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무주군

구천동 어사길~백련사~향적봉 왕복 2026.02.28 토요일

방극만 2026. 3. 2. 08:30



주차장에서 어사길로



월하탄 (구천동 33경 중 제15경] (月下選)

월하탄은 선녀들이 달빛 아래 춤을 추며 내려오듯,
두 줄기 폭포수가 기암을 타고 쏟아져 내려 푸른 담소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다.


덕유산국립공원 깃대종 금강모치
Deogyusan National Park Flagship Species, Rhynchocypris kumgangensis

금강모치 [Rhynchoeypris kumgangensis]
0 서 식 지: 무주 구천동, 한강 최상류와 같은 수온이 낮고 맑은 물이 흐르는 산간계곡
0 서식생활 : 주로 무리 지어 서식하며. 수서곤충이나 작은 갑각류를 먹으면서 생활
0 특     징: 산란시기(4~5월)의 수컷은 체 측 중앙에 2줄의 주황색 띠가 머리 뒤에서 꼬리자루까지 이른다
등지느러미에 흑색반점이 있어 버들치나 버들개와 구별된다.

0 형    태: 몸은 납작하고 주둥이는 뾰족한 형태로 등 쪽은 황갈색, 배 쪽은 은백색이며, 성체의 길이는 7~8cm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란?
특정지역의 생태.지리.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ㆍ식물로서 사람들이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종입니다.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
DEOGYUSAN NATIONAL PARK OFFICE



숲 나들길
어사길 1구간
구천동 어사길 자연관찰로




향적봉(1,614m, 무주구천동 제33경)은 우리나라 아고산대 지형의 대표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곳으로,
확 트인 조망과 서늘한 기후로 인해 선명한 색과 진한 향을 가진 야생화를 만나 볼 수 있는 명소입니다. 향적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구천동계곡을 따라 흐르며, 구천동 어사길 곳곳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 줍니다

<숲나들길은 숲을 가벼운 마음으로 나들이 하듯 탐방할 수 있는 구천동 어사길의 첫 번째 구간입니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소담하게
피어있는 야생화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나들이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구천동 어사길 유래

구천동(九天洞)이라는 지명은 조선중기 덕유산향적봉기(德裕山香積峰記)라는 기행문에 구천명의 승려들이 수도하던 곳이라는 의미의 구천둔(九千屯)에서 유래하였으며,
어사길은 조선후기 어사 박문수가 구천동에서 자신의 위세만을 믿고 횡포를 부리는 자들을 벌하고. 백성들을 위해 사람의 도리를 바로 세웠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백련사(白蓮寺)까지 이어져 있는 구천동 어사길은 덕유마을이 형성되기 전부터 지역주민이 이용하던 길로 현재에도 과거 집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구천동 어사길은 자연관찰로에서 백련사까지 총 연장 4.9km로, 구천동계곡을 따라 형성된 무주구천동 33경 중 제16경 인월담 부터 제32경 백련사 구간의 아름다운 명소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어사 박문수

청렴의 상징 "암행어사 박문수" 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길로 항상 민초들의 편에서 가진자들의 비리를 척결하고 청렴을 주장한 인물로, 백성들에게는 한줄기 빛의 영웅이였던 박문수는 소설 <박문수전朴文秀傳>에
구천동에 대하여 설화가 실려 있다.


초록저수지 이끼

이끼는 아주 먼 옛날물에 살던 식물들이 땅 위로 올라와 살게 되면서 지구상에 나타난 식물이에요.
그늘진 곳이나 물가에 주로 사는 이끼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커다란 잎과 줄기를 만들지 않아 소량의 물만 있어도 잘 자랄 수 있어요.
물이끼는 물을 빨아들여 몸에 15~20배 이상 물을 저장하며, 우주공간에서도 살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요.
물을 좋아하는 이끼 주변에는 버섯이나 식물 등 다양한 생물들에게 물과 양분을 나누어 주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작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청렴길
어사길 2구간




구천동 어사길을 따라 걷다보면. 푸른 물줄기의 계곡을 뜻하는 청류동(淸流洞)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청류는 맑게 흐르는 물을 의미하며, 예로부터 선비들에게는 깊고 순수한 이상향의 의미로 인식되었습니다.

구천동 어사길의 두 번째구간 <청렴길>은 억울한 백성들의 고통을 살피고, 부패한 자들의 수탈과 횡포를 벌했던 어사 박문수가 다녀갔던 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구간을 걸으며 울창한 산림 속에서 오롯이 자신을 마주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자연이 들려주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면 욕심을 버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떨쳐낼 수 있을 것입니다.


소원성취의 문

옛날 금실이 좋은 부부가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때, 전쟁으로 남편은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부인은 매일 소원의 탑에서 남편이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를 하였다.
몇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없는남편을 위해 기도를 했던
부인의 정성으로 남편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소원성취의 탑아래 자리 잡고 있는 문으로 이문을 지나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화기 있다.


지혜의 문

옛날, 길을 돌로 막아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곡식,돈 등을 받아야 길을 열어주는 심술이 고약한 도깨비가 살고 있었다.
고심하던 마을 사람들은 한 가지 꾀를 내었다.
평소 힘자랑을 좋아했던 도깨비에게 길을 막고 있는 돌을 쪼개 보라고 하였고 큰바위가 두개로 나뉘게 되었다.
이를 지혜의 문이라고 일컬어지며 현재까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제19경 비파담琵琶潭 Bipadam

전라북도 무주군 덕유산(1614m)에 있는 계곡인 무주구천 동계곡(길이 28Km)의 33경 중 제19경에 해당되는 소(沼:못)이다.
비파담은 커다란 암반 위로 흐르던 물줄기가 여러 개의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넓은소( 김沼:못)로, 여러 물줄기를 타고 쏟아지는 폭포의 못이 마치 비파모양을 닮아 이름을 붙인 비파담은 하늘의 7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한 후 넓은 반석 위에 앉아 비파를 뜯으며 즐겼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비파담을 구성하고 있는 화강편마암은 20~19억 년 전에 안데스산맥과 같은 대륙화산호 지역에서 형성된 화강암이 18억 6천만 년 전에 변성작용을 받아 형성된 변성암이다
변성작용의 원인은 분명치 않으나 히말라야와 같은 대륙충돌에 의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치유길
어사길 3구간




구천동 어사길의 세 번째 구간 r치유길)은 구천동계곡과 월음령에서 흐르는 두 줄기의 물이 합류하는 구월담九月潭에서 시작됩니다.
구월담은 아홉 개의 달빛이 비추는 못이라는 의미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황홀감에
빠져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듯 아름다운 장관을 이룹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고 청량한 계곡 소리를 따라 걷다보면,
마음속 복잡한 생각들은 잠시 잊고 지친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줍니다.
봄에는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여름에는 우거진 녹음의 편안함을,
가을에는 열매의 충만한 에너지를,
겨울에는 하얀 눈이 쌓인 계곡의 절경을 보여주며 우리를 응원해주고 치유해 줄 것입니다.


이무기와 소나무

커다란 바위를 타고 자란 *이무기의 모습을 한 세 그루의 소나무를 찾아보세요.
오래 전 구천동계곡에서 덕유산을 지키던 아홉 마리의 이무기가 990년 동안 용이 되기를 기다리며 살던 중
큰 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 마리의 이무기는 바위를 끌어안아 위기를 모면했지만, 나머지 여섯 마리는 계곡을 따라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 1,000년이 되는 해에 살아남은 세 마리의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승천하려 했지만, 안타깝게 떠내려간 여섯 마리의 이무기를 위해 그 자리에 남아
덕유산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무기는 우리나라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용이 되기 전의 모습을 말합니다.








구천불과 김남관 대령
무주 태생인 김남관 대령은 60년대 초 구천동
관광개발에 뜻을 두고 구천동을 알려가는데
헌신했고 그 후 극락정토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구천 개의 불상을 설치하려 했으나,
현재는 23개 가 완공되어 있는 상태이다.
구천동주민들은 김남관대령의 공적을 기려 구천 상수도 인근에 장암김남관생공적비(長巖金南寬先生功積碑)를
건립했다.


무주군 제철유적 보고寶庫

무주 삼공리 제철유적(월음령계곡과 구천계곡)
무주군 향토문화유산

철은 인류의 역사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금속이다.
고대 가야사 연구 및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2018년부터 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재까지 무주군 일원에서는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60여 곳 이상의 제철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이 중 20여 곳 이상의 제철유적지가 월음령계곡과 구천계곡을 따라 평탄대지 곳곳에 자리하면서 전북
동부지역에서 단일 지역 내 최대의 밀집도를 보이고 있다

지금도 과거 제철 운영과 관련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무주 제철유적을 대표하는 유적으로 지정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무주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제철유적의 성격을 확인하기 위해 2019년부터 월음령계곡의 "삼공리 제철유적 B"와 구천계곡의 "삼공리 제철유적 P"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과정에서 채석장1), 제련로2), 단야로3), 숯가마4), 폐기장5) 등 철 생산공정을 보여주는 유구들과 송풍구6), 슬래그7), 노벽편8), 토기편 등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무주 삼공리 제철 유적지는 원료의 채광부터 제련, 단야 공정에 이르기까지 옛 선조들의 철 생산과 철기의 제직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1) 철의 원료가 되는 광석을 캐내는 곳
2) 높은 온도로 광석을 녹여서 철을 추출하는 가미
3) 철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원하는 형태의 철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가미
4) 철 생산에 필요한 연료로 사용하는 숯을 만드는 가마
5) 철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각종 부산물을 버리는 곳
6) 열기를 올리기 위해 바람을 불어넣었던 시루 형태의 구멍
7) 철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각종 부산물로 쇠똥이라고도 불리며, 위치에 따라 유출재, 노내재로 분류된다
8) 제련로, 단야로 등 가마에서 나온 벽 파편



안심대와 김시습

안심대는 구천동과 백련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쉼터이자 여울목 역할을 하는 곳이다.
큰 바위들이 계곡 사이를 잇는 디딤돌이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곳에서 허물없이 마음을 나눈다.
닫힌 마음의 문이 이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처럼
쏴아, 열리는 것이다.
이 안심대에는 우리에게 생육신으로 익히 잘 알려진 김시습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온다.



모두가 마음 놓고 쉬어 가는 곳
조선시대 생육신들은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버슬을 버리고 낙항하거나 아예 벼슬길에 나서기를 거부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세조의 즉위를 부도덕한 행위로 비난하였다.
원호.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원 그리고 김시습이 이 생육신들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난 김시습은 3세 때 글자를 배우기 시작해 5세 때 이미 시를 짓는 천재였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학문에 매진해 이른 나이에 <맹자>, <서경>, <주역>을 읽었으며 <제자백가>는 홀로 독학하였다.
하지만 15세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간의 무상함을 느끼고 속세를 떠나 절에 들어가 공부에만 매진하였다. 더구나 21세가 되던 해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계유정난을 겪자 3일간 통곡 후에 읽고 있던 책을 모두 불사른다.
'책에 아무리 인간의 도리가 쓰여 있으면 무엇 하는가? 나라의 임금이 이미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을.
김시습은 이후 떠돌이 승려가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는 방랑길에 오른다.
그러던 중 김시습은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듣는다.
단종을 왕위에 다시 올리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한 선비들의 시체가 길가에 짐승의 먹이처럼 내던져졌다는 이야기였다.
훗날 사람들이 사육신이라 부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의 시신이었다
"의를 행하다 목숨을 읽은 위인들을 그렇게 버려둘 수는 없다."
김시습은 당장 한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양에 올라와 보니 '사육신의 시체는 길가에 버려져 있고 그 주변을 관군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주위로 파리떼만 요란하게 윙윙거릴 뿐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겁이 나 아예 사육신의 시체 주변에 얼씬거리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관군들은 시체 가까이로 다가서는 승려 김시습을 막아섰다
"이보시오, 스님.뭐 볼 게 있다고 개만도 못한 죄인들을 보러 옵니까?"
"죄를 지은 인간이라도 그들을 극락에 보내기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 이 승려의 몫이지요.'
"하, 죄가 어디 보통 죄인가? 역모를 꾸민 자들의 시체요.' "진짜 역모를 꾸민 개는 따로 있지 않소?
승려의 말에 관군들이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비타불관세음보살을 외우며 뒤로 물러서는 김시습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김시습은 뒤돌아서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개만도 못한 것은 의를 행한 선비들이 아니라, 역모를 꾸민 자의 사냥개로 일하는 군관들이다.
잠시 물러 서 있던 김시습은 그 주위를 종일 지켜보았다. 그리고 새벽녁에 관군들이 잠시 쉬기 위해 사라진 틈을 타 시체들을 모두 수습하였다.
그리고 양지 바른 곳에 그들을 모두 묻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극락에 이르도록 기도를 올렸다
"언젠가 후세 사람들이 당신들이 지키려 했던 수호의 마음을 칭송할 것입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관군들은 발칵 뒤집어졌다.
그들은 승려인 김시습을 의심하고 수배령을 내려 그의 뒤를 쫓았다.
이미 한양을 떠난 뒤였지만 김시습은 그 후로 계속해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추적을 피해 전국 각지를 떠돌던 김시습은 마침내 무주 덕유산에 이르렀다.
관군은 덕유산의 험한 산세에서 길을 잃고 김시습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김시습은 구천동의 한 여울목에 이르러서야 잠시 발을 멈추고 쉬었다.
더는 관군이 쫓아을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바위에 기대어 한시름 놓고 쉬던 김시습은 자기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보시오, 스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김시습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멀리 탁발을 나갔다 백련사로 돌아가던 노승이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김시습이 자던 곳은 백련사와 구천동을 오가는 승려와 신자들이 개울물을 쉽게 건널 수 있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이 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스님은 김시습을 보고 씨익 미소 지었다. "아니, 저 밑에 관군들이 나를 불잡고 한참을 수색하지 뭐겠소.'
"그런가요,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졌을까요?"
김시습은 그 노승이 혹시나 자신에 대한 말을 들었을까 싶어 모르는 척했다.
"큰일이겠지.한 스님이 의를 행했으나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장례를 치러주었으니 말이오.
'그렇습니까? 누군지 참 홀릉한 일을 했군요.
그는 김시습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이고, 이거 거짓말을 못하는 스님이구먼.
얼굴에 다 쓰여 있으니 말이오.
김시습은 한숨을 내쉬고 자신이 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자, 이제 안심하시오. 이렇게 나와 만난 것도 다 부처님의 뜻이오.
나를 따라 백련사로 갑시다.
노승은 김시습을 백련사에 숨겨주었다.
며칠 간 덕유산 자락을 뒤지던 관군은 어쩔 수 없이 물러서고 말았다.
그 후, 김시습이 쉬어간 이 여울목을 생육신 김시습이 안심한 곳이라 하여 안심대로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