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진안고원길

진안고원길 6구간 전주 가는 길 : 메타쉐콰어어~부귀 12.7km 2025.04.19

방극만 2025. 4. 20. 03:32



부귀면 세동리 메타쉐콰어어 주차장~부귀면 행정복지센터 12.7km  

전주 가는 길
진안과 전주를 잇는 웅치, 적내재, 조약치, 보룡재 등이 과거와 현재의 기억 속에 공존하는 길이다.
세동리 메타세콰이어길에서 시작해 금강과 섬진강, 만경강 물이 나뉘는 정맥분기점 주화산을 지난다.


09:21~10:10 아스팔트 도로 : 메타~모래재터널ㆍ전주공원
10:10~11:08 산길 : 11:08 부귀 6.3km, 메타 6.6km
11:08~11:21 부귀 6.3km, 메타 6.6km  조금 지나 시멘트 오르막 후 임도 끝까지
11:21~11:49 임도 끝부터 봉암리 부천마을까지 하산 산길
11:49~13:19 봉암리 부천마을 소태정교회에서 편백숲까지 시멘트
14:35 거석 다목적구장 위 고개까지 산길
14:56 부귀면 행정복지센터까지 시멘트




09:21~14:57 진안고원길 6구간 메타~부귀 12.7km(가는 길에 부귀 편백숲을 들른다)
부귀면 세동리 메타쉐콰이어 길 주차장에서 출발
09:23 메타쉐콰이어길 인증샷
09:34 신기덕봉마을 입구
09:35~09:37 큰터골마을
09:39 운장산박물관
09:42 적천교 갈림길
09:44 부귀 11.1km, 메타 1.8km
09:47 적천마을에서 모래재로 건너 냇가로 진입
09:53 다시 모래재로 : 부귀 10.3km, 메타 2.6km
10:01~10:10 모래재 휴게소
떡 나눠 주기에 바쁜 총무님 마이산수향 떡방앗간
010-5172-6797
마이산생쌀막거리 한 잔
모래재휴게소에서부터 부귀 6.3km, 메타 6.6km까지 산행 후 임도 끝에서 봉암리 부천마을까지 다시 산행으로 내려 간다.
10:19 모래재 : 부귀 9.1km, 메타 3.8km
10:28 편백나무숲 삼거리
10:33 주화산(조약봉) 쉼터
10:39 인증샷 : 주화산(조약봉565m) : 금남정맥,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분기점
우리나라 세 번째인 임도까지 급경사로 하산 후 봉암리 부천(정천 수몰민이 부귀에 정착한 촌락)까지 서미트CC를 오른 편에 끼고서 임도가 오르락 내리락 이어 진다
10:46 임도 : 부귀 8.1km, 메타 4.8km(주화산 0.22km, 모래재휴게소 1.15km)
11:08 부귀 6.3km, 메타 6.6km 조금 지나서부터는 임도 끝까지 시멘트길을 힘겹게 올라야 한다
11:21 11:10경 시작한 시멘트길이 11분 만에 끝이나고 다시 흙길이다    
11:29 임도 끝에서 부천마을로 하산 : 부귀 6.3km, 메타 6.6km
11:49 편백숲까지 시멘트 길 진행 : 부귀 4.4km, 메타 8.5km
11:55 봉암리 부천마을에서 기존 고원길을 벗어나 소태정교회에서 점심 식사 후 편백숲으로
11:57~12:46 소태정교회 점심 : (유)도슭담다의 황태미역국 봉사와 마이산생쌀막걸리의 블루버리 막걸리 봉사
12:59 부귀 3.2, 메타 9.7km
13:04 봉암1교에서 고원길 이탈하여 봉암교 지나 편백숲으로
13:07 개울 건너 운장로 따라 부귀 편백숲으로
13:19~14:25 부귀 편백숲
14:30 거석사거리에서 고원길 만난 후 바로 산고갯길로 이탈
14:46 거석리 부귀 다목적구장
14:48 충혼탑
14:52 신거석마을
14:56 부귀면 행정복지센터
15:12 메타쉐콰이어길 정류장 회귀





임진왜란 웅치 전적 壬辰倭亂熊崎戰蹟
사적
임진왜란 웅치 전적은 당시 조선군이 왜군과 전투를 벌였던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일원과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원을 말한다.
음력 1592년 4월 13일 조선에 침략한 왜군은 6월 말경 전라도를 제외한 조선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였다.
하지만 선조가 왜군을 피해 북쪽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순신의 활약으로 바닷길이 막혀 전쟁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왜군은 전라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592년 7월 8일 새벽, 왜장 코바야카와 타카카게가 이끄는 왜군이 전주로 진출하기 위해 웅치를 공격해 왔다.
김제군수 정담,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이 이끄는 조선군은 진안 세동리부터 완주 신촌리까지 방어선을 구축하고 왜군과 혈전을 벌였다.
결사적으로 맞섰지만, 왜군의 지속적인 공격에 조선군의 1차 2차 방어선이 무너지고 최후 방어선인 웅치 정상부에서 정담을 비롯한 많은 군사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선조수정실록,『징비록」 등 여러 사료에 따르면, 당시 전투가 끝나고 왜군들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함에 감탄하여 조선군의 시신을 묻고 추모하는 뜻을 담아 조조선국충간의담 「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고 쓴 푯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7월 9일 웅치를 넘은 왜군은 안덕원 근처까지 진출했지만, 웅치 전투에서의 심각한 전력 손실로 인해 안덕원 전투에서 황진에게 패배하였다.
또 전주부성 이정란 장군의 필사적인 방어 태세 등에 전의를 잃고 7월 10일 진안으로 철수함으로써 전주부성 점령에 실패하였다.

이후 웅치 전적지 일원에서 활약한 조선군이 이치 전투에도 참전하여 승리하면서 왜군의 전라도 점령 의욕은 완전히 꺾였다.
결국 웅치·이치 전투가 있었기에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을 수 있었고, 이는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이 승기를 잡는 요인이 되었다.



박병순생가
구름재 박병순 시조시인
최초의 시조 전문지 '신조' 발간
나라사랑, 한글사랑, 시조사랑의 삼애(愛) 실천
인생과 자연의 교간 통해 존재론적 자아 형상화
'무궁한 겨레의 가슴가슴에 불씨 되어 타리라'

박병순(朴炳7, 1917~2008)은 진안군 부귀면 출신이며 아호는 '구름재이다.
2016년에 복원된 생가는 모래재 메타세콰이아의 길 입구에 "구름재 박병순 생가"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스승인 가람 이병기에 이어 한국현대문학사에 시조의 가치와 의미를 대중적으로 확장시키고, 시조 부흥에 정념을 쏟았던 구름재 박병순이 살던 곳이다.
1917년 출생하여 1939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집에 살았던 구름재 선생은 나라사랑도 남달랐으며 집 둘레에 무궁화를 심어 울타리로 삼고, 한글보급운동에 힘써 우리말글 지킴이로 위촉받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쓰여진 대표적인 시작품은 '무궁화,「속금산』 등이 있다.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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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고원길 6구간 전주 가는 길 : 주화산~부귀 8.3km 2025.04.19

금남정맥,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인 주화산(조약봉565)에서 시작하여 중간에 경로를 변경하여 편백숲을 지나 부귀면 행복지원센터로 8.3km +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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