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김제시

아리랑문화마을(김제) 2026.03.24 화요일

방극만 2026. 3. 25. 08:51






14:35~14:48일제수탈관



부모 잃은 아이
일제 총칼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하나 같이 이런 모습의 거지가 되어야 했다.  ~작가 김래환~


구마모토공적선불망비비(熊本利平公積善不忘碑)
본 비석은 구마모토 리헤이 (熊本 利平)의 은덕으로 가뭄에 종자를 대어 추수가 가능했다는 내용이다. 구마모토 리헤이는 1930~ 1940년 군산 개정에 본거지를 두고 1개 부(당시 군산), 5개 군(김제 . 정읍 등 ), 26개 면, 1,200 여만 평의 땅을 소유한 전북 최대 일본인 지주였다.
구마모토의 농장경영은 일본인과 똑같은 고액의 월급으로 조선인 관리자를 고용하고 일본에서 관리자를 통해 소작농들을 원격 관리하는 방식으로 비료와 최신 농기구를 빌려주고 고리의 소작료와 비료대, 기계 사
용료까지 착취하였다.
그 바탕에는 생산력 증대를 통한 쌀 수탈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작동하였다.


망원경
망원경은 이전의 이야기 속 '천리안'을 대체하였다.


수세발(手洗鉢)
수세발은 신사에 설치되는 참배 전 손을 씻는 바
위 용기다.
김제신사는 1924년 3월 10일 , 하시모토
나카바 (橋本 央)를 창립총대로 현재의 성산에 설치
되었다.
본 수세발은 1960년 3월 , 성산에 순국선열 충혼비가 설치된 후, 태극문양을 두른 채 잔존한 일제의 흔적이다. 2015년경 벽골제박물관이 이관한 자료를 재현하였다.


사진기
사진기 앞에서 펑하는 소음과 연기를 겪으면 신기
하게도 사람들 모습이 종이에 박한다.
신기한 이 현상을 두고 사진을 많이 찍히면 혼이 나간다'는 두려운 해석이 뒤따랐다.
기존의 체제를 뒤흔드는 신문물은 국권침탈과 함께 공포심을 자극하였다.


라디오
전기, 전파, 통신이 파발과 보부상이 가져오는 풍문을 즉각적으로 대체했다.
네모난 장방형의 장자에
서 음악과 소식이 직접적으로 향촌에 전달된다.

남포(램프, 이칭 호통)
돈푼이나 있는 집들은 으레 남포등을 방마다 갖추는 것이 새로 일어난 바람이었다.
그런 소비상품을 실어온 배들은 그냥 돌아가지 않았다. 배마다 쌀을 가득가득 싣고 떠나갔다.
결국 남폿발이 환하게 타오르는 것은 쌀은 태워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아리랑 1권, 11 장 혼탁한 물결 중

축음기
이제 장이나 잔치마당, 사당패가 서지 않아도 축음
기만 있으면 언제라도 음악을 듣게 되었다.

여행가방(슈트케이스, suitcase)
서구의 여행가방이 봇짐과 보따리를 대체했다.
가죽으로 제작되고 잠금장치에 손잡이까지 달린 장방
형의 여행가방은 개방된 자유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후로도 긴 시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에 불과했다.


전쟁무기를 만들기위하여 가정 내 사용되던 제기를 포함한 각종 유기가 강제 공출되었다.


천인침(千人針, 센닌바리)
몸에 착용하면 총알이 빗겨가고 착용자가 수호된
다고 믿어진 일종의 부적이다.
천명이 한땀 한땀 정성을 모아야 한다는 기원행위까지도 부녀의 동원이 강제되었다.
군산 동국사 소장자료 재현

강제징병
일제의 침략전쟁이 중일전쟁으로 본격화하면서
1938년 , 일제는 조선지원병 제도를 실시하였다.
당시 2만여 명의 조선 젊은이들이 최전선의 총알받이
로 징병했고, 약 12만 명의 조선인들을 군속으로 끌
고 갔다.
또한 400만 명 이상의 조선인들을 징용했는데, 이 중 150만 정도가 해외로 끌려가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울부짖는 의병
두팔 뒤로 묶여 작두날에 목이 1/3쯤 잘리고 있는,
울부짖고 있는 의병의 모습








14:49~15:00 일제수탈기관



구마모토 리테아의 적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흉년이든 해 구원할 이 남쪽에 나타나 그 작인들을 불쌍히 여겨 많은 재물을 기부하고 또한, 종자를 베풀어 그 것으로 추수하니, 비석을 세워 공을 기록하고 이를 영원토록 잊지 않는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1924년 극심한 흉년으로 정읍, 김제 등 1,200 여만평의 농장지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가 농사지을 종자를 주어 농사짓게 됨을 고맙게 역겨 1925년 5월에 세운 비석이나 궁극적으로 쌀  수탈을 위한 방편이었다
기증자 정용석 (죽산면 내촌)







14:54~15:00죽산주재소



불령선인 명부(不逞鮮人)
불령선인이란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 ? 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자,
상시적으로 감시해야 할 대상이 있다.
이들은 일제의 행정과 치안의 단위인 면과 주재소에 의해 명부가 작성되어 사찰되었다.
요즈음 말로 바꾸면 블랙리스트가 이에 해당된다.


벽관고문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로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벽관에 10시간씩 가둬 놓으면 생리현상 등이 안에서 해결해야 했어요
김제시 아리랑  소설 문학마을




14:59
죽산정미소




14:59
죽산우체국竹山郵遞局





18:02~15:05
외리마을


감골댁

동학군이었던 남편의 병 수발로 생긴 빚 때문에 맏아들 방영근이 하와이로 팔려간다.
두 딸은 빼어난 미모로 인해 지주와 일본 앞
잡이들이 눈독을 들이는 등 온갖 수난을 겪는다.
남편과 함께 동학군이었던 지삼출네와 한가족처럼 지내며 딸 수국이 일본 앞잡이들에게 수모를 당하면서 만주로 이주한다.
그러나 경신참변 때 일본군에 피살된다.





송수익

유명한 양반가문 출신으로 하인에게 존대 말을 쓸 정도로 구습타파에 앞장서는 등 진취적이며 개화된 인물.
일본인의 앞잡이로 논을 팔라고 회유하는 자를 혼냈다가 헌병대에 잡혀간 것을 문중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나자 무력투쟁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의병활동을 전개하여 승승장구하지만 결국 일본군의 의병 대토벌작전에 밀려 의병대를 해산하고 후일을 기약한다.
먼저 만주로 떠나 활동지를 물색한 뒤 그를 따르던 의병들인 배두성, 양승일, 김판술, 손필녀, 천수동 등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친다.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대종교에 입교하는 등 그때 그때 의식무장까지 갖추는 인품과 덕망이 독립투사의 표본이다.
관동군 총사령관 살해 음모로 관동군에 잡혀 15년 징역 선고를 받고 복역중 옥사한다


차특보

차갑수의 아들로 아버지가 총살 당하고 어머니마저 자살하자 동생 옥녀와 떠돌이 생활을 한다.
산소에 갔다 오던 중 주막집 주모의 꼬임에 따라갔다가 동생이 놀이패에 팔려가는 생이별을 겪는다.
김제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할 때 공허와 인연이 되어 신세호의 집안일을 도와 살며 신세호의 차녀 하엽과 사랑을 느끼지만 맺어지지 못한다.
동생이 명창으로 돈을 벌어 논을 사는 덕에 자작농이 되며 공허의 중매로 결혼하게 된다.
신혼 초(일제 말엽)에 징병되어 강제로 노역하다 탈출하여 아이누족의 도움으로 피신한다.





대나무숲

일찍이 선조는 대나무를 벗 삼아 자연을 노래하고 풍류를 즐겼다.
바람이 불때마다 맑은 공기를 뿜어내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대나무 숲을 만날 때마다 낙엽이
쌓여 있는 우물터나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사금파리 속
에서 아주 오랫동안 사람이 살다간 흔적은 우리네 삶을
품고 자라고 있다.
대나무는 순절충신의 상징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민충정공이 을사보호조약에 반대하여 자결한 자리에서 돋아났다는 혈죽의 유래
에서 더욱 그러하다.


당산나무

당산나무는 하늘 뜻을 받들어 땅을 내리고 땅의 바람을 받들어 하늘에 올리는 고결한 일을 해낸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을 전체를 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당산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 아리랑 2권. 번뇌의 불 중에서 -

당산나무는 고사터, 잔치마당, 회의장, 휴식터, 놀이터, 재판장 등 마을 공동체의 삶의 중심에 자리하여 환기시키는 대동(大同)의 상징이었다.
소설 아리랑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죽음이 다루어
진다.
그중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토지조사사업에 이의를 제기한 차갑수는 마을공동체의 상징인 당산나무에 묶여 공개적으로 총살형에 처해진다. (아리랑 4권 중)

일제 당국에 의해 자행된 '당산나무 처형' 은 마을공동체의 가장 신성한 공간을 훼손하고 민중에게 두려움과 공포심을 주는 수단이었다.
이것은 식민지 민중과 산하(山河)가 함께 겪어야 했던 피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15:09~15:11
내촌마을



손판석

지삼출과 함께 의병활동 중에 붙잡혀 신작로 공사장에서 노역하다 탈출하여 군산 부두의 노동자로 일한다. 중국인 노동자들과 부두 일자리를 두고 싸우다 다리 불구가 되어 지삼출 등과 함께 만주로 떠나지 못하고 군산에 남는다.
서무룡의 중계로 쌀 창고십장으로 일하게 되지만 공허의 독립군 연락책으로 계속 활동하며 보름이를 낙미쓸이로 취업시켜 주는 등 도움을 준다.



지삼출

머슴 출신으로 감골댁 남편과 동학 농민군으로 투쟁했던 빈농 출신으로 강직하고 굽히지 않는 성격이며,격동의 시대를 꿋꿋하게 산 인물.
감골댁과는서로가족처럼 의지하며 살아간다.
방영근의 하와이 이민금을 장칠문이 속여 떼어먹자 그를 폭행하고는 경부선 철도공사장의 강제노역에 끌려간다. 풀려나온 뒤에는 송수익을 따라 의병활동을 하며 의병이 해체되자 군산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다가 수국이의 일로 방대근과 함께 백남일을 폭행하고 만주로 이주한다.
송수익을 평생 옆에서 모시고 독립군으로 살며 해방을 갈망하는 독립투사의 초상이다.










15:14~15:28
하얼빈 역





제1전시실




15:24~15:28
제2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