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서해랑길

서해랑길55코스 군산ㆍ서천(장항) 2026.04.26 화요일

방극만 2026. 4. 30. 03:49


군산 서해랑55코스 14.9km

진포해양테마공원 ~ 째보선창 0.7km ~ 서래포구 1.6km ~ 경암동철길마을 2.8km ~ 진포시비공원(5.7km) ~ 금강시민공원(6.8km) ~ 하구둑관광지(9.3km) ~ 장항도선장(14.9km)

09:24 군산 진포해양테마공원에서 14.9km 거리의 서천군 장항읍 옛도선장을 향해 출발
09:29~09:35 군산서해랑쉼터(군산항198 여객터미널)
09:38 째보선창

다시 가 본 와아했던 바른 길
10:15 앱도 없고 리본도 없는 길을 해메이다 찾아 온 서래포구 경포교
코리아둘레길은 앱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지만 역시 오늘도 그렇게 요리조리 찾아 헤메는 맛도 맛일지 모르겠다
10:19 당산제 : 강변로를 건너가는줄 알고 갔다가 다시 경포교로 와 경암동철길마을로 향했다
10:33 다시 돌아 온 경포교
10:34 한국서부발전 군산바ㄹ전본부
10:43 엔마트 :  
10:46 ~ 10:53 또 둘레길을 벗어나 버러 건너편에서 바라 본 경암동 철길마을에 사람들이 분주하기 시작한다
11:09 경암동철길마을이 끝나는 연안사거리에서 제 길을 찾아 강변길을 따 시비공원으로 향한다
11:05~11:26 군산 초기 선교사 비
11:32~12:06 강변로
12:06~12:45 진포시비공원
12:10~45 점심
12:47~12:50 금강체육공원길
12:50~13:04 금강시민공원
13:04~13:09 하구둑사거리에서 먼저 간 자전거하이커가 공사중이라며 반대편으로 긴다며 정보를 주고 간다
13:17~13:48 금강갑문교
13:48 금강로ㆍ장산로 하굿둑사거리
13:50 서천군 마서면 도삼리 751-4
13:51~55 김인전공원
14:08 서천군 보훈공원
14:23 원수교에서
14:38 구)보령해양경찰서 원수출장소
15:13 동백대교
15:37 물양장사거리
15:38 서천군 문화 예술 창작 공간
15:40 군산 서해랑길55코스 종점 장항도선장






진포해양테마공원



진포해양테마공원
Jinpo Maritime Theme Park
鎮浦海洋主題公園

군산 내항의 진포해양테마공원은 고려말 최무선 장군이 최초로 화포를 이용하여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을 기념하며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의 체험학습의 장으로 활용, 올바른 역사의식 확립과 자긍심 고취를 위해 당시 전투현장이었던 내항 일대에 육.해.공군의 퇴역장비
13종 16대를 전시하여 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4200톤급 위봉함 3,288m(지하2층, 지상4층)에 병영생활상의 모형 및 용품을 전시 재현하는 등 체험 위주의 전시공간을 구축하고자 흥미를 자아낼 수 있는 4D 영상관(시뮬레이터 입체영상관) 위봉함을 비롯한 해경정, 수류양용장갑차, 자주포, F-86전투기등 총 16대의 육.해.공군의 퇴역군장비를 활용한 체험형 복합 테마공간입니다.




진포대첩 The Battle of linpo

진포는 군산의 옛 이름이며,
진포대첩은 1380년 8월에 해적 집단인 왜구가 5백척에 이르는 대선단으로 진포에 침입하여 야만적인 약탈을 자행했을때 이를 물리친 전쟁입니다.
당시의 일을 기록하고 있는 고려사에 의하면, 왜구의 만행으로 죽은 우리 백성들의 시체가 산과 들을 뒤덮었고,
또한 약탈한 곡식을 나르면서 흘린 쌀이 한 자도 넘게 땅을 덮었다고 합니다.
고려 정부는 왜구를 진압하기 위해 해도원수 나세와 심덕부, 최무선 장군 등을 파견하였고,
고려군은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로 공격하여 왜선 500척
모두를 불살랐습니다.
진포대첩은 세계 해전사에서도 함선에서 화포를 사용한 최초의 전투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해상전투로서, 해전에 있어 새로운 전기가 되었습니다.


군산 내항 역사문화 공간
群山 内港 歷史文化 空間
Naehang Port History and Culture District, Gunsan

국가등록문화유산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군산 내항 역사문화 공간은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군산 내항 호안시설, 군산 내항 철도, 군산 구 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 군산 경기화학약품상사 저장탱크를 이른다.
군산 내항 역사문화 공간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대한제국의 개항 역사를 알 수 있는 구 군산세관 본관.
둘째. 일제강점기에 행해진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군산 내항 철도와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셋째, 광복 이후 대한민국 산업화를 볼 수 있는 군산 구 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 군산 경기화학약품상사 저장탱크 등이다.
군산 내항 역사문화 공간은 근대 항만의 역사, 근대 산업화 시기 어업과 산업 생활사 등 대한민국의 항만 역사를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6.25 참전 평화기
자유는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09:24 군산 진포해양테마공원에서 14.9km 거리의 서천군 장항읍 옛도선장을 향해 출발


최무선(崔茂宣, 1325~1395)

고려 후기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화기를 제조한 발명가.
1377년 화약 연구와 무기 생산이 가능한 '화통도감(火筒都監)'이 설치 되었다.
이곳에서 총포와 화전, 철령전, 피령전 등의 발사물, 질려포와 같은 폭탄, 주화 등의 로켓 화기,
신호탄 등 독창적인 무기도 개발되었다.
1380년에 금강 하구(전북 옥구군)에서 벌어진 진포 대첩은 최무선이 만든 화약 무기를 실은 전함을 이끌고 직접 전투에 나가 파괴력이 뛰어난 화포 등을 이용해 왜구의 군함을 모두 격침 시켜 큰 공을 세웠다.


군산항 뜬다리(浮棧橋)의 역사

뜬다리(부잔교)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특징을 살려 물에 뜰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정박시설을 건설한 다음, 부두에서 정박시설까지 다리를 만들어 밀물과 썰물시 상하로 움직이도록 한 선착장 시설물이다.

일제가 전라도 곡창지역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송출하기 위하여 뜬다리를
제3차 축항공사기간(1926~1933)에 3기를 설치하여 3천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후 3기가 추가되어 총 6기가 사용되었다.
*현재 3기만 남아있을



09:29~09:38
군산서해랑쉼터
(군산항198 여객터미널)



1899년, 군산이 첫발을 내딛다

일본은 1876년에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이후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식량과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서해안의 주요 미곡 생산지 개항에
힘썼다.
그 중에서도 군산은 개항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실제 군산의 개항은 1899년 5일 1인, 대한
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하여 이뤄졌고, 이후
이를 관리하려는 감리서, 경무서, 재판소, 세관,
우체사, 체신사 등 여러 기관이 설치되었다.


일본은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 이후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으로
우리나라의 침략을 점차 강화하며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

군산의 잊을 수 없는 이야기

이후에는 우리나라 군대의 해산과 사법권을 장악하며
식민지화 정책을 실행하였으며, 1910년에는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하여 본격적인 식민지 통치를 시작했다.
이러한 통치는 경제적인 수탈과 함께 국민의 탄압을
동반했으며 군산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군산은 쌀 수탈지로 이용되면서 지역주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으며, 이를 극복하려는 독립운동이 곳곳에서 전개되었다.

세계로 한발 나아가는군산

해방 이후 군산항을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으며, 1946년 조선항만조사단이
방문하여 군산항과 장항항의 수축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49년 총예산 3억 원을 들인 군산축항공사가 시작되었다.


군산항의 활발한 성장
군산항은 서해안의 특성상 흙과 모래가 많고 대형선박이 증가하며 운영이 어려워져, 1979년 외항 1부두를 지어
내항과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다.
1974년-1979년에는 외함을 개발하여 하역능력을 100만 톤 수준으로 늘렸고, 총 154만 톤의 역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985년부터 외함 2부두, 자동차 부두, 남측 안벽 일반 부두 등 추가로 규모를 늘리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다.

시간이 머문도시 - 군산

군산은 2000반대 이후 군산내항과 원도심을 포함한 근대도시 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관심이 커졌다. 그전까지는 산재한 근대 건축물이 노후 되어 방재 관점에서 살폈으며, 더이상 필요없는 건물은 철거했다. 하지만 2002년 '군산 차이나타운 개발 계획'으로 근대도시 유산의 보존과 활용의 구체적인 계획이 나타나면서, 2005년 '군산 근대역사문화경관가꾸기' 등
원도심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다양한 계획이 검토되었다.


군산사람들삶의 이야기

1945년 해방 이후 군산의 망신동, 월명동, 신창동, 신흥동, 영화동 등 일대의 주택가는 거주인이 한국인으로 바뀌면서 구조가 변경되있으며, 가옥의 내부도 다다미에서 온돌로 바뀌었다.

1951년에 설치된 군산의 피난민 수용소에는 약  56,654명의 피난민이 거주했다.
그 결과 해망동, 장미동. 흥남동, 선양동, 신창동, 순정동, 구암동, 경암동 등지에 판자촌이 생겼다.

1970년대에 토지구역정리 시업이 진행되며 일부 변두리의 농경지와 구릉지가 주거와 상업 지역으로 변했다.
삼학동. 문화동, 명산동 일대에는 주택 지역과 상권이 이뤄졌고 이후 도시 발전 축이 나운동, 수송동, 사정동,
구암동. 조촌동 발향으로 발전되면서 세로로 주적자구가 생겼다.

1979독터 군산의 주택 중 60%가 아파트로 바뀌었으며 1980년 대 말부터 나운동들 중심으르 대규모
아파트들이 지어졌다

2000년 대에는 이파트 단지가 수송동으로 확대대되어 들어섰으며 2010년 이후에는 30층 이상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거환경이 계속 변하고 있다.


군산구제일 사료주식회사공장
종목: 국가등록문화유산
명칭: 군산구 제일사료주식회사공장
소재지: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196
1973년에 당시 소유주인 제일사료주식회사에서
산업 시설(공장)용도로 신축한 건축물이다.
건축물 옆면에 일제강점기 시절 군산항의 주된
경관을 이루던 근대기 창고의 흔적이 잘
남아있다.


군산내항 뜬다리부두(부잔교)

종목 : 국가등록문화유산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장미동

군산 내항의 뜬다리부두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장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간조와
만조의 수위 변화와 무관하게 대형선박을 육지에
대고자 만든 시설이다. 군산항의 성격과 기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설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 가치가 높다.


구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종목: 국가등록문화유산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해망로 230

구일본 제 18 은행 군산지점은 일본이 곡물 반출과
토지 강매를 위해 설립한 금융기관 건물 종 하나이다. 본관은 단층이며, 부속 건물로 2층 건물 두동이 있다. 특이한 점은 왼쪽의 창고에 금고를 두고 본관과 연결되는 출입문을 금고문으로 만들어 둔것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초기 은행 건물의
특징을꽃 잘보여준다.




째보선창을 향해





09:48~0952
째보선창



몽깃돌길

몽깃돌이란 밀물과 썰물 때에 배가 밀려나가지 않도록 배꼬리에 다는 돌을 뜻합니다.
과거 번성했던 째보선창에는 몽깃돌을 드리우고 수많은 어선이 포구에 정박되어 있었답니다.
하지만 현재의 째보선창은 예전의 모습과 달리 폐선이 정박되어 생기를 잃은 공간이 되었답니다.
잠자고 있던 어선은 몽깃돌을 걷어올리고 다시바다로 나가길 기다리고 있답니다.



경암동철길마을을 향해




10:15~10:33
경포교에서 다시 가 본
와아했던 바른 길



당산제堂산祭

중동 당제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군산의 유일한 동제(洞祭)로,
제(祭)의 목적은 주민의 안녕과 복(福)을 축원하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였음을 제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농토는 대부분 주택 단지가 되었으나,
어업은 지금도 이곳 주민들의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있다.
당제는 분향:강신∙헌작∙독축 순으로 진행된다.
옛날에는 책 한 권 분량의 축문을 다 읽었으나 지금은 앞부분만 읽는다.
제관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소지틀 올리고 제를 지내는 동안은 풍물치는 사람 들은 대기하고 있다가 제가 끝나면 주민들이 올라와 음복하고 풍물 가락에 맞춰 흥겹게 어울린다
서래산에 있던 당집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기와집이었고,
그 옆에 당지기 할머니가 살면서 당을 지켰다고 한다. 당제의 대상은 산신과,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이공(李公). 오공(吳公) 조공(趙公) 등으로 정월 열나흘에 지냈으나,
요즘은 대보름날 지낸다.
현재 당에 모신 신령들 화상(畵像)은 현 위치로
옮기면서 새로 그려서 모셨고, 서래산의 당집 화상은 보존되고 있지 않다.
제관은 2명이며, 정월 대보름 며칠 전부터 동네 아주머니들이 목욕재계하고 술과 음식을 정성껏 준비했다고 한다.
제사가 끝나면 주민들은 풍물패를 앞세우고 거리제롤 지냈으며,
만조가 되는 시간에 맞춰 금강의 지류인 경포천 변[깨꼬랑]에 돼지 머리와 음식을 차려놓고 풍어제[용왕제]를 지냈는데,
요즘도 비슷한 절차로 행해지고 있다.



10:46~10:53
경암동 철길마을




11:05~11:26
군산 초기 선교사 비





11:32~12:06
강변로를 따라 금강하굿둑으로




12:06~12:45
진포시비공원




즐거운 식사 시간





12:47~13:04
금강체육공원길



12:50~13:04 금강시민공원





13:04~13:09 하구둑사거리에서
먼저 간 자전거하이커가 공사중이라며 반대편으로 긴다며 정보를 주고 간다




13:17~13:48
금강하굿둑 금강갑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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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55코스 장항 2026.04.26 화요일

서해랑길55코스 금강로ㆍ장산로 하구둑사거리~장항도선장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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