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서해랑길

장항 스카이워크 서해랑길56코스 2026.04.30 목요일

방극만 2026. 5. 1. 18:12



10:27~10:45 스카이워크


서천(舒川)

서천군은 옛 백제의 땅으로서 후에 서천군과 한산군 그리고 비인군으로 분리되어 있다가 일제 강점기인 1913년 12월29일. 군 폐함 실시로 구 서천, 구 한산, 구 비인 3군을 통합하여 서천군이라 칭하고 13개의 면을 관할하여 왔다.
1938년 10월1일 당시의 서남면 일부와 마동면 일
부를 장항읍으로 승격시켜 1읍 12면이 되었으며, 1975년 5월1일 서천면을 서천읍으로 승격시켜 2읍 11면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천군은 우리나라 서해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충청남도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서천의 북서쪽은 차령산맥이 충남의 중앙을 남서 방향으로 뻗어 내려, 서천군 서면 중앙부에 이르러 그 세를 다하고, 해발고도 100m 이하의 낮은 구릉과 분지를 형성한 서면 일대와 우리나라 4대강 중의 하나인 금강이 서천의 동남쪽 금강하구에 이르러, 비옥한 옥토를 기름지게 하는 풍부한 수자원과 함께, 충적평야를 형성하여 내포평야와 호남평야가 연결되는 광활한 옥토가 있으며, 서천의 서쪽과 남쪽의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갯벌과 모래사장이 발달된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국내 유일의 전통 섬유 축제인 한산모시문화제를 비롯한 홍원항 전어 큰 잔치. 동백꽃 ㆍ주꾸미 축제, 마량포 해돋이 축제 등이 계절별로 개최되고 있으며, 철새의 낙원인 금강하구둑.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신성리갈대밭, 바다의 생명인 갯벌과 완만한 경사면과 아카시아와 해송림이 우거진 춘장대해수욕장 등 연인과 가족의 휴양지로, 갯벌 체험을 중심으로 농촌생활 체험 등 체험관광지로 다양한 테마관광이 군내에 활성화 되고 있어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고려시대 삼은의 한 사람이며 성리학의 대가인 목은 이색을 비롯하여. 종교가로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월남 이상재 선생 등 역사적 인물을 많이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며, 백제의 군사 경제적 요충지였던 기벌포(장항의 옛 지명)문화권인 서천지역은 15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면면히 이어져 오는 백제의 향기가 있다

장항(長項)

장항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북과 도계를 이루며 군산시와 접경하고 있는 지역으로,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역동의 해양도시이며 농업과 공업이 동시에 형성된 도ㆍ농 복합도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장항지역은 백제시대 때 설림군에 속한 갈대받이었는데. 백제가 부여에 도읍을 옮긴 후 당나라와 왜국과의 교류가 활발함에 따라 많은 선박의 기항지가 되어 차츰 발달해 갔고, 백제 멸망시에는 많은 당나라 군사가 짓밟고 간 곳이기도 하다.
백제 멸망 후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전초 기지이기도 했으며, 고려 때는 왜구들의 침범에 많은 고충 을 받기도 한 수군영 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 때 충청도 수군영의 만호영이 있었던 곳이며, 조선 말 서천군의 지역으로 서천 고을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해서 남부면이라 했다.

일제강점기시절 일본은 장항항을 충청남도 지역의 쌀 및 광물자원의 수탈기지로 삼고 금 제련에 역점을 두었다. 1917년에 공유수면매립법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간척사업을 벌여 1938년까지 178곳에서 405.4km 의 갯벌을 매립했다.
이는 썰물 때 뭍으로 드러나는 우리나라 조간대 상부 갯벌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다

1929년에 간척지를 메워 시가지가 형성되었고, 1930년 10월 장항항이 개항되고,
1931년 8월에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에 의하여 충남선(1955년 장항선으로 변경)이 개통되었으며.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해방이후 장항제련소로 변경)라는 이름으로 건식제련소를 건설하였고.
군산과 금강을 사이에 두고 도하선을 이용한 자매도시로 발전했다.

1938년에 읍으로 승격 되었으며 1952년 7월 5일에 국항으로 승격되었다.
1956년 10월10일 서천경찰서가 이전되었고, 1964년 7월11일에는 국제항으로 승격되어 항구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나갔다.


송림갯벌

갯벌의 생태적, 경제적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면서 갯벌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송림갯벌이 있다.

갯벌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개발이라는 명목에 의해서 수많은 갯벌이 매립되어 사라져 갔지만 송림갯벌은 역사적으로 남을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

송림갯벌을 중심으로 1Km가 넘는 모래사장과 해송숲의 장항송림산림욕장, 생태자원인 갯벌과 철새, 친환경 농업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 형 프로그램과 연계한 청
소년을 위한 서천군 청소년수련관, 지역주민과 관광객에게 바다와 해송 숲 사이를 걸으며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주는 해송솔바람길, 갯벌의 자연환경을 통하여감성적인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지속 가능한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장항스카이워크가 그 자리를 채웠다.


유부도(有父島)

금강과 서해바다가 만난는 접점에 유부도는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에 속한 섬으로 주민 대부분이 어업과 관광업에 종사한다.
면적은 0.79km², 자생퇴적지 약 1,000만평이며, 인구는 61가구 104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송림초등학교 분교가 있다.

임진왜란 때 피난을 나온 가족이 범선을 타고 서해를 떠돌다 아들은 지금의 유자도에 아버지는 유부도에 정착을 했다한다.

유부도 주변의 갯벌과 사구에는 국내 최대 도요물떼새의 중간 기착지로 먹이와 쉼터를 제공하고, 특히 전 세계적으로 약 400개체 이하가 생존하고 있는 넓적부리
도요를 비롯하여 검은머리불떼새의 동북아종 최대 월동지이다.

금강과 서해가 만나 형성된 기수역의 섬갯벌로 탐사르습지(Ramsar wetlands 2009년 12월)로 등록 되었으며, 동아시아 철새 이동경로 서식지(EAAFP)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는 갯벌에서 주로 먹이활동을 하며 굴. 조개. 갯지렁이. 게 등을 주로 먹는다.
갯벌에서 무리를 지어서 먹이활동을 하다가 밀물 때 물이 차오르면 인근 섬이나, 바위. 해안 등지로 이동하여
휴식을 취한다

암수가 같은 색이고, 눈은 붉은색, 부리는 길고 오렌지색이며, 다리는 핑크색이다.
머리와 몸의 위쪽은 검은색이고, 날개 기부와 아랫배와 꼬리까지는 흰색이다.

텃새로 살아가는 검은머리물떼새는 서해안의 인근 무인도 섬의 바위 등지에 나뭇가지나 갈대출기 등을 주워다가 둥지를 만들어 새끼를 낳는다.

서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유부도 인근 갯벌로 4000개체 이상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천군은 철새들이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상징하기 위하여 군조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장항제련소

일제감점기 일본은 장항항을 충청남도 지역의 쌀 및 광물자원의 수탈기지로 삼고 금 제련에 역점을 두었다. 1931년부터 금강하구의 장항읍 장암리 주변의 만을 매립하여 제련소를 짓기 시작하여 1935년까지 건식제련소를 완공하였다.
해발 100m의 꼭대기에는 높이 90m의 용광로 굴뚝을 세워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용광로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주로 금과 구리, 납을 제련하던 장항제련소는 설립 당시 연간 1천5백톤의 소규모 제련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해방 후 계속 확장되어 1974년 1만5천톤, 1976년 5만톤 규모로 확장되었다.

1945년 광복이후, 장항제련소라는 이름으로 국가에서 운영하였으며 1962년에 한국광업제련공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71년 국영이였던 한국광업제련공사를 한국광업제련주식회사로 민영화 하였으며,
1981년 울산 온산의 대단위 동제련소인 온산동제련주식회사와 합병 후 LG그룹으로 편입되었다. 1989년 제련공장의 용광로를 폐쇠(가동중지)하고 전기분해 방법으로 순도 99% 이상의 순동을 생산하는 전련공정을 가동 시켰고,
1999년 LG산전과 합병하여 LG-Nikko동제련주식회사로 출범하였으며,
2005년 LS-Nikko동제련으로 상호변경 후,
2008년 온산제련소로 공장을 이동한 후에 가동을 중단하였다.

2008년 가동이 중지되기까지 약 70여 년 동안 국내 유일의 비철금속제련소로서
1960, 1970년대에 경제개발을 추진하던 당시 큰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장항제련소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픈 역사와 함께 해방과 6.25전쟁 이후의 산업화 과정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있어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역사적 공간 이기도하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에 위치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생물자원에 대한 국가의 주권적 권리소유를 인정하는 "생물다양성협약(CBD,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의 발효(1993년 12월)로 생물자원에 대한 국가간 선점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해양생물에 대한 국가 주권 확립의 기반을 다지고, 해양생물자원을 21세기 전략산업인 해양생물산업(MBT, Marine Bi
o Technology)의 원천소재로 지원하기 위해 건립된 해양생물다양성 전문연구기관이다.

또한 드넓은 장항갯벌, 검은머리물떼새의 요람 유부도, 장항송림산림욕장과 더불어 가족단위 관광지로도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주요기능으로 해양생물자원의발굴.수탁.등록.평가.관리.
이용 및 보전 등을 통해 국내ㆍ외 해양생물자원을 확보 및 관리하여 해양생물자원의 국가 자산화 추진, 해양생물자원 개발이용 촉진 및 해양생명공학산업 지원, 해양생태계 보전의 과학적 조치, 해양생물자원 국민 인식증진 및 전문인력 양성 등을 추진하고 부지 325천m, 건축면적 32천m로 지하1층, 지상4층 규모로 연구시설 수장시설, 전시시설, 교육통 등으로 건립 되었다.

시대적으로 생태보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새롭게 태동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지역사회의 기대와 역할과 함께 성장해 나아갈 것이다.


국립생태원

충청남도 최남단 서천군 금강하구에 위치한 국립생태원은 생태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각종 전시관과 야외 동식물 군락지를 탐방하는 동안 자연스레 생태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섬세히 설계되어 있다

국립생태원은 부지 998천m². 시설54천m²로 세계 최대 규모이며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는 4개의 대형 아치 디자인이 돋보이는 에코리움이다.
현장 및 문헌조사를 통해 선정된 식물 2.000여종과
동물 230여종을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으로 구성하여 지구의 기후대별 생태계를 재현 전시함으로써 국립생태원의 제일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상설주제전시관, 기획전시실의 다양한 특수 전시물과 영상관의 최첨단 4D영상은 에코리움 탐방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세계 각 기후대에서 자생하는 3,700여종의 식물이 가득한 29개 재배온실단지, 지리산 설악산 등 한반도 13개 군락 130여종의 개체가 식재되어있는 한반도숲, 고산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고산생태원, 우리나라 과거 농촌지역의 다랑논을 형성화한 습지생태원, 지역 자연방죽의 특징을 잘 살린 용화실못, 멸종위기 야생동
물인 금개구리가 유명한 금구리못과 에코리움 둠벙은 남녀노소 모두가 반기는 생태원의 대표적 탐방코스이다.

생태원의 드넓은 야외 식물 군락지와 조경지는 찾는 이들에게 생태의 소중함 뿐 아니라, 삶의 여유와 행복을 선사할 것이다.




제1차 기벌포해전

금강하구 즉 기벌포(伎伐浦)는 7세기 중반 백제.일본, 신라, 당나라가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하였던 동북아시아 최초의 국제 전장터이다.

그 이유는 기벌포가 백제 웅진∙사비 도읍기에 군사적 외교적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백제는 금강하구를 통하여 대당, 대일본과 문화 교류를 끊임없이 펼쳤다.
그러나 660년 7월 기벌포를 지키지 못한 백제는
나당연합군에게 사비성을 쉽게 점령당하였다.

신라와 당나라가 나당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를 침공할 때 당나리 장군 소정방은 산둥반도를 출발하여 덕적도에 도착한 다음 기벌포로 들어왔는데, 해안이 진흙탕이어서 빠지므로 다닐 수 없어 버들자리를 펴 군사를 나오게 하였다.
기벌포 백제 수군들은 당 나라 장수 소정방을 맞이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패배했다

660년 7월 13일 나당연합군은 백제 수도 사비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그 후 소정방은 백제 의자왕과 신하 93인, 군사 2만인을 이곳 기벌포를 경유하여 당나라로 갔다


제2차 기벌포해전 (백촌강 전투)

663년 백제부흥군과 일본연합군은 백제 왕조 복원을 위해 백촌강(지금의 금강하구) 전투에서 나당연합군과 싸우지만 대패한다. 이를 백촌강 전투라고 한다

이곳 금강하구는 백강구(白江口)로 백제. 일본 신라, 당나라가 동북아시아 최초로 국제전쟁을 했던 곳이다. 663년에는 백제 부흥운동을 원조하기 위한 일본군 장수 여원군신(廬原軍臣), 박시전래진(朴市田來津)과
나당연합군이 결전을 벌인 곳이다.

663년 8월 13일 백제부흥군 풍왕은 일본의 원군 2만 7천을 맞으러 백촌강으로 간다.
8월 17일 당 수군은 웅진강에서 백촌강으로 나와 진을 친다.
일본군은 마서면 백사마을에 진을 치고 당나라 장군 유인궤. 유인원과 이 곳 백강구에서 싸웠다.
백촌강 전쟁은 나당연합군의 승리로 백제부흥군과 일본군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때 일본군의 배 400척이 불탔으며,
삼국사기는 백촌강전투를 두고 "연기와 불꽃은 하늘을 붉게 물들였고, 바닷물마저 핏빛이 되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제3차 기벌포 해전

신라의 대당 전쟁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7년간 지속되었다.
금강하구 기벌포의 중요성은 신라와 당나라의 마지막 해전에서도 확인이 된다.
676년 11월. 기벌포(伎伐浦) 앞바다에서 신라 수군과
당나라 설인귀가 이끈 당 수군과 마지막 격전이 벌어졌다.
신라는 673년에 함선 1백 척과 해군을 서해에 배치시켜 방비하고 있었다.
676년 설인귀의 당나라 해군이 기벌포로 내려오자, 사찬(沙湌) 시득(施得)이 함선을 이끌고 기벌포에서 설인귀군과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그러나 크고 작은 전투 22번에 걸쳐 결국 당나라의 수군
4천여 명이 전사하였다.
육지에서는 매소성에서, 바다에서는 기벌포 전투에서 당나라의 군대를 격파함으로 신라가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얻게 되었다.
기벌포해전은 신라가 대당전쟁을 승리로 끝맺은 마지막 해전이다.
당나라가 한반도에서 물러감에 따라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었고 한민족의 '민족' 개념이 생성되었다.



희 망..

지금 바라다보고 있는 기벌포 저 서해바다는 말이 없지만 잠깐만 눈을 감으면 한 뼘의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백제군, 신라군, 일본군, 당 군대가 목숨을 내걸고 부르짖는 함성이 귓전에 다가온다.
오늘날 1400여 년 전 역사적 사건을 거울삼아 대한민국, 일본, 중국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최초 동북아시아 국제전쟁터 기벌포에서 "기벌포 평화선언" 을 할 때이다.





살아있는 생태도시

서천의 철새들

서천은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알려져 있어요.
주변의 갈대숲을 찾아 날아다니는 겨울철새들이
매년마다 이곳 생태도시 서천을 방문한답니다.
또한 겨울이 되면 각종 희귀 철새들이 수만 마리씩 날아와 장관을 이루며, 철새 생태교육장소로도 이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