세한 후 4월 7일 황토현 전투, 4월 27일 전주성 함락, 10월21일 우금치 전투 등 모든 전투에서 전봉준 장군과 함께 하였으나 구체적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우금치 전투에서 참패한 동학군은 관군의 체포와 총살대상이 되었으나 김기병과 생존부하 동학군은 굴하지 않고 부안에 잠입, 지하농민혁명 운동을 계속하다가 주민의 밀고로 관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체포되어 부하 8명과 함께 1895년 2월 10일 부안읍 동문 밖 형장에서 향년 65세로 처형되었다.
국가에서는 봉건제도의 개혁과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수호를 위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애국애족 정
신을 기리고 이를 계승 발전시켜 민족 정기를 선양할 목적으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등의 명예회 복에 관한
특별법"(2004. 3.5. 법률 제 7177호) 제정으로 본인의 명예회복 및 손자녀까지 국가 유공자 유족으로
결정하였고, 이어 2007년 1월 26일 법률 제 8277호에 의거 고손자녀까지 확대하여 국가 유공자 유족으로
결정하였다.


12:46 자연보호헌장.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