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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3차 18코스 2-2 : 오미~방광 12.3km (황전~방광), 2022.11.27

방극만 2022. 11. 30. 05:09




지리산둘레길제18코스 오미~방광 12.3km 1-2(오미~황전1길끝), 2022.11.27 - https://bkm2400.tistory.com/m/2120

지리산둘레길제18코스 오미~방광 12.3km 1-2(오미~황전1길끝), 2022.11.27

19코스 오미~난동 구간 18.9km는 2023년 2월까지 백연천복구공사로 인해 다음기회로 미루었다 20221127_06422720221127_070904 차 한 대 파킹 후 출발지 오미로 이동하였다 20221127_075416 20221127_075643 오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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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전  ~   방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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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인開城人 왕두석王斗錫님
전주인全州人 이종순李鐘順님의
후손은
진달래 벙그는 날
지리산 선영에서
자연으로 가는 집을 찾았네
섬진강 은어떼도 거슬러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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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마을의 유래
우리 마을은 민족의 영산이요,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 아래 자락의 화엄사와 천은사 그리고 섬진강물이 어우러지는 이 곳에 최초 경주 김씨 3세대가 선조 25년 임진왜란(15920년)을 피해 개기한 후 대대손손 풍요롭고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농촌마을로 변모해 가고 있다.
원래 마을 이름은 물이 차갑다 하여 물한리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한마을로 개칭되었으며, 지금도 깊은 산중에서 내려오는 물과 암반 속에서 솟아 오르는 샘물은 장수촌의 비결이 아닐 수 없다.
한 때에는 여순반란사건(1948년) 당시 지리산에 은거했던 빨치산의 소행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마을이었지만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오면서, 특히 1960년대 새마을사업 등으로 마을을 재건하여 이제는 지리산둘레길 거점 마을로서 방문객들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다.
조상들의 피땀어린 정성을 감사하면서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마을유산으로 물려주겠다는 주민들의 뜻을 여기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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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수 : 1982.12.03 지정, 수령 500년, 나무둘레 4m, 광의면 방광리 868,
정월대보름 날 밤 이장이 제주가 되어 마을의 태평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냄

느티나무는 어릴 때부터 쑥쑥 자라고 크게 자라며 오래살고,
또한 가지가 넓게 퍼지기 때문에 넓은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때문에 마을 어귀에 쉼터 겸 보호수로 많이 심었고,
느티나무는 오늘까지 시골마을 곳곳에 나이 든 노거수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방광권역 마을에 있는 느티나무들은 모두 당산나무 입니다.
당산나무란 크고 오래 사는 영험한 나무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특별하게 아끼고 기리는 나무를 뜻합니다.
공북마을에서는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0일에
왼새끼를 꼬아 만든 금줄을 이어 당산제를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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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光子孫萬世英, 鐘石齊人千年壽, 智里精氣受放光, 歲歲豊賳放光福.

20221127_125801 마을회관은 장소가 비좁아 주차장이 없다

방광마을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남양 홍씨가 피신해 거주한 후 마을이 형성됐다.
마을 이름은 이 마을에서 판관이 나왔다는 데서 유래했다.
즉 판관이 팡괭이로 변했다가 다시 방광으로 되었다고 한다.

이름에 얽힌 다른 전설도 있다.
지리산 우번대라는 암자에 노승과 사미스님이 살았는데,
어느 날 천은사 뒤 계곡을 오르다가 사미스님이 남의 밭에서 조 세 알을 손에 쥔 것을 본 노승이 '너는 주인이 주지 않은 조를 가졌으니
주인집에서 3년간 일을 해 빚을 갚으라"고 말하면서 사미스님을 소로 변신시켰다.

그 날 밭주인이 소를 발견해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이 소가 여물 대신 밥만 먹었고,
쇠똥이 땅에 떨어지면 빛을 내면서 곡식이 잘 자랐다 해서
방광리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지리산 차일봉(종석대) 아래 마을인 구례 방광마을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

첫 번째, 소원바위는 지리산 산신이 반달 모양의 참새미마을 계곡에 반해 자주 놀러 왔는데,
자식을 낳지 못하는 아낙네가 간절하게 자식을 기원하는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아낙네의 정성과 소망이 너무 애절하여,
그에 감복하여 노고단 정상에서 가져다주었다는 바위로
아낙네가 바위를 품고 소원을 빌어 아들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다.

두 번째, 아버지 감나무는 100여 년 전에 마을 아낙네가 소원바위에게 아들을 빌고 난 후 아들을 얻어 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심었다는 감나무라고 한다.
현재는 마을 전체 감나무에게 수꽃을 제공해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나무라고~~

세 번째, 당산나무는 마을 중앙에 있는 느티나무로 약 530년되었다.
지리산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수호를 위해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소원 바위
방광권역마을의 소원바위는 본래 계곡에 자리잡고 있던 것으로서
무당들이 자연의 신비스런 힘이 있다고 하여 굿을 하던 바위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막에 있는 문명은 척박한 땅보다 하늘을 더 숭배하엿기에 절대자를 기렸으나,
우리 민족은 퐁요로운 땅에서 살았기에 하늘뿐만 아니라
땅의 온갖 생명과 물질들에 대해서도 자연으로서 존중하고 대우하였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그들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경이롭게 바라 봤는데,
아마도 수억 살을 살면서 깨지지 않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이 바위에게도 모종의 경외감을 느꼈을 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