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 2-2, 2024.09.24
감악산 정상 ~ 운계릉선 ~ 손마중길 ~ 법륜사 ~ 출렁다리
14:30 감악산 정상에서 운계능선ㆍ손마중길ㆍ까치봉ㆍ법륜사ㆍ출렁다리ㆍ주차장으로
14:32 감악산 정상에서 운계능선으로 하산 길의 팔각정자 전 전망대
14:39 팔각정자 : 정상 150m, 까치봉 360m, 객현리 2,450m
14:50 까치봉 560m
15:09 삼거리 : 선고개 1,260m, 까치봉 630m, 법륜사 1,290m
15:14 삼거리 : 정상 1,380m, 손마중길 740m, 묵은밭 120m
15:33 삼거리 : 법륜사 1,060m, 정상 2,110m, 선고개 1,340m
15:43 운계전망대 삼거리 : 운계전망대 70m, 법륜사 300m, 선고개 2,100m
15:44~15:49 운계전망대
15:52 운계전망대 삼거리로 되돌아 옴
15:56~16:04 법륜사
16:10 처음 시작했던 청산계곡 갈림길로 회귀
16:16~16:28 감악산 출렁다리
16:28 감악전망대
16:33 감악산 출렁다리 입구 데크
감악산(紺岳山)
파주시 적성면, 양주시 남면, 연천군의 경계에 위치하는 해발 675m의 산으로 삼국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으며, 고려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감악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 도성을 중심으로 북악ㆍ송악ㆍ관악ㆍ삼악 등과 함께 경기 오악(참고 : 감악ㆍ관악ㆍ송악ㆍ운악ㆍ화악산)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산에는 법륜사를 비롯하여 수월사 봉암사 미타암 등 당과 절이 있으며 산의 정상에는 감악산 신라 고비(속칭 빗돌 대왕비, 설인귀 사적비)가 있는데 이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던 삼국간의 혈투장이었고 거란 침입과 한국 전쟁때 고량포 싸움의 주 전지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명칭 유래
예로부터 바위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 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하여 감악산(紺岳山), 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렀다.
현황
산 서쪽 자락에는 범륜사와 운계폭포가 자리잡고 있고,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임꺽정굴과 임꺽정봉이 있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격전지(고랑포 전투)였으며, 설마계곡 입구에 영국군 참전기념비가 있다.
형성 및 변천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를 모신 감악사(紺嶽祠)가 있었으나 지금은 유지조차 찾을 수 없으며, 산 정상에 감악산비(파주시 향토유적)가 남아 있다. 이 비는 글자가 마모되어 없다고 하여 몰자비, 또는 빗돌대왕비, 설인귀사적비 등으로 불리는데, 비의 형태가 북한산 진흥왕순수비(공식명칭: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와 흡사하여 진흥왕순수비로도 추정한다.
이 백옥 관음상은 높이가 7미터 아래 좌대가 약 4미터 정도로 중국 아미산에서 캔 백옥으로 조각된 상이다.
문수보살님은 천수경에 등장하는 환희장마니보적불(歡喜藏摩尼寶積佛)이시다.
나무화석
화산 폭발과 지각 변동으로 나무가 땅속에 오랜 세월(약 6천5백만년~2억5천만년) 묻혀 있는 동안 광물질(주로 규토SIO2성분)이 나무 속으로 스며들어 나무 성분은 녹아서 빠져 버리고 복잡한 화학 작용을 통해 나무가 화석화 한 것으로 자연의 위대한 유산이자 보석입니다.
다채로운 형상은 화석이 되는 과정에서 스며드는 광물질에 따라 다양한 색과 성질을 가지게 됩니다.
본 목화석은 1992년 중국에서 반입하였습니다.
YTN 2024.02.11 15:52
오늘(11일) 새벽 6시 50분쯤 경기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에 있는 법륜사에서 불이 났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불은 사찰 본당 1개 동을 태우고 근처 산림까지 번졌다가 2시간여 만에 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