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상고/동창회

청풍문화재단지ㆍ케이블카ㆍ한마음시장ㆍ전주로 : 전주상고30회 2025.04.05

방극만 2025. 4. 5. 23:15


15:00 청풍나룻터 문화재길 주차장
15:18~15:37 청풍문화재단지 : 청풍면 물태리

15:51~16:22 청풍호반케이블카 :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17:14~17:30 제천역전 한마음시장

17:40~21:07 전주로가는 기차여행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소재



제천 청풍 팔영루
堤川 清風 八脉樓 Geumbyeongheon Hall in Cheongpung, Jecheon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Chungcheongbuk 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35
팔영루는 옛 청풍부를 드나드는 성문 위에 지은 건물로 조선 숙종 28(1702년)년에 청풍부사 이기홍이 지으면서 남덕문覽德門이라 불렀다.
이후 고종 7년(1870)에 부사 이직현이 근남루와 함께 다시 지었고, 고종(1863~1907) 때의 부사 민치상이 청풍팔경을 즐기기 위해 여덟 수의 팔영시詩를 지은 뒤로 팔영루라 하였다.
이 누각 안에는 마루를 깔았고 난간을 둘렀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198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소에 얽힌 전설

소에 얽힌 어떤 전설이 있다.
태초에 옥황상제와 인간 세상과의 전령으로 소가 뽑혔다.
옥황상제가 "사흘에 한 번 식사를 하도로 하라"고 인간에게 전하도록 했으나 건망증이 심한 소가 그 지시를 잘못 전달했다.
"하루에 세번씩 하라는데요.
이로 인해 인간은 끼니를 채우기 위해 9배로 일해야 했다.
"먹는 즐거움"을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이는 인간에게 엄청난 고통의 시작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준만큼 소는 죽을 때 까지 인간을 위해 일하고 죽은 다음에도 고기에서 가죽까지 모든것을 헌납하며 잘못을 사죄 하고 있다고 한다.

연자방아
둥근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어서 이를 마소가 끌어 돌려 곡식을 찧거나 빻는 도구 입니다.




제천 도화리 고가 堤川桃花里 古家
Historic House from Dohwa-n, Jecheon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Chungcheongbuk-do Tongible Cultural Heritage No. 63
이 집은 청풍면 도화리에 있던 옛집으로 지금의 살림채는 ㄷ자형이지만 앞쪽에 一자형 건물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트여 있는 ㅁ자형으로 건물을 배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동쪽의 방 2칸은 사이에 장지문*을 설치하여 한 개의 방으로도 사용한다.
그러나 이 집은 방 사이에 벽을 설치하고 문을 달았는데, 이는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장지문 방과 방 사이, 또는 방과 마루 사이에 칸을 막아 끼우는 문


제천 황석리 고가 堤川 黄石里 古家
Historic House from Hwangseok-ri lecheon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제84호
Chungcheongbuk do Tangible Cultural Hentage No. 84
황석리 고가는 청풍면 황석리에 있던 옛집으로, 초가집인 문간채와 ㅡ자형의 안채, 기와를 올린 화장실 등 3동으로 되어 있다.
안채의 왼쪽 부엌 앞에는 작은 뒤주를 두었는데, 곡물이나 먹거리 등을 저장한 공간으로 보인다.
3칸의 방은 한 공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방과 방 사이에 문을 달아 놓은 것이 특징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조선 시대 시골의 양반집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제천 후산리 고가 堤川 後山里古家
충정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
Chungcheongbuk 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85
후산리 고가는 청풍면 후산리에 있던 옛집으로 지금은 ㄱ자 모양의 안채만 님아 있다.
안방 뒤에 수납 공간인 윗방을 둔 점과 마루 한 구석에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제사방을 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기둥 위를 잇는 큰 나무와 지붕이 만나는 꼭대기 사이를 받친 나무가 이 집의 독특한 부분이다
후산리 고가는 평면과 가구 형식 등에서 조선 시대 제천의 부유한 농민 집의 건축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제천 지곡리 고가 堤川 池谷里 古家
коле нешто этon Agelin secheon
충청북도 유정문화재 제89호
Chungcheongbuk 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B
지곡리 고가는 청풍면 지국리에 있던 옛집이다.
부억 앞에는 식료품이니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두는 고방이 있고, 부엌과 고방 사이에는 격과 문에 판자를 들렀다.
이는 오래돈 집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대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꺾인 곳에 기와를 올린 문과 담장이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경계를 구분한 것은 이 지역의 다른 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형식이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堤川 勿台里 石造如來立像
Stone Standing Buddha in Multae-ri, Jecheon
Treasure
석조여래입상이란 돌로 만든 서 있는 불상을 말한다.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은 긴 기둥 모양의 거대한 불상으로, 통일 신라 말기 불상과 비슷한 당당한 느낌의 어깨, 형식화된 목의 주름, 사실적이지 않은 손 등에서 고려 초인 10세기 무렵 작품의 특징이 드러난다.
연꽃이 새겨진 8각의 대좌* 위에 부처의 발을 조각하였는데,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과 기법이 비슷하다.
본래 청풍면 읍리에 있었는데 충주댐을 만들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1985년 청풍문화유산단지로 자리를 옮겼다.
*대좌: 불상을 올려놓는 대



금남루(錦南樓)는
조선 순조 25년(1825)에 청풍부사 조길원(趙吉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1870)에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고쳐 지었고, 고종 37년(1900)에는
부사 현인복(玄仁福)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하였다.
청풍면 읍리의 청풍초등학교의 교문으로 사용되다가 충주댐을 만들면서, 다른 관아 건물과 함께 198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층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한다.
2층에는 난간을 둘러 멀리 있는 적의 상황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도호부 관청임을 알 수 있는 조길원이 적은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 현판이 건물의 앞면에 걸려있다.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라는 현판은 건물을 세울 당시에 부사 조길원(趙吉源)이 썼으며, 금남루(錦南樓)의 배면에는 "금남루(錦南樓)"의 현판이 올려져 있다.
금남루(錦南樓)는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으로서 비교적 큰 건물이다.
누하(樓下)부분의 기둥은 모두 장초석을 두어 권위적인 외관을 갖추었다.
후면 우측에 계단을 놓아 누 위로 오르게 하였는데,
누상(樓上)의 바닥은 우물마루로 깔고 사면에 계자난간으로 돌리고 있다.
금남루(錦南樓)는 관청의 정문이라는 상징성과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이 잘 표현된 지방 아문(衙門)으로,
건축사적 의의가 큰 건물이다.
〔출처:문화재청〕



제천 청풍 금병헌 堤川 清風 錦屏軒
Geumbyeongheon Hall in Cheongpung, Jecheon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
Chungcheo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34
금병헌은 조선 숙종 7년에 청풍부사 오도일이 지은 관청으로,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관아의 중심 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명월정이었으나, 영조 2년1726에 청풍부사 박필문이 다시 지으면서 금병헌으로 바꾸었다. 죄인을 가두었던 감옥인 부속 건물은 조선 말기에 없어졌고, 충주댐을 만들면서 198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제천 청풍 응청각 堤川 清風 凝清閣
Eungcheonggak Guesthouse in Cheongpung, Jechcon
충정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 Chungcheo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90

응청각은 조선시대 관아 건물 중 하나로 손님이 머물던 곳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길 수 없으나 조선 영종 초 이황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리 이름을 지었고, 인조 15년1737에 충청감사 정세규가 응청각에서 묵었다는 일기가 남아 있다.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한 듯하고, 2층은 원래 방이 있는 누각이었다.
『여지도서』에는 응청각이 한벽루 서쪽에 있으며 한벽루처럼 아름답다는 기록이 있다.
충주댐 공사 때문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여지도서』 1757년-1765년 각 읍에서 편찬힌 읍지를 모아 책으로 만든 전국 지방지



제천 청풍 한벽루 堤川 清風寒碧樓
Hanbyeongnu Pavilion in Cheongpung, Jecheon
보물 Treasure
제천 청풍 한벽루는 청풍 관아에 딸린 건물로,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 출신 승려 청공이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되면서 청풍현이 청풍군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누각*이다.
본체 옆에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형태로, 밀양 영남루(보물), 남원 광한루(보물)와 함께 조선 시대 누각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는 건물로 꼽힌다.
한벽루에서 보는 경치가 매우 빼어나서 조선 시대의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한벽루를 주제로 한시와 그림들을 여러 편 남겼다.
1972년 8월에 대홍수로 건물이 무너지고 현판들도 모두 떠내려가서 1975년에 본래 모습대로 다시 지었다.
원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을 만들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청풍문화유산단지로 옮겼고, 송시열이 쓴 현판은 사진을 보고 다시 만들었다.
*누각: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고인돌과 성혈(星穴)

고인돌(支石墓)은 선사시대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괴었던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일종의 무덤양식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형태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받침돌 위에 덮개돌이 있는 막자모양을 띄고 있다.
본 고인돌군은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청풍면 황석리 지역에서 옮겨온 남방식 고인돌로 특히, 중앙에 배치된 고인들은 하늘의 별 자리로 보이는 성혈(星穴)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전국에 있는 많은 고인돌 중 별자리가 표시되어 있는 고인돌은 그리 흔치 않으며, 약 2.50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풍화작용에 의해 다른 별자리들은 마모되어 알아 볼 수 없지만 북두칠성(큰곰자리)과 북극성 (작은곰자리)만은 선명히 남아 있다.

이 성혈은 묻힌 사람의 영생불멸을 기원하여 새긴 것으로 보이며, 별 자리의 위치로 보아 당시 4월~5월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청풍호반케이블카 :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하늘을 향한 희망 솟대
솟대란 기러기나 오리 등 새를 높은 장대 위에 형상화한 조형물로 고조선 시대로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삼한시대에는 인간의 소망을 기원하는 천제를 지낸 신성한 성역인 소도에 솟대를 세웠습니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훌륭한 인물이 나왔을 때 기념비적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온 솟대는 우리 인간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하늘을 향한 희망이라 하겠습니다.
솟대는 2004년 세계박물관협회 총회에서 대한민국 문화를 대표하는 공식 상징물로 선정되었습니다.
제천시 수산면 금수산 자락 청풍호반에 우리의 전통적인 솟대를 현대적인 조형물로 재구성한 수백여 점의 솟대를 세워 꿈과 낭만이 가득한 희망의 동산으로 가꾸었습니다.
전국 유일의 솟대 테마미술관인 능강솟대문화공간은 2019년 청풍호반 케이블카 개장과 함께 비봉산 정상에 솟대를 세워 이곳을 찾는 여러분의 소망을 담아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하늘에 기원합니다.
능강솟대문화공간







17:14~17:30 제천역전 한마음시장







17:40~21:07 전주로 가는 기차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