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경상남도

남파랑길46코스(남해바래길14) 이순신호국길 16.6km 2026.02.11

방극만 2026. 2. 12. 07:16




엄마의 길, 남해바래길 251km

500년 전부터 '꽃밭(花田)'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아름다운 보물섬 남해는 산과 바다. 다랭이논. 죽방렴. 그리고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꽃섬이다

남해바래길은 남해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을 두 발로 걸어 완벽하게 만나는 걷기여행길로 2010년 첫 길을 열었다

개통 10주년인 2020년 새롭게 리모델링 된 '남해바래길2.0'은 총 거리 251km로 본선 16개. 지선 4개. 섬지선 2개 코스로 구성됐다.
마을테마 바래길 2개 코스도 별도로 있다

본선 코스는 섬 전체를 연결하는 순환형 종주길로 11개 코스가 남해안 전체를 있는 남파랑길 90개 코스 중 36~46코스와 노선이 일치된다.

지선 코스는 코스별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단거리 순환형 걷기 여행길로 자가용 이용이 편하게 구성되었다

바래'라는 말은 남해 어머니들이 가족의 먹거리 마련을 위해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조개. 미역. 고등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일컫는 토속어이다


이순신호국길

새남해농협중현지점(하나로마트)~2.3~우물~2.1~백년고개~2.2~고현면행정복지센터~3.4~월곡~2.7~노량선착장


이순신호국길은 새남해농협중현지점(하나로마트)에서 시작한다.
바다와 떨어져 목가적인 느낌이 물씬한 마을길과 숲길을 따라 걷는 구간을 꽤 지난다.
소나무 울창한 백년고개를 넘어가면 정자나무가 아름다운 포상마을을 지나 고현면 소재지에 닿는다.
이 후 길은 다시 바다와 만나 이순신장군 전몰지인 관음포를 향한다.
이순신 순국공원부터는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육지로 올라와 노량 충렬사까지 운구되었던 이야기가 깃든 길을 따라 노량선착장까지 걷는다.



10:26 새남해농협 중현지점에서 출발
남해군 서면 중현리 회룡마을
10:45 중현ㆍ회룡마을 경계 화방로 사거리: 회룡 1.0km, 우물 1.2km, 운곡사 0.2km
10:49 중현마을ㆍ운곡사
11:05 우물마을
11:47 백년(곡)코개
11:54~12:14 백년고개 아래서 점심
12:22 백련암지
11:36 고현면 포상리 선원마을: 시점 5.98km,  종점 11.42km
12:44 포상마을 앞 삼거리 정자나무
12:55 고현면 소재지 대사리 새남해농협: 시점 6.87km, 종점 10.53km
13:02 탑동교차로에서 이순신 순국공원까지
관세음길을 따라 걷는다
13:21~13:28 뚝방길: 이순신 승전길
13:34 남해대로 지하통로 삼거리 이순신순국길
13:48~14:56 이순신 바다공원
16:11 설천면 덕신리 월곡항
16:46 설천면 노량리 감암마을
16:56 노량대교
17:03 남해대교





회룡마을에서 중현마을로





남해 운곡사



남해 운곡사: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남해 운곡사는 조선 시대의 학자인 정희보(鄭希輔)를 모신 사당이다.
정희보는 남해 출신으로 17세부터 함양군 수동면 당곡에 살면서 호를 당곡(唐谷)이라 하였다.
뛰어난 학문과 글솜씨로 유명하여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내렸지만,
이를 거절하고 평생을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영남과 호남 지역 선비의 절반이 그의 제자였다고 할 정도로 훌륭한 지방 교육자로 평가받는다.
운곡사는 조선 철종 4년(1853)에 세운 것이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허물었다가 고종 11년(1874)에 다시 지었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네모꼴의 처마에 세모꼴의 지붕을 올린 팔작지붕(八作지붕) 형식이다.




중현마을


중현마을
지금으로부터 약 550년 전에 정씨일가가 입주하여 처음으로 마을을 설립
그후 씨족이 번창하여 근등, 작은등으로 살게 되었으며 국가벼슬인 가선대부 및 통정대부 지낸 선조들에 의해 중계라 불러오다
45년 이후 행정편의상 중현으로 개칭되었으며
그리고 마을의 좌수가 거주하면서 서당겸 제당으로 건립한 운곡사는 인근마을의 유일한 학교육장으로 이용되었으며 현재 경상남도 도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망운산 줄기로 뻗어내린 산수 좋고 공기 맑은 마을로 정씨, 신씨, 양씨, 류씨로 이루어져 있는 전통적인 마을이다.




중현마을에서 우물마을로





우물마을




功德碑
여기 반순애 여사께서는 1919년 현촌마을 반씨가문
에서 태어 나 1 9 4 1년 우물마을 이씨문중으로 출가하시어 어려운 역경속에서 근검절약은 물론 화목과 우애를 생활신조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적선과 봉사로 살아오시면서 마을개발과 공익사업에는 자수성가한 문전옥답의 많은 토지 등 물심 양면 아낌없이 희사하여 지역 발전과 주민화합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기에 본인의 거룩한 공덕을 영세불망 이 비를 세움니다
서기1 997년 =월 일
우물마을 동민 일동




우물마을에서 백년곡고개를 향해





백년고개에서
선원ㆍ포상리를 향해



남해 전 백련암지는 사학산 동쪽 기술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다.
윗단과 아랫단으로 구분되며 법당으로 추정되는 윗단의 건물터에는 온돌 시설, 아랫단 입구에는 계단이 발굴
되었다.

이 절터에서 '장명원시납은병일구이태서長命願施納銀甁壹口李台瑞(이태서가 장수를 기원 하면서 은병 하나를 시주합니다)' 라고 쓰여 있는 기와가 출토되었다.
은병이 고려시대 상류사회에서 제한적으로 유통되었던 화폐라는 점에서 절을 지은 시기와 성격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절터는 선원마을에 있는 남해 전 선원사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두 유적에서 같은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고, 남아 있는 터의 모습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찰의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편 전 선원사지는 고려대장경 판각기에 해당하는 출토품과 더불어 자재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한 용도로 고쳐 지은 정황이 확인되어, 유력한 고려대장경판각지로
주목하고 있다.



仙源 마을 由來

朝鲜祖 25代 哲哲때(西紀 1850年代)
浦上部落과 分洞되면서 仙源寺라는 절(寺)이 있었다 하여 그 절(寺) 이름을 따서 仙源이라 부르고 있다。

특히 百蓮골과 仙源寺址에서 八萬大藏經의 板刻 흔적이 있어 KBS(한국방송공사)에서 現地調查를 할 만큼 遺緖 깊은 마을로 由來되고 있다.



포상마을
신라 신문왕 때 개뫼라 하다가 고려 때 개상(介上)으로 불리었다.
조선 태종 때 고현면 개칭과 함께 포구의 위쪽에 있다하여 포상浦上이라 부르게 되었다.





관세음길



관세음길은 남해군 고현면에 위치한다.
정지장군을 기리기 위해 설치된 정지석탑(鄭地石塔)과 이순신장군의 순국을 기리는 '이순신 순국공원'을 잇는 산책길이다.
남해의 고즈넉한 자연의 분위기를 생생히 감각할 수 있는 이 길에는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공간에 흐르는 역사속에서 시간적인 '나'의 위치를 상상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길 바란다.
바다와 산과 들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이길을
걸으며 마음의 평화가 깃들기를... *<관음포 대첩>, <노량해전>, <팔만대장경 조판>

정지석탑
정지석탑에서 굴다리밑을 지나고 대사천을 따라 관음포바다를 향하는 둑길아다.
길위에는 이순신장군의 어록과 휴식공간이 곳곳에 있으며 양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자연을 관찰할 수 있다.

정자
바다와 길 사이에 둑이 아늑한 풍경을 만드는 조용한 길이다.
길을 걷다 보면 놓은 둑이 산책자를 포근하게 감싸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구간이 끝에는 관음포 경치를 감상하고 휴식할 수 있는 정자(亭子)가 있다

이순신순국공원
정자(亭子)에서시작하여 마을 뒤쪽으로 난 작은 숲길을 지나서 '이순신 순국공원'에 닿은 산책길이다.
녹음 숲길을 걷고 나면 이순신 순국공원까지는 관음포
전경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


"나라의 흥망이 이 한 번의 전투에 있으니, 원컨데 저로 하여금 신령에게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소서"

國之興亡 在此 舉尚克相 子無作神羞

1383년 왜적은 20척의 전선을 이끌고 합포(마산)을 공격했다.
해도원수 정지장군은 47척의 전선을 이끌고 경상도로 출동했다.
고려함선이 관음포에 이르자 마침비가 내렸다.
화포로 왜적을 공격하고자 했던 정지장군은 난감했다.
장군은 사람을 보내어 지리산의 신사에서 비가 그치기를 빌었다
마침내 비가 그쳤고, 관음포까지 진격한 왜적과 전투가 시작되었다.
정지장군은 머리 조아려 하늘에 절하고 전투를 독려하였다.
왜적의 주력 전함20척이 돌격해 오자 화포로 17척을 대파하였다.
왜적들이 잎을 다투어 패주하자 정지는 장수들에게 말했다.

"내가 일찍이 말을 땀흘리게 하면서 적을 패퇴시킨
일이 많았지만, 오늘 같은 쾌거는 없었다"

남해 관음포대첩은 최영의 홍산대첩, 이성계의 황산대첩,나세와 최무선의 진포대첩과 함께 고려말 왜구를 무찌른 4대대첩으로 불린다.


<제1장>
하늘의 끝, 땅의 변두리. 한 점 신선이 사는섬,
왼쪽은 망운산(望雲山)이고, 오른쪽은 금산 (錦山).
봉내와 고내 흐르고, 산천이 기묘하게 뛰어나 호걸과
준사(俊士)들이 모여 나니, 인물이 번성했네.
아, 하늘 남쪽 경치 아름다운 곳의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
풍류와 주색을 즐기는 한 시절의 인걸들,
풍류와 주색을 즐기는 한 시절의 인걸들.
아. 나까지 몇 분입니까!

화전별곡 해석(출처 : 남해 유배문학관)
자암(自巖) 김구(金絿,1488-1534)






이순신바다공원



이순신바다공원 종합안내도

이순신 바다공원은 공원의 한 면 전체가 바다를 향하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보이는 바다는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이었던
노량해전이 벌어진 격전지이자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바다입니다

축구장 9개가 들어가는 넓은 면적의 공원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유적 광장과 야외 전시장, 놀이터 등
이순신 장군에 대해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특히 사적으로 지정된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에서는 1832년에 세운 유허비와 비각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울창한 소나무와 동백숲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첨망대로 이어지는 숲길을 거닐며 이순신 바다공원을 오롯이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순신바다공원 2026.02.11 - https://bkm2400.tistory.com/m/3429

이순신바다공원 2026.02.11

이순신바다공원 종합안내도이순신 바다공원은 공원의 한 면 전체가 바다를 향하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보이는 바다는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이었던노량해전이 벌어진 격전지이자 이순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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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포항








차면항








구포





설천면 덕신리 월곡항





설천면 노량리 감암마을





노량대교





남해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