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함미성~탑영제 2024.11.23
681.1m의 숫마이봉, 687,4m의 암마이봉으로 구성된 두 봉우리의 마이산!
그 안에는 수많은 신비와 전설, 그리고 지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부부인 것처럼 서있는 모습이 음양오행 사상으로 풀이되기도 하며, 때로는 풍수설화에 오르기도 한다.
또한 신라시대부터 나라에 제향을 올리는 명산이기도 하다.
현재 국가지정 문화재(명승 제12호)와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특히 경관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술갱 그린가이드북에서 만점을 받은 명소이다.
또한, 천연기념물 제 386호 청실배나무, 제380호 줄사철나무 등의 우수한 생태자원을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마이산은 약 1억년 전 자갈과 모래, 진흙 등이 쌓여 만들어진 암석(역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암마이봉 남쪽에는 타포니라 불리는 거대한 구멍 혹은 동굴을 관찰할 수 있는 진안 무주 지질공원의 대표 명소이다.
합미산성 0.5km
광대봉 3.1km
고금당 5.5kn
明麗閣
馬耳山(夫婦山) 기슭에 夫婦詩碑 세운 뜻은!!!!
湛樂堂 河 립(1769-1830)과 三空港 金 氏(1769-1823)는 韓国中世文學史上 唯一한 夫婦詩人이며 三宜堂 金氏는 女性의 忠을 强調한 단 한분의 女流詩人으로서 當時 至苦至難한 "삶" 속에서도 至高至纯한 珠玉같은 가장 많은 詩를 後世에 남기시니 그 超越的 達觀의 詩香과 얼을 받들어
여기에 詩碑와 明麗閣을 세워 모시고 每年 夫婦 同生年月日인 10月13日에 馬耳白日場이 열리고 있다
第13回馬耳白日場에 즈음하여
글 鎮安文化院長 安 鎰
글씨 恩 津 宋 锡 五
西紀1996年10月13日
鎮安郡守 林 守 鎮 세움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 유지 湛樂堂 河昱 三宜堂 金氏 夫婦 遺址
진안군 향토문화유산(기념물)
1. 유적지: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 유지湛樂堂 河昱 三宣堂金氏夫婦遺址
2. 시대: 조선시대~현대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와 관련된 유적은 부부 시비, 집터, 묘소 등이 있다.
진안의 부부 시인인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씨를 기리기 위해 1983년 '담락당·삼의당 기념 사업회'에서 남부 마이산 탑영제 근처에 부부 시비를 건립하였다.
시비에 담락당의 시 「초야창화初夜唱和」와 삼의당의 시 「화답의 노래를 나란히 새겼다.
시비 오른쪽에는 부부 재각인 명려각明麗閣이 있다.
부부가 살았던 마령면 방화마을 고택에는 현재 축대 흔적만 남아 있다.
묘소는 덕현리 원덕마을회관에서 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산 중턱에 있으며, 부부의 봉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삼의당의 시문집 『삼의당집三宜堂集』은 필사본으로 전하다가 1930년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여성의 시문집이 전해지기가 어려웠다는 점에서 삼의당의 문학적 열정과 『삼의당집』의 가치는 매우 높게 평가된다.
삼의당의 시에는 조선 후기 몰락한 양반가 여성의 일상이 잘 나타나 있다.
담락당은 삼의당이 시에 대한 열정을 펼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었으며, 시문집 『담락당집』 을 남겼다. 부부 시비를 통해 진안의 부부 시인 담락당과 삼의당의 문학적 위업을 확인할 수 있다.
[금당사 석탑 金塘寺石塔]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금당사 석탑은 2층 기단바닥돌부 위에 세워진 석탑이다.
현재는 5층으로 이루 어져 있으나 3층부터 5층까지의 탑신부(몸돌부)만이 원래의 석탑 부재이며, 1층과 2층은 옥개석(지붕돌)이 두툼하고 층단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다른 석탑의 부재를 모아 쌓아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는 돌이 없어져 다른 돌로 대신하였으며, 상륜부 역시 없어진 것을 후대에 만들어 올려놓았다.
이 탑은 인근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규모 석탑으로, 구조나 제작 수법을 보아 고려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석탑이 크게 파손되었으나, 숙종(1674~1720)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고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