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아리(독, 옹기) / 항아리의 종류
항아리(독, 옹기)
우리나라 음식과 함께 발달한 항아리는 우리나라의 전통보관용기로 용도와 지역에 따라서 시루, 장독, 약탕기 등으로 구분되어 불린다.
전통가옥에서 평균적으로 항아리를 배치할 때 양지 바른 곳에 돌을 2~3층 쌓아서 1~2평의 높다란 대(臺)를 만들고,
맨 뒷줄에는 큰독, 중간에는 중들이, 앞줄에는 항아리를 늘어놓는다
가장 큰 항아리는 장독으로 쓰고, 중간크기의 항아리는 된장, 막장 등을 담아 두며, 앞줄의 작은 항아리에는 고추장류, 장아찌류를 담는다.
현재 전시하고 있는 항아리는 이황세, 강정심님이 제공한 것으로 개정면에 있는 전의이씨 본가에서 사용되었던 항아리와 개별적으로 수집한 것이다


돌널무덤•독널무덤
石棺墓 .甕棺墓
Stone Cist & Jar Buriat
돌널무덤(石棺墓)과 독널무덤(甕棺墓)은 고인돌(支石墓)과 함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이다.
돌널무덤(石棺墓)은 움(土墳)을 파고 판돌(板石)을
이용해 긴네모(長方形)형태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여러매의 판돌(板石)로 뚜껑을 덮은 무덤이며 독널무덤(甕棺墓)은 독(甕棺)보다 약간 넓게 움(土墳)을 파고 독널(甕棺)을 세워놓은 뒤 그 위에 편평한 돌을 이용해 뚜껑을 덮은 무덤이다.
축산리에서 조사된 돌널무덤(石棺墓)과 독널무덤(甕棺墓)은 좁은 지역에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지만,
서로 중복되지 않고 일정하게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족묘로 볼 수 있으며,
당시 사람들의 내세관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여기에 복원된 돌널무덤(石棺墓)과 독널무덤(甕棺墓)은 축산리에서 조사된 돌널무 (石棺墓)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무덤을 이전ㆍ복원 하였으며 독널무덤(甕棺墓)은 실물크기로 복제하여 복원된 것이다.






군산 축산리 유적 群山 鷲山里 潰蹟
Chuksan-ri Site in Gunsan
유적은 전북자치도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실시하는
금강(2)지구 농수관로 건설공사부지에서 확인된 것으로 (재)전북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2005-2006년에 걸쳐 발굴조사 되었다.
이 지역은 낮은 구릉과 너른 평야가 발달되어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축산리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원형 집자리(住居地) 2기와 돌널무덤(石棺묘) 27기, 독널무덤
(甕棺墓) 등 대부분 청동기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은 간돌검(磨製石劍),
간돌화살촉(磨製石鏃), 웃돌(?石),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축산리 일대에
살았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공룡 발자국화석
이화석은 전북 군산시 산북동 도로공사 현장에서 발굴된 것으로 발굴이 완료된 화석 표본을 이전해온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보존 상태가 뛰어난 화석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발견된 화석은 기존의 조각류 (두발로 다니는 초식공룡)공룡 뒷발자국보다 형태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 있으며,
9개의 뒷발자국뿐만 아니라 앞발자국도8개가 발견되어 2족보행이 아닌 4족보행의 흔적으로 보입니다.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산북동1533-1(박물관에서5.8km)
·발굴기간 2013.12.2, ~ 2014.2.12.








장미(藏米) Jangmi Performance Hall.
1899년 5월1일 개항 이후 군산은 호남지역 토지와 쌀 수탈의 거점항구가 되었다.
쌀 곳간을 의미하는 장미동( (藏米洞)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쌀을 보관했던 창고였다.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건축물을 2012년도에 다목적 공연장으로 개보수하였다.

장형보
추악한 용모와 탐욕스러운 성격을 지닌 꼽추로
친구인 고태수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
고태수를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 초봉을 겁탈하여
그녀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이후 약방 주인 박제호의 첩이 된 초봉을 빼앗아
아내로 삼은 뒤 학대를 일삼다가 결국 그녀에게
맷돌로 무참하게 살해 당한다.

남승재
금오병원 조수로 근무하는 가난한 의사지망생으로
마음이 착해 돈 없는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초봉이 시집간 후 의사가 되어 그녀의 동생인
계봉과 사귀게 되지만 초봉의 운명을 동정하며
그녀를 도우려 한다.
혼탁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숭고한 정신을 잃지 않는 인물로 묘사
된다.

봄은 찾아온다.
수탈의 상징인
부잔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주했던 토막집에 살던 빈민층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하루하루 힘든 생계로 시름에 잠긴 부모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망을 표현 하였다.
2013년
조각가 나상옥

고태수
겉보기에 잘 나가는 은행원이지만 실은 공금을 회령해 미두와 주색에 탐식하는 난봉꾼이다.
사기와 횡령을 언제 들킬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도 대출금을 미끼로 정 주사를 유혹해 초봉을 아내로 맞이한다.
쌀가게 주인인 한참봉의 아내 김씨와 간통을 하다
장형보의 밀고로 남편에게 들켜 맞아 죽는다.

계봉
초봉의 동생으로 S여학교(당시 가정여학교)에
다니며 똑똑하고 야무진 성격을 가졌다.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며 남자들에게 끌려다니는
언니와 달리 서울에 올라와 백화점 점원이 되어
진취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한편, 승재에게도 적극
적으로 호감을 표시하여 연인사이가 된다.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신여성으로. 그려진다.

정주사
서천에서 전통교육인 서당과 신교육인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군청의 고원으로 들어가나 적응하지 못한
다.
이후 땅과 집을 처분하여 군산으로 오게 되지만
미두장 투기로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초봉을 고태수에게 시집보내고,
딸의 고통에도 아랑곳 없이 계속 미두에 빠져 산다.
시대의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딸을 희생시켜 자신의
탐욕만을 채우는 무능한 가장이기도 하다.

초봉
정주사의 맏딸이며 청순한 외모로 주변 남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그녀는 남승재를 좋아하지만, 가족을 위해 고태수
에게 시집을 간다.
이후 박제호와 장형보의 노리개로 전략하면서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전통사회에 순응하는 여인
이나, 자기 운명 파탄의 원인이 장형보임을 알고
본인의 비극적 삶을 마감하고자 그를 살해한다.

소설 탁류
채만식과 r탁류J
소설 탁류는 1930년대 최고의 풍자 소설가였던 이 고장 군산 출신 채만식(1902년~1950년)의 작품이다.
1937~1938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식민자본주의의 탁류에 빨려 들어가는 초봉이의 비극을 통해 당대 사회의 부조리함과 인간군상의 타락상을 특유의 풍자로 적나라하게 고발하였다
소설 [탁류] 줄거리
미두에 손을 댔다가 몰락한 정주사의 큰 딸인 초봉은 그녀를 시집보내 장사 밑천으로 삼으려는 부모의 강요로 평소 호감을 가졌던 가난한 의사 지망생 남승재가 아닌 겉보기에 잘 나가는 은행원이지만 실은 공금을 횡령해 미두와 주색에 탐닉하는 난봉꾼 고태수와 결혼한다
고태수는 결혼 전 하숙했던 쌀가게의 주인 한참봉의 아내 김씨와 간통을 하였으나 결혼 후에도 김씨를 만나다 친구이자 추악한 용모와 탐욕스런 성격을 지닌 곱추 장형보의 밀고로 한참봉에게 죽음을 맞이한다
고태수가 죽음을 맞이하던 그 즈음 초봉은 장형보에게 겁탈당하고 서울로 온 후 아버지의 친구인 박제호의 첩으로 전락하였다가 다시 장형보의 손아귀에 떨어진 끝에 그를 살해하고 만다
한편 초봉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던 남승재는 의사가 되어 그에거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는 초봉의 동생 계봉과 사귀게 되고 언니 초봉의 딱한 사정을 듣고 난 후 그녀를 돕기로 마음먹지만 이미 장형보를
살해한 초봉과 만나게 된다


구불6-1(탁류)길
길이 보여주는 군산의 근. .현대사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출발하여 군산근대역사박물관까지 걷는 짧은 길에 군산의 근.현대사가 상세히 담겨있다.
일본강점기때의 국도복합영화관 건물이 남아있고,
(구)조선은행과 옛 세관등 수탈의 시대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이 건물들은 식민지 경영에 필요한 권위와 당당함을 과시하려는 의도였으리라.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군산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니 꼭 방문해보자.
선양동 해돋이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오른쪽은 금강하굿둑이, 아래에는 개복동 비탈길이 보인다.
개복동 비탈길을 따라 걷다보면 개복동 예술의 거리가보인다.
군산의 옛자취를 느낄수있는곳이다.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群山 内港 뜬다리 埠頭(浮棧橋)
Floating Wharf. Gunsan
국가등록문화유산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뜬다리란 부두에 네모진 모양의 배를 연결하여 띄워서 수면의 높이에 따라 위아래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만들어 놓은 다리 모양의 구조물이다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는 1926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1938년에 완공하였다. 이
뜬다리 부두는 군산항의 육상 영역에서 선박으로 연결되도록 하였으며, 육상 연결부가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회전이 가능하도록 하고, 여러 대의 대형 선박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는 철도를 통해 군산항으로 운송되어 온 쌀을 선박으로 옮길 때 사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쌀 수탈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시설물이다.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긴
群山 内港 歷史文化 空間
Naehang Port History and Culture District, Gunsan
국가등록문화유산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군산 내항 역사문화 공간은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군산 내항 호안시설, 군산 내항 철도, 군산 구 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 군산 경기화학약품상사 저장탱크를 이른다.
군산 내항 역사문화 공간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대한제국의 개항 역사를 알 수 있는 구 군산세관 본관,
둘째. 일제강점기에 행해진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군산 내항 철도와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셋째, 광복 이후 대한민국 산업화를 볼 수 있는 군산 구 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 군산 경기화학약품상사 저장탱크 등이다.
군산 내항 역사문화 공간은 근대 항만의 역사, 근대 산업화 시기 어업과 산업 생활사 등
대한민국의 항만 역사를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구 일본제18은행
舊 日本第十八銀行 群山支店
Former Japanese 18th Bank, Gunsan Branch
국가등록문화유산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구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은 1911년 준공되었다. 군산 내항에 인접한 이곳 장미동에는 일제강점기의 금융기관과 공공기관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은 순종 원년(1907)에 처음 개설되었으며, 식민지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본인들은 이 은행의 자본으로 조선인의 토지를 사들였고, 그 토지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에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 건물은 1936년 조선식산은행에 매각되었으며, 1938년에는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훗날 대한통운)로 주인이 바뀌었다.
이 건물은 영업장으로 사용하던 본관과 사무동과 금고로 사용했던 부속 건물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관이 목조건물이었기 때문에, 금고는 별개의 벽돌 건물로 지어서 본관 후문을 통해 바로 연결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미즈카페
Miz Cafe
1930년대 건립되어 무역회사로 사용되었던 건축물이었으나
2012년도에 근대역사박물관 정면에서 이곳으로 이전, 개축하였다.
이 일대는 1910년부터 1945년 까지 쌀 수탈의 거점이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인들의 무역회사와 상업시설이 독점하는 거리가 되었다.
'산행 > 서해랑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해랑길55코스 군산ㆍ서천(장항) 2026.04.26 화요일 (1) | 2026.04.30 |
|---|---|
| 서해랑길54코스 군산 종점(진포해양테마공원)~월명공원 : 잘못들은 길역순으로 2026.04. (0) | 2026.04.16 |
| 월명호수공원 서해랑길54코스 2026.04.10 금요일 (1) | 2026.04.11 |
| 은파호수공원 서해랑길54코스 2026.04.10 금요일 (1) | 2026.04.10 |
| 서해랑길54코스 군산 2026.04.10 금요일 (0) | 2026.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