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전라남도

백련사 ~ 다산 초당(남파랑길 완도 ㅇㅇ코스 일부) 2026.05.25 월요일

방극만 2026. 5. 25. 19:11




12:22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 백련사
12:47~12:48 백련사 녹차밭
12:53 백련사
12:57 다산초당 트레일 시작
13:08 깃대봉ㆍ해월루 사거리
13:20 천일각天一閣
13:23 다산동암茶山東庵
13:25 다산 초당(정약용 선생)
13:29 서암西庵
13:46 해월루海月樓
13:58 백련사 연리지
14:04~14:08 백련사
14:13 동백연리지
14:18 만덕산 백련사 쇠북



12:22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 백련사


숲에서 솔솔 부는 바람과 곳곳을 물들이는 정약용' 선생의 발자취가 어우러진 이곳은 남도 명품길입니다. 전남의 대표적인 사찰인 '백련사'를 시작으로 다산의 정원 '조석루'를 지나고 백두대간의 기운이 넘치는
주작산에서 마무리되는 남도명품길은 바스락거리는 나뭇잎과 작은 돌의 소리속에 자연의 향기와 같은 '나'를 선물해 드립니다.
'남도명품길은 '다산ㆍ바람ㆍ꽃이 있는 '사색의 명품길'입니다.


백련사~다산기념관 2.2km

다산초당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
촌당을 실학의 집대성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 유배생활 중 10년간 머물렀던 곳으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들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가 저술되어진 실학의 성지이다.
정석.ㆍ약천ㆍ타조ㆍ연지석가산 등의 다산사경은 아직도 다산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다산기념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18년간 유배생활하는 동안,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평면적인 유출 나열이 아닌 다양한 디지털 자료를 활용하여 다산 선생의 생애와 업적. 사상 등을 느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다산수련원
다산공직관 교육, 다산체험프로그램 등 다산 선생의 학문과 사상, 유배 시절 발자취 등을 알기 쉽게 접할 수 있는 체험, 교육활동의 공간이다.
단체 숙박 시설도 겸하고 있으며 다산역사테마공원 내 (말씀의 숲)에서는 다산 선생의 명언을 느껴볼 수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만덕산 백련사 방문을 환영합니다

백련사 해탈문에 들어서며 쇠북을 경건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세 번 울립니다
종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을 내어봅니다

원하옵건데 이 종소리가 온세계에 두루하여
우리의 깊고 어두운 무명업장 모두 밝혀주며
지혜로써 번뇌와 고통을 소멸하고
고해 바다를 건너 모든 이를 편안하게 하소서.
여유와 편안한 발걸음으로 백련사 참배를 시작하여 주십시오.


녹차밭


12:47~12:48 백련사 녹차밭




백련사입구



12:53 백련사



남도명품길 트레일
백련사~다산초당



12:57 다산초당 트레일 시작

녹차밭 통과



12:58 녹차밭


13:08 깃대봉ㆍ해월루 사거리


다산과 혜장

다산이 혜장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유배지 3년이 지난 1805년 4월 17일이었다.
대둔사에서 백련사로 온 혜장이 다산을 몹시 만나고 싶어 했고, 다산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혜장올 만나러 간다.
혜장은 비록 승려였지만 유교 경전에 해박하였고, 특히 <주역>에 대한 공부가 깊었다.
혜장을 만난 다산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게 되고, 나중에 다산을 알아본 혜장은 부리나케 다산을 ㅈ좇아가 손을 잡아끌었다.
<주역>을 두고 나누던 두 사람의 대화는 밤이 깊어지도록 계속되었고, 혜장은 다산의 학문의 깊이에 감복하게 된다.
같은 해 다산의 큰 아들 정상학이 아버지를 만나러 강진에 왔지만, 주막집 더부살이 신세였던 다산의 입장으로서 숙소가 비좁아 같이 지내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 때 혜장은 보은산 고성사에 작은 선방 하나를 마련해주었고, 다산은 이 산방의 이름을 보은산방이라 하였다.
혜장은 백련사 부근의 질 좋은 찻잎으로 치를 만들어 다산에게 보내기도 하였으며, 다산은 혜장에게 차를 보내 달라는 시를 지어 보내기도 하였다.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를 다산에게 소개시켜준 이도 혜장이었다.
다산에게 혜장은 외로운 타양살이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 귀한 벗이였고, 혜장에게 다산은 오랫동안 갈망해 온 배움의 갈증을 해갈해 준 스승과도 같았다.
혜장의 호인 아암(兒庵)도 거침없고 직선적인 혜장의 성격을 아이처럼 고분고분해지라는 뜻으로 다산이 지어주었다.
1811년 혜장은 40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된다. 다산은 그의 죽음에 슬퍼하며 비명을 쓰고 시를 짓게 된다.


백련사(白蓮寺)가는 오솔길

찌뿌듯한 하늘이 맑게 갠 어느 봄날.
냉이 밭에 하얀 나비가 팔랑거리자 다산은 자기도 모르게 초당 뒤편 나무꾼이 다니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판이 시작되는 보리밭을 지나며 그는 탄식했다.
"나도 늙었구나 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친구가 그립다니.
" 백련사에 혜장선사(惠藏禪師)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벗될 만한 이가 없는 궁벽한 바닷가 마을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존재였다.

혜장은 해남 대둔사(大屯寺) 출신의 뛰어난 학승이었다.
유학에도 식견이 높았던 그는 다산의 심오한 학문 경지에 감탄하여 배움을 청했고, 다산 역시 혜장의 학식에 놀라 그를 선비로 대접하였다.
두 사람은 수시로 서로를 찾아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지으며 차를 즐기기도 했다.
혜장이 비 내리는 깊은 밤에 기약도 없이 다산을 찾아오곤 해서 다산은 밤 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고 한다.

다산과 혜장이 서로를 찾아 오가던 이 오솔길은 동백 숲과 야생차가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이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친구를 찾아가는 설렘일 것이다.
보고 싶은 친구를 가진 기쁨, 친구를 찾아가는 길의 행복

강진군
GANGJINGUN3



천일각



13:20 천일각天一閣


천일각과 백련사 가는 길

天一閣 Cheonilgak and Road to Baengnyeonsa

천일각이라는 이름은'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天涯一閣)을 줄인 것이다.
다산의 유배시절에는 없던 건물인데, 돌아가신 정조대왕과 흑산도에서 유배 중인 형님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 서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1975년 강진군에서 새로 세웠다.
동암에서 천일각에 이르기 전 왼편으로 나 있는 길은 백련사로 가는 길이다.
유배생활 동안 벗이자 스승이요 제자였던 혜장선사와 다산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800여 미터 길에는 야생차 군락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 숲을 만날 수 있다.





다산 동암



13:23 다산동암茶山東庵


동암東庵 Dongam

송풍루松風樓라고도 불리는 동암은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 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았던 곳이다.
다산은 초당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했으며, 목민관이 지녀야 할 정신과 실천 방법을 적은 (목민심서)도 이곳에서 완성했다.
1976년 서암과 함께 다시 세웠는데, 현판중 보정산방寶丁山房은 추사의 친필을 모각한 것이고 다산동암茶山東庵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다산 초당



13:25 다산 초당(정약용 선생)


다산초당茶山艸堂

정약용(丁若鏞)은 1808년 봄, 해남 윤 씨 집안의 산정(尹博의 山亭)에 놀러갔다.
아늑하고 조용하며 경치가 아름다운 다산서옥(茶山書屋)은 지난 7여 년간 전전하던 주막이나 제자의 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가까운 백련사(白蓮寺)에 절친한 벗 혜장(惠藏)이 있었고 다산(茶山)은 그 이름처럼 차나무로 가득했다.

정약용은 시를 지어 머물고 싶은 마음을 전했고 윤 씨 집안은 이를 훈쾌히 허락했다.
이곳에서 정약용은 비로소 안정을 착고 후진 양성과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10년 동안 다산학단(茶山學團)으로 일컬어지는
18명의 제자를 길러냈고,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집필했다.
초당을 가꾸는 데도 정성을 기울여 채마발을 일구고. 연못을 넓히고. 석가산을 쌓고. 집도 새로 단장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윤 씨 집안의 산정은 다산초당으로 거듭났고, 정약용은 스스로를 다산초부(茶山樵夫)라고 칭하게 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당시로 가 보자.
제자들은 스승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자료 수집. 정리. 정서, 편집 등의 작업에 참여하고, 다산은 정열적으로 각종 저작을 집필하는 동시에 제자들을 능력별, 수준별로 지도하고 독려한다.
한가할 때면 계곡과 연못을 거닐고 차를 마시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시로 읊는다.
다산 초당은 유배객의 쓸쓸한 거처가 아니라 선비가 꿈꾸는 이상적인 공간이자 조선 시대 학술사에서 가장
활기찬 학문의 현장이었다

서각(書閣)에 귀를 기울여 보라. 다산과 제자들이 토론하는 소리가 들릴지 모론다




서암西庵



13:29 서암西庵


다산초당과 서암茶山草堂,西庵
Dasan-chodang and Seoam

초당은 다산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썼던 곳이다. 원래는 윤단(尹慱) 산정(山亭)이었으나 서로 교분을 나누면서 그에게 거처로 제공되었다.
1957년 다산유적보존회가 허물어진 초가를 치우고 다시 지으면서 기와로 복원했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다. 서암은 윤종기 등 18인의 제자가 기거하던 곳이다.
차와 벗하면 밤늦도록 학문을 탐구한다는 뜻으로
다성각(茶星閣)이라고도 하며, 1808년에 지어져 잡초 속에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1975년 강진군에서 다시 세웠다.






해월루
돌아오는 길에



13:46 해월루海月樓




동백 연리지와 부도



13:58 백련사 연리지와 부도


강진 백련사 원구형 부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산55
부도는 승려의 사리를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이 부도는 이곳에서 가장 크고 만들어진 시기가 빠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부도의 탑신이나 기단부에 당호 또는 기타 명문이 없어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
탑신은 원구형이며 탑신 당산쪽 사방으로 연꽃무늬의
연주문피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특이한 기법이다.
옥개석(지붕돌)은 팔각인데 낙수면이 경사가 급하고 우동마루가 뚜렷하나 귀꽃이 없이 밋밋하게 처리되었다.
이 부도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팔각원당형에서 몇 가지
변형된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기단부는 사각형에 가깝고
탑신은 거의 원형에 가까운 원구형인데 이러한 형태로는
국보 제102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토사흥법국사실상탑
(1017년 , 현 경복궁 내)이 있다.
부도가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고려시대인 14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백련사



14:04~14:08 백련사


백련사에는 고려 명종 때의 문신 최자(1188~1260)가 지은 원묘국사비 등 여러 개의 석비가 있었으나,
현재는 백련사 사적비만 남아 있다.
이 비는 1681년(숙종 7년) 5월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홍문관 수찬을 지낸 조종저(1631~1690)가 찬하고
낭성군 이우(1637~1693)가 글씨를 썼으며 동생인 낭원군 이간(1640~1699)이 전서를 썼다.

비문은 모두 19행으로 이루어졌으며 1행은 45자로 구성되었다.
비의 앞면에는 백련사 중수, 원묘국사 행적, 백련결사 등의 내용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비 건립에 참여한 72명의 승려명과 인명이 음각되어 있다.

비문에 따르면, 백련사에 원래 원묘국사비가 있었으나 이수(머릿돌)와 비신(비의 몸돌)은 유실되었고 귀부(거북이 모양의 받침돌)만 남아 전해졌다고 한다. 이후 백련사 사적비를 세우면서 귀부는 옛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즉 백련사 사적비는 고려시대의 귀부에 17세기 후반의 이수와 비신을 갖추고 있는 셈이며,
1기의 비에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특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4:13 동백연리지




백련사 동백나무숲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길목에 약 5.2ha 면적에 7미터쯤 되는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간 중간에 보이는 아득하고 아늑한 바다 풍경은 숨 막힐 듯 아름답다

이 길은 다산과 초의선사가 교류하던 사색의 숲이며 철학의 숲이고 구도의 숲이다.
이곳 백련사의 동백은 2월부터 머금어 초봄인 3월 초부터 개화하기 시작하여 3월 말에 낙화한다.

백련사 사적비에는 아름다운 숲 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시대 문인 성임(成任 1496~1568)의 시에서도 지은이가 백련사 동백나무 숲의 뛰어난 경치를 직접보지 못해 한스럽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동백나무숲을 즐길 때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색하며 거닐어야 한다.
붉은 동백꽃들이 뚝뚝 떨어진 붉은 숲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면 더욱 조용히 가슴으로 꽃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자,

강진군 GANG INGUN



백련사를 나오다



14:18 만덕산 백련사 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