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올레길/지리산둘레길 4차

지리산둘레길4차 1구간 역방향 운봉읍 서림공원~주천 14.9km 2025.01.26, 02.02

방극만 2025. 1. 28. 11:56



        
옛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던 옛길

서림공원(0.2km)~운봉읍(1.4km)~양묘장(1.7km)~행정마을(2.2km)~가장마을(2.2km)~노치마을(1.2km : 노치에서 운봉장 보러 가는 길)~회덕마을(2.4km : 회덕에서 남원장 가는 길)~구룡치(2.5km)~내송마을(1.1km)~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 주천안내센터 14.9km



지리산 둘레길" 은 지리산 둘레를 환형으로 연결하는 장거리 도보 길로 3개 도[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 5개 시군[남원시·구례군·하동군·산청군·함양군], 20개 읍면, 120여 개 마을에 걸쳐 있는 장거리 도보 길을 말한다.
2007년 1월 설립된 ‘숲길’에서 조사와 정비를 통해 지리산 주변의 옛길과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연결하여 만들어 낸 도보 여행 코스이다.
2004년 지리산 생명 평화 탁발 순례단이 지리산을 한 바퀴 도는 ‘지리산 순례길’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이후 2007년 산림청 녹색 사업단 시민 단체 공모 사업인 환 지리산 트레일 조성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지리산 둘레길 조성이 확정되었다.
지리산 둘레길은 가능한 원래 있던 길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도보 여행에 적합하게 구간을 정하고 길을 정비하는 식으로 마련되었다.
2016년 7월 현재 지리산 둘레길은 순환로를 포함한 총 285㎞에 걸쳐 주천-운봉, 운봉-인월, 인월-금계, 금계-동강, 동강-수철, 수철-성심원, 성심원-어천-운리, 운리-덕산, 덕산-위태, 위태-하동호, 하동호-삼화실, 삼화실-대축, 하동읍-서당, 대축-원부춘, 원부춘-가탄, 가탄-송정, 목아재-당재, 송정-오미, 오미-난동, 오미-방광, 방광-산동, 산동-주천의 22구간을 운영하고 있다.

다음까페 백두산우회 참조

<운봉읍(雲峰邑)>
운봉읍의 남동부 산지와 구릉의 물을 모은 람천을 따라 걷는 길은 육묘장을 통과하여 운봉읍으로 들어서게 된다. 
운봉은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영토였고,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대였다. 
백두대간을 따라 노치산성을 비롯한 국경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남원과 장수, 운봉과 남원으로 장을 보러 다녔던 고갯길도 많다. 석기시대 때 운봉이 큰 호수로 있을 때 사람들이 고리봉에 배를 매었다는 설이 있고, 
‘운봉고원가야’ 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질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운봉은 해발 500m 내외의 고원지대로서 고랭지 농사가 발달하였고 모내기와 추수도 빠르다. 
또한 국악의 성지와 황산대첩비가 있는 역사 문화적 의미가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현재의 운봉은 예전의 융성했던 모습을 다소 잃은 듯하나, 운봉초등학교를 지나며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반갑다.



2025.01.26

11:34 지리산둘레길 1,2구간 시종점 : 주천 14.9km, 인월 9.5km
11:37 운봉초등학교 : 주천 14.5km, 운봉 0.4km
11:44 운봉농협 사거리


2025.02.02

1. 운봉로 : 09:13~09:21

09:11 운봉사거리의 운봉농협 맞은 편 동편제 소리길 표식(주천 14.0km, 운봉 0.9km)

2. 서부지방산림청 남원양묘사업소 : 09:21~09:29

09:21 주천 13.5km, 운봉 1.4km의 운봉로에서 우측으로 운봉1로를 가로지르 서부지방산림청 남원양묘사업소로 진행

3. 십승지길 : 09:29 십승지길 421번지~09:52 십승지길 274번지(행정교)

09:29 람천변 십승지길 421(주천 13.2km, 운봉 1.7km)에서 벚나무(꽃)길을 따라
09:35 주천 12.8km, 운봉 2.1km : 십승지길 383의 주촌천 갈림길에서 람천 제방을 따라
09:40 엄계교
09:49 행정리 서어나무 숲 가는 다리
09:52 행정교 : 십승지길 274(주천 11.7km, 운봉 3.2km)
행정마을 : 09:55~10:00

4. 09:55 행정마을(주천 11.4km, 운봉 3.5km)

5. 십승지길 : 10:03 십승지길 127(주천 11.2km, 운봉 3.7km)~십승지길 90(가장교)~10:29 십승지길 1번지(덕산교)

10:03 십승지길 127(주천 11.2km, 운봉 3.7km)
10:14 가장교(주천 11.2km, 운봉 3.7km) : 운봉로ㆍ십승지길 90과 교차
10:21 가장2교(십승지길 39)
10:29 십승지길 1번지(주천9.7km, 운봉5.2km 덕산교, 운봉로ㆍ덕산길ㆍ십승지길 사거리 버스정류장)

6. 가장길
10:32 가장마을 쉼터(가장길 46, 주천9.5km, 운봉5.4km)

7. 질미고개길 : 10:39 질미고개길151(주천9.1km, 운봉5.8km) : 동복오씨묵제공파 우암공가족묘원 입구~11:28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주천7.6km, 운봉7.3km 주촌3길 96-23ㆍ질미고개길 2 교차점) 입구  

10:39 질미고개길151(주천9.1km, 운봉5.8km) : 동복오씨묵제공파 우암공가족묘원 입구
10:41 동복오씨묵제공파 우암공가족묘원 : 심수정心修亭 : 질미고개길 138 주천8.9km, 운봉6km
11:13 질매재(주천8.4km, 운봉6.5km), 질미고개길 81          
주촌3길
11:28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 전 주촌3길 96-23ㆍ질미고개길 2 교차점(주천7.6km, 운봉7.3km) 입구            

8. 노치길 : 11:32 주촌3길~11:35 노치마을회관 앞

9. 11:35 노치마을회관 앞(주천7.3km, 운봉7.6km)

10. 구룡폭포길
11:35 노치마을회관 앞~12:00 구룡폭포길 264, 지리산첫길 478 삼거리 정자나무 쉼터(주천5.8km, 운봉9.1km)

11:53 구룡폭포길 325 삼거리 소나무숲    
11:57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주천6.1km, 운봉8.8km)
12:00 구룡폭포길 264, 지리산첫길 478 삼거리 정자나무 쉼터(주천5.8km, 운봉9.1km)

11. 지리산첫길 : 은송리 내송마을 : 냇가 건너 개미정지까지 4km의 산길로 접어 든다
12:00 구룡폭포길 264, 지리산첫길 478 삼거리 정자나무 쉼터(주천5.8km, 운봉9.1km)~14:05 장백산로 둘레길 교차 삼거리 : 지리산첫길 2(주천0.8km, 운봉14.1km)

12:15~12:28 간식ㆍ점심 : 지리산첫길에서 사과ㆍ배ㆍ계란으로
12:40 지리산첫길 426 묘지(주천5.2km, 운봉9.7km)
12:42 사무락다무락과 소나무 : 지리산첫길406(주천5km, 운봉9.9km)
12:54 연리지(용)소나무
13:07 구룡치 : 지리산첫길306,  주천3.6km, 운봉11.3km
13:29 지리산첫길 214(주천2.6km, 운봉12.3km) 삼거리
13:51 개미정지 : 지리산첫길 122(주천1.7km, 운봉13.2km)
13:57 은송리 내송제
14:01 은송리 내송마을 : 지리산첫길 26(주천1.1km, 운봉13.8kn)
14:05 장백산로 둘레길 교차 삼거리 : 지리산첫길 2(주천0.8km, 운봉14.1km)

12. 장백산로
14:05 장백산로 둘레길 교차 삼거리 : 지리산첫길 2(주천0.8km, 운봉14.1km)~
14:15 비부정沸釜亭 : 장백산로 28(주천0.3km, 운봉14.6km)            

13. 14:17 원천천 : 장백산로와 정영치로를 잇는 비부정 앞 목교 아래 원천천에서
14. 14:22 장안교
15. 14:23 주천~운봉 시작점(운봉14.9km, 산동15.9km)에서 1구간 역방 14.9km 종료
14:25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606~15 지리산 둘레길 주천안내센터에서 운봉 기점 09:11 출발하여14.9km, 5시간 14분 만에 종료.

16. 14:29~15:08 주천면 장안리 칡내면 들께수제비 2,  비빔칡냉면 2,  10,000×4 종숙 후원

17. 15:11~15:53 LaLa TREE 카페에서 ♤화 후원으로 라떼2, 커피2, ♧자 후원 빵 카드결제 불발분까지 빵 4개



인월ㆍ주천 시ㆍ종점 서림공원


운봉읍 : 운봉들판은 고산지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모내기를 한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 다툼이 있던 지역으로 조선시대까지 운봉현이 있던 곳이다.


석장승 : 운봉 석장승은 서림공원, 서천, 북천에서 볼 수 있는 돌로 만든 장승이다.

당산은 마음의 수호신인 당산신(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을 모시고 마음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남원 서천리 당산에는 남녀 한 쌍의 돌장승이 서 있다.
외형상으로는 남녀를 구분하기 쉽지 않은데 북쪽에 서 있는 장승이 남장승, 남쪽에 서 있는 장승이 여장승이라고 전해진다.
각각의 돌장승에는 '방어대장군(防御大將軍)',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뜻이다.
두 장승은 모두 수염이 있고 벙거지를 썼는데 남장승인 방어대장군은 귀가 없다.
두 장승이 부부 싸움을 하다가 진서대장군의 목이 부러져 마을 사람들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원 서천리 당산의 돌장승은 마을을 수호한다는 신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서민의 소박한 표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민속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주천을 향한 둘레길 제1구간 시작


운봉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탑
1907년 08월 23일 운명의 선각자들에 의해 운동초등학교 전신인 사립만성학교(私立晩成学校)가 설립되었다.
그 동안 인재 육성의 산실로 꿈을 펼치던 모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에 운동, 운전, 운남 운영 고남초등학교 15,000여 동문들은 우리 운봉 교육에 헌신하신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동문의 화합과 영광 그리고 모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이 기념탑을 세운다.

서기 2007년 8월 23일
운봉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


꿈의 나래로!
벅찬 개화의 새봄은 봉우리마다 맺힌 구름의 소망이어라.
장하게 날아오르던 지리봉의 나래는 태고의 들녘을 밝히는 고원의 횃불이어라.
역사의 고난을 딛고 선 배움의 터에 면면히 숨쉬는 운봉의 얼이여.
누가 키우랴. 이 맑은 새싹들을
누가 지키랴. 이 푸른 느티나무를
지켜보는 백년의 영근 씨앗들과
모교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우리 천년의 꿈이여
웅지의 가슴팍에 타오르는 불꽃으로
동문들이여 힘차게 나아가자
백년의 요람에서
높고 넓은 꿈의 세계를 향해
당찬 기상 희망의 깃발로 나아가자

서기 2007년 8월 23일








2025.02.02
주천 안내센터에서 파킹하고 아침 식사







지난  01.26에  2025.02.02 이어 서 출발

운봉로 : 09:13~09:21


운봉 소리길에 비추인 삶
하늘아래 운봉마루에 펼쳐진 판소리 음률은 운봉 주민들에게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한 삶의 슬픔이자 위로였다.
그러한 삶은 그들의 손에서 시작되어 가족들에게 사랑과 이웃들에게는 나눔을 베푸는 손이였고 운봉의 소리 음율이 전세계에 울려 "판소리의 고장다움"을 지키는 힘이 되었다.





서부지방산림청 남원양묘사업소 : 09:21~09:29





십승지길 : 09:29 십승지길 421번지~09:52 십승지길 274번지(행정교)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남원 운봉읍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은 2000년 11월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 숲' 부문 대상을 수상한 곳으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200여 년 전 조성한 인공 숲으로 100여 그루의 서어나무가 모여 있습니다. 
숲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약 100여 그루의 서어나무가 옹기종기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항상 15℃ 안팎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여름철에도 냉방기를 들여놓은 것처럼 시원합니다. 

서어나무(Carpinus laxiflora)는 ? 
자작나무과 낙엽교목으로 수피는 회색이고 근육질의 울퉁불퉁한 줄기를 가지며 잎은 어긋나고 길이 5.5~7.5cm의 타원 모양 또는 긴 달걀 모양이며 끝이 길게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겹톱니가 있으며 뒷면 맥 위에 털이 있습니다.
숲이 변해가다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안정된 상태인 극상림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나무입니다.  -남원시-





행정마을 : 09:55~10:00


행정(杏亭)마을

살기좋고 인심좋은 행정마을은 정감록 10승지에 나오는 운봉행촌으로 추측하기도 하며 우리나라 아름다운 마을숲 1호인 서어나무숲이 있고 삼산마을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마을 8번째 마을이다.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은 수령 200년이 넘은 64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룬 곳으로, 마을의 허한 기운을 막고자 조성된 인공 숲으로 2000년 11월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 숲' 부문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창녕조씨 효자 정문' 비석

<창녕조씨 효자 정문 관련 전설>
효자비가 세워진 시기는 비문이 오랜 풍우에 마모되어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다. 
1922년에 발간한 운성지(雲城誌) 기록에 의하면 효자 조석상(曺錫祥)은 창녕 사람으로 본도 선비의 추천을 받아 윤허를 얻어 정려가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어 건립 시기는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5대 손 조윤근(58세)씨에 의하면 5대조 조석상씨의 모친 동복 오씨가 고질병에 걸리자 본인의 허벅지 살을 베어 인육봉양으로 병을 낫게 하여 효자 교지를 받았다 한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비만 서 있는 이곳에 창녕 조씨 가문에서는 풍우로 인한 비문의 마모를 막기 위해 비각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자 부락에 재난이 일기 시작하였다. 
원인 모를 이유로 친족들이 연이어 비명횡사하고, 부락에 잇단 화재가 발생하여 가옥 8채가 불타는가 하면, 밥을 지으려 마루에 내어놓은 쌀바가지에서 쌀이 벌레처럼 기어나가고, 병든 아이의 병이 낫기를 빌던 떡시루가 날아가 처마 밑에 붙었다 떨어지고, 저녁밥을 푸기 위해 솥뚜껑을 열려고 하자 솥뚜껑이 밑으로 빠져 밥을 푸지 못하게 하는 등 온갖 해괴한 일들이 꼬리를 물자 동네 사람들은 비각을 뜯어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영험한 무당을 통해 원인을 알고 보니 그 비석을 세운 자리가 도깨비 혈인지라 집을 지으면 도깨비들을 노하게 하여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행정 마을은 도로를 경계로 비석이 서 있는 도로 동쪽에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한다.






십승지길 : 10:03 십승지길 127(주천 11.2km, 운봉 3.7km)~십승지길 90(가장교)~10:29 십승지길 1번지(덕산교)



십승지 (十勝地)는 정감록(鄭鑑錄)에 근거한 지명을 말하며, 십승지지라고도 한다

에덴동산, 천국, 극락, 무릉도원, 유토피아와 같은 관념적 이상세계를 일컫는 말이 있고 복지(福地), 명당(明堂), 길지(吉地), 낙토(樂土) 등은 현실의 이상향을 표현하는 말들인데 그 중 하나 승지(勝地)라는 말이 있다.

승지라는 말은 정감록(鄭鑑錄)에 근거한 역사적 용어이며 사전적 의미로는 자연경관과 거주 환경이 뛰어난 장소를 말한다.

특별히 십승지(十勝地)는 조선시대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던 도참서(圖讖書)인 정감록(鄭鑑錄)에 등장한 키워드로 자연환경이 좋고 외침이나 정치적인 침해가 없으며 재난 재해 없이 자족적인 경제생활이 충족되는 가장 안전하고 살기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춘 10곳을 말한다.

십승지는 여러설이 있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1)풍기의 금계촌(金鷄村),
2)안동의 화곡(華谷, 현 봉화 춘양면),
3)보은 속리산 아래 증항(甑項) 근처(현 상주 우복동),  
4)남원 운봉의 지리산 아래 동점촌(銅店村),  
5)예천의 금당동(金堂洞, 금당실 마을),
6)공주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
7)영월의 정동상류(正東上流),
8)무주의 무풍동(茂豊洞,
9)부안의 변산(邊山) 호암마을,
10)성주 기야산의 만수동(萬壽洞) 등이다


가장길


<가장(佳庄) 마을>
가장(佳庄)마을은 풍수지리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아름다울 가(佳)' 자에 '단장할 장(粧)' 자를 써서 가장리(佳粧里)라 불렀는데,
지금은 들녘에 농사짓는 움막 터를 뜻하는 '농막 장(庄)' 자를 써서 가장리(佳庄里)로 쓰고 있다.
'아름답게 단장하는 선녀의 마을'이 '아름답게 농사짓는 움막 터의 마을'로 바뀌게 된 셈이다. 
마을 사람들은 가장마을이 '옥녀봉 아래에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玉女織錦)의 천하명당'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마을이 뱀 형국으로 마을 앞에 입석을 세워 뱀의 기를 눌러 마을의 액 막음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300여 년 전 이곳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동복 오(吳)씨와 강릉 유(劉)씨라고 하며, 그 후 창녕 조씨와 김씨, 박씨 등이 입주하게 되었다.
오석의 '가장마을' 표석이 있는 운봉로에 접속하여 좌틀하여 진행한다. 


仙遊亭建立碑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가 화장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아름다울 가(佳)자를 넣어 마을 이름을 佳粧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터(씩씩할) 장(庄)로 바꾸어 佳庄이라 쓰게 되었다.
선녀가 화장하는 가장마을에 아담한 모정의 좌우에는 세걸산(1220m)과 고리봉(1304m), 그리고 수정봉이 평풍처럼 솟아 있으며 풍성한 인심과 수려한 자연 경관을 살피면서 피로를 씻고 미래를 설계하는 휴식처가 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정은 정부 보조금 壹阡五百원과 민부담금 參百五拾만원으로 6평에 한옥건물을 신축했다.
우리 모두는 합심하여 번영과 21세기를 向하여 풍요롭고 복지로운 우리마을 建設에 精進합시다.
1998 4 17



질미고개길 : 10:39 질미고개길151(주천9.1km, 운봉5.8km) : 동복오씨묵제공파 우암공가족묘원 입구~11:28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주천7.6km, 운봉7.3km 주촌3길 96-23ㆍ질미고개길 2 교차점) 입구  


주촌3길
11:28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 전 주촌3길 96-23ㆍ질미고개길 2 교차점(주천7.6km, 운봉7.3km) 입구            



노치길 : 11:32 주촌3길~11:35 노치마을회관 앞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이순신장군은 경남합천으로 백의종군하던 도중, 1597년 4월 25일 운봉(박룡 혹은 박산취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냅니다. 이때 권율도원 수가 전남 순천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다음 날 아침 구례로 항합니다. 구례로 가기 위해서는 여원재로 되돌아가 주천을 거처 갈 수 있겠으나, 이곳에서는 남원의 아름다운 지리산둘레길 '운봉~주천' 구간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여원재로 되돌아갈 경우, 이백면사무소로 내려서면 약 4km 거리에 주천면 외평마을이 있습니다. -남원시-


<노치마을>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고랭지로서 서쪽에는 구룡폭포와 구룡치, 뒤에는 덕음산이 있고 지리산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다. 
산줄기의 높은 곳이 갈대로 덮여 있어 ‘갈재’라 부르기도 했다. 
노치마을은 비가 내려 왼쪽 주천면으로 빗물이 흐르면 섬진강이 되고 오른쪽 운봉읍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는 수분령(水分嶺) 마을이다. 
그러나 일제가 백두대간의 목을 눌러 기운을 끊는다고 이 마을 앞 들녘에 큰 구덩이를 파고 100kg이 넘는 거대한 목돌 6개를 설치했다는 참담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는 목돌 5개를 파내어 아랫 당산(큰바위) 위에 지어진 마을회관 옆에 모아두었다. 
‘목조임돌’ 또는 ‘잠금돌’이라고도 하는 이 목돌은 일제의 간교함을 증언하는 역사적 유물이다. 
그 옆에는 백두대간 표지석이 있다. 
노치마을 윗 당산 소나무숲의 수령 800년 된 할아버지 나무께서 이 마을을 수호하고 백두대간의 정기를 지켜주시기를 빌어 본다.



구룡폭포길
11:35 노치마을회관 앞~12:00 구룡폭포길 264, 지리산첫길 478 삼거리 정자나무 쉼터(주천5.8km, 운봉9.1km)


<회덕마을>
회덕마을은 임진왜란 때 밀양 박(朴)씨가 피난 와서 살게 된 것이 마을을 이룬 시초라고 한다. 원래는 마을 이름을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 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고 해서 '모데기'라고 불렀다. 그 뜻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을 한곳에 모아 이 마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둘레길 따라 잠시 내려서니 앞쪽으로 운봉고원 들판이 펼쳐지는데,

바로 앞 비닐하우스는 폐업한 '임금댁쉼터'이고, 내림길에 본 차림표의 '정자나무 쉼터'는 도로 건너편에 있다. 

고향산천(비석)
포근한 부모님품 있고
의지할 곳 정이 있어 좋은
우리의 고향산천
산ㆍ계곡ㆍ맑은물ㆍ넓은들판
수 놓여 있는 우리의 고향땅
나무내음 물내음에 도취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우리의 보금자리
수많은 추억들 살아 숨쉬고
고향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의 고향산천을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리라
2003년 11월


<회덕마을 샛집(덕치리 초가)>
회덕마을이라는 이름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을 한 곳에 모아 마을을 이루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원래는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고 해서 “모데기”라 불렀다. 
회덕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아 짚보다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때는 마을 전체가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샛집’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예전에는 샛집이 부잣집이었고 초가집은 가난한 집이었다고 한다.
고원지대인 운봉에는 폭설이 자주 내리니 용마루를 높이고 지붕을 경사지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숨어든 왜군 패잔병들이 처음 샛집을 짓고 살았다고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일본의 전통가옥(합장집)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지도에는 '덕치리 초가'로 표시되어 있고 ‘구석집’이라 불리는 마을 안쪽 귀퉁이의 초가집은 1895년에 지은 후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전쟁 후에 다시 지었다.
이 ‘덕치리 초가’는 조선시대 형식의 샛집으로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구석집 사랑채 마루에 앉으면, 집 앞 논밭 너머로 지리산의 줄지은 봉우리가 펼쳐진다.
둘레길에서 아주 살짝 비껴 있지만, 아기자기한 샛집도 둘러보고 잠시 다리쉼을 하고 가도 좋다.

좌측 고리봉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 너머에서 퍼지는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지리산첫길
12:00 구룡폭포길 264, 지리산첫길 478 삼거리 정자나무 쉼터(주천5.8km, 운봉9.1km)~14:05 장백산로 둘레길 교차 삼거리 : 지리산첫길 2(주천0.8km, 운봉14.1km) : 냇가 건너 개미정지까지 4km는 산길로 접어 든다


<사무락 다무락>
'사무락 다무락'의 '사무락'은 '바램/사망(事望)', '다무락'은 '담벼락의 남원 말'이 운율에 맞춰 변천된 것으로, '소망을 비는 돌담 또는 담벼락'이라는 말이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무사함을 빌고 액운을 막아 화를 없애고자 지날 때마다 돌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사무락 다무락' 이정표 곁에는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와 성황당 돌무더기가 자리하고 있다. 


노치마을 백두대간 여가캠핑장~ 광한루 구간 14.8km 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는데 뜬금없이 이정표가 듬성듬성 놓여 있다.


연리지(용) 소나무
사랑은 하나이어라  :  글 윤영근(소설가)

두 소나무가 서로 접목된 이 연리지(連理枝) 나무는 일심동체로 남녀 이성간의 화목은 물론 깊은 애정도 그려주고 있으며 또한 비상(飛翔)하려는 용의 형상을 지니고 있어서 이 명품 용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거나 소원을 빌면 모든 이들의 행운과 건강이 오래오래 이어진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백두대간 천 세월 묻어둔 이야기로 아낌없이 몸 비벼 싹튀운 정 산속에 잠재운 그 사랑노래 늘 아름답구나   남원시


<구룡치(九龍峙)>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계곡을 넘어가는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인데, 주천면의 여러 마을과 멀리 달궁마을에서 남원장을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고개였다. 달궁마을 주민들은 거리가 너무 멀어 남원 장에 가려면 2박 3일에 걸쳐 다녀와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구룡치를 장길로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백중 (음력 7월 15일) 이 지나면 마을별로 구간을 나누어서 길을 보수하여 왔는데, 지금도 길 옆에 돌로 축대를 쌓아 놓은 곳 등이 남아 있어서 예전의 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솔정지(솔정자)>

정지가 쉼터라는 뜻이므로, 소나무 쉼터라는 의미다. 즉, 솔정지는 20여 년 전만 해도 나무하러 지게를 지고 가다가 고개를 오르기 전에 땀을 식히고 주천 들녘과 멀리 숙성치와 밤재를 바라보던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던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정유재란 당시 숙성치를 넘어 남원성을 향하는 왜군을 향해 조경남 장군이 활시위를 당겼던 곳이라고도 한다.


개미정지 - 서어나무 쉼터

지리산둘레길이 열리자 묵었던 이곳에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쉬었다 갔다.
길이 새로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로 뿌리가 드러나 복토를 하고 서어나무의 안녕을 빌었다.
세월의 녹이 낀 서어나무는 속이 비었다.
비었으나 생명의 줄기를 이어간다.
신비롭다.

개미정지로 일컫는 이곳은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다 여기서 잠이 든 의병장 조경남의 발을 개미들이 물어뜯어 위급함을 알렸다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이곳 서어나무 쉼터는 재너머 지리산 속 주민들이 남원장을 다녀갈 때 이고 지고 가던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옹기종기 쉬어가던 옛 주막터이기도 하다.


<내송마을(안솔치)>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 년 전 한양 조(趙)씨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후로 경주 김(金)씨, 서산 류(柳)씨 등 여러 성씨들이 차례로 들어와 30여 호 마을을 이루면서 주위의 비옥한 농토와 산림을 토대로 부유한 마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마을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에는 뒷산 고개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 쇠고개, 우치동으로 불렸으나 마을 주변에 송림이 무성하여 솔고개로 불리다 내송(內松)이 되었다. 
내송마을에는 두꺼비를 닮은 바위처럼 생긴 청동기시대 고인돌이 남아 있어 복을 가져다주고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이곳 출신 조경남(趙慶南) 장군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에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웠고 그가 남긴 일기인 <난중잡록>은 지방유형문화재로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내송마을 버스정류장에는 화장실이 있고, 해발 500m 내외의 운봉고원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안내판이 있다.



장백산로
14:05 장백산로 둘레길 교차 삼거리 : 지리산첫길 2(주천0.8km, 운봉14.1km)~
14:15 비부정沸釜亭 : 장백산로 28(주천0.3km, 운봉14.6km)    


沸釜亭(비부정)

그 옛날 그 길목에 주막 하나 있었네

전남지방, 경남일부에서 한양 가는 유일한 옛길 전남경계 숙성치 - 윈터거리 - 솟보거리 - 목넘어 고개-응냥 마필이 쉬어가는 옛날역전을 거쳐 한양을 가는 길목 솟보거리주막, 신라시대에는 함양을 거쳐 경주로 통하였고 조선시대에는 한양 가는 유일한 길로.. 지금은 그 자리에 沸釜亭(비부정이라는 쉼터가 자리 잡고 있으니 그 기운을 다시한번 길가는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주막酒幕
시골길거리에서 밥과 술을 팔고 나그네에게 잠자리도 제공한 집 주막집, 탄막, 여점, 이점, 점막 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후 烏嶺院(조령원), 洞華院(동화원) 등 관설 원이었다.









원터마을(외평) 유래

1390년경 채씨(蔡氏)와 정씨(丁氏)가 들어와 터를 잡기 시작하였으며 고려조 이래 조선말기까지 응양(현재 이백면 효기리)에서 원님이 말을 갈아타고 이곳 현 파출소 앞에서 일단 쉬어가는 곳이어서 원터거리라 하였는데, 경치가 수려하여 감탄을 자아낸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통일신라 때부터 교통의 중심지로써 국가에 납품하는 물자를 생산해낸 지역(원무곡)이었으며 조선조 말까지 원천원(元川院: 국가에서 운영하는 숙박업소)이 있었다.
1885년(고종 22년)에 면 중앙지로서 위치를 정하고 하원천방(下元川坊)의 소재지로서 원터라는 마을명칭으로 불리운다.

마을이 내방(內坊)과 외방(外坊)으로 나누어 있었으며 내방은 물이 많아 근심이 없다하여 무수(無愁)라 불리고, 외방은 땅이 건조하여 들의 내부분이 밭으로 구성되어 받들이라고 부르다 외방 외(外)자와 밭들의 전평(田坪) 평자를 따서 외평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