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5차 17구간 송정~오미 10.4km 2025.04.20
08:00~08:50 경남 일원 산불 강조 입산 통제로 원부춘마을회관 주차장에서 아침 식사















09:31 경남 일원 산불 강조 입산 통제로 하동군 원부춘마을회관 출발을 접고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서 오미마을로
09:37 가탄 10.6km를 뒤로 하고 오미 10.4km를 향해 출발 인증샷
10:07 산불 흔적지 : 오미9.7km, 송정 0.7km
10:21 의승재 : 오미9.3km, 송정 1.1km
의승 : 임진왜란 때 의병에 참가한 스님
10:45 오미 8.7km, 송정 1.7km
10:49 석주관 갈림길 : 오미 8.8km, 송정 1.8km
11:22 오미 7.6km, 송정 2.8km
11:48 오미 7.5km, 송정 2.9km
12:10 쉼터 정자 : 오미 6.8km, 송정 3.6km
12:27 : 오미 6.2km, 송정 4.2km
12:37 둘레길 파도리 쉼터
12:48 쉼터 지나 이 곳 파도리 감나무밭에서 부터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지나 단풍길 임도를 따라 문수저수지 경유 오미까지 시멘트길이다
12:54 파도리 묘지 : 오미 5.5km, 송정 4.9km
13:06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앞 쉼터 : 오미 4.9km, 송정 5.5km
13:16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뒤 : 오미 4.4km, 송정 6.0km
13:23 수로와 병행하는 단풍길 임도 시작
13:29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위 쉼터
13:52 운동기구 쉼터
14:03 구산리 솔까끔마을
14:10 주성윤 시비 : 솔까끔마을 : 오미 2.2km, 송정 8.2km
14:31~15:03 Cafe T.G : 토지면 구산리 문수제 아래
15:14 내죽교 : 오미 0.9km, 송정 9.5km
15:23 하죽마을
15:31 오미리 운조루
15:32 오미리 앞 느티나무 :
17코스 송정 10.4km,
18스 방광 12.3km,
19코스 난동 19km





















































































朱成允詩碑
풀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
朱成允 약력
1939.11.13 일본 오사카 출생.
호는 草洞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현대문학에 <내부 62> <눈길위에서 63> <황혼녘:64>이 천료되어 등단
신년대, 한국시 상황지 동인으로 활약
시집 <생의악단> (58,3인시집)
<독설 (79. 대표 시집) <번산에 진달래 (81,)〈조선의 빛〉(65)


























내죽마을
약 500년 전인 1500년경 진주하씨(晋州河氏), 김해김씨 (金海金氏), 경주이씨(慶州李氏)에 의하여 마을이 형성 되었으며,
그 후 문화유씨(文化柳氏), 진주정씨(晋州鄭氏), 밀양손씨(密陽孫氏) 등이 입촌하면서 큰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의 중심에 당산나무를 보아도 마을의 형성 시기가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나무가 큰 마을에 울창하여 대를 상징한 대(竹)자와 문수천의 시냇물을 따서(내)인 '대내'라고 불렀다는 설과 안쪽에 있다하여 내죽(内竹)이라 불렀다 한다.


하죽마을
선비 정신이 살아 숨쉬는 하죽(下竹)마을
조선 영조 중엽(1754년) 경주이씨 이기명(李基鳴)이 길지 (吉地)를 찾아 조선 팔도를 헤매다 아들 삼형제를 거느리고 정착하였다.
그후 택리지(擇理志)의 자거지(可居地) 6처 (處)중 가장 살만한 곳으로 숨겨져 있던 땅 구례가 소개되면서 각지에서 양택명당을 찾아 이곳으로 이주해와 촌락이 형성 되었다.
대나무가 온 마을에 울창하여 '대내'라 하였고 하죽은 아랫마을, '아랫대내', '바깥대내'로 오랫동안 불리워 왔다.








오미마을
영조 52년(1776년)에 문화류씨 유이주(柳爾胄)가 풍수지리 설에 의한 금환환락지(金環落地)에 운조루(雲鳥樓)를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 되었으며, 그 전에는 오동이라 불렸다.
오동은 내죽, 하죽, 백동, 추동, 환동을 말한다.
마을의 안산이 되는 오봉산이 기묘하고, 사방으로 둘러싼 산들이 길하며, 물과 샘이 족하고, 풍토가 모두 질박하며, 터와 집들이 살아가기에 좋다 하여 오미리(五美里)라 불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