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순창군

강천산 2024.08.05

방극만 2024. 8. 6. 20:06



10:30 강천산 주차장에서 입장하려는데 노인 나이가 65세에서 70세로 높아졌다    
10:37 병풍바위ㆍ병풍폭포가 있는 첫 번째 다리 도선교道詵橋
10:40 금강교金剛橋
10:46 금강계곡입구 금강교金剛橋에서 맨발로 걷기 : 관리사무소 0.5km, 강천사 1.5km,  구장군폭포 2.3km,  옥호봉 2.65km
10:55 어미바위와 아비바위 전망대 : 숲이 우거져 볼 수가 없다.
10:57 송음교松蔭橋
10:58 거라시(걸인)바위, 거라시 굴
11:08 용소(仙潭ㆍ玉女潭)
11:09 극락교極樂橋
11:11 강천문剛泉門
11:14 강천사 대웅전
11:16 절의탑節義塔, 삼인대三印臺 : 관리사무소 1.63km, 전망대 1.5km, 구장군폭포 0.95km, 광덕산 2.18km
11:20 삼인정三印亭
11:25 십장생교十長生橋
11:30 비룡교飛龍橋
11:31 현수교 아래
11:32 구장군폭포300m 전 다리
11:35 애추지형
11:42~12:04 구장군폭포

12:10 사방댐삼거리에서 형제봉ㆍ왕자봉ㆍ현수교 산행 : 관리사무소 2.73km, 형제봉삼거리 1.7km,선녀계곡 0.1km, 송낙바위 1.23km
12:16 강천제2저수지 : 설치년도 2015, 유역면적 157ha, 만수면적 6.53ha, 유효저수량 653.6m2, 수혜면적 84.3ha
12:37 강천제2저수지 끝부분 : 구장군폭포 0.85km, 형제봉 1.4km
13:30 형제봉삼거리 : 구장군폭포 1.85km, 왕자봉 0.99km, 북문 3.68km, 송낙바위 3.28km
13:41 형제봉 565m :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줄기차게 14:02 왕자봉~현수교로 가는 전망대까지 21분 동안 쏟아진다
체온이 떨어질 정도로
13:49 퍼붓는 소나기 속의 왕자봉삼거리 : 깃대봉삼거리 1.39km, 왕자봉 0.2km, 현수교 1.0km, 형제봉삼거리  0.78km
13:54 왕자봉584m : 강천사 1.1km, 현수교 0.8km
14:00 현수교로 내려가는 전망대
14:41 현수교사거리
14:44 현수교 : 1980.08,  연장 76m, 높이 50m, 폭 1m, 최대 50명
14:54 현수교 입구로 나옴
15:31 부도전 두꺼비 바위
16:02 병풍바위ㆍ병풍폭포
16:06 강천산 매표소 앞 출구를 빠져 나오다


병풍바위ㆍ폭포 : 병풍처럼 펼쳐졌다하여 병풍바위라 불리고 볼록한 등에 목을 쭉 빼고 있는 모습이 거북이 모양으로 거북바위라고도 부른다.
그리 깊지않은 이 곳 소는 밤마다 신선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노는 곳으로 어느 날 신선이 목욕을 하고 그만 갓을잊고 올라 갔는데 그 갓이 변한 갓바위가 병풍바위 아래에 놓여 있다.
병풍폭포는 병풍바위를 비단처럼 휘감고 있는 폭포로, 전설에 의하면 병풍바위 밑을 지나온 사람은 죄진 사람도 깨끗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거라시(걸인)바위, 거라시 굴 : 예로부터 문전걸식 구걸해온 걸인들이 이 굴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냥을 받아 강천사 스님에게 시주를 하고 부처님께 복을 빌었다는 나눔을 실천했던 장소로 전해오고 있다.


순창의 강천산에는 두 개의 용소가 있다.
위에 있는 윗용소(숫용)는 신선이 내려와 목욕을 했던 곳이라 하여 선담仙潭이라 부르고,
아랫용소(암용)는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던 곳이라 하여 옥녀담玉女潭이라 부른다.
용소는 깊이는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명주실 한 타래가 들어갈 만큼 깊다고 한다.


강천사 :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 도선국사에 의거 창건


삼인대 : 중종 10년(1515)에 중정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청하는 상소를 올린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류옥柳沃의 의로움일 기리는 비석이다.
단경왕후 신씨는 폐위된 연산군의 처남으로 중정반정 때 피살된 좌의정 신수근씨의 딸이다.
반정공신 박원종 등은 자신들의 손으로 죽인 신수근의 딸을 왕비로 세우면 후환이 있을것이라 염려하여 중종에게 신씨를 폐출하게 하였다.
그 후 새로 왕비가 된 장경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고, 관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죽음을 각오하며 폐비 신씨의 복위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이들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유배(죄인을 먼 곳으로 보내 그곳에 거주하게 함)에 처해지는 형벌을 받았다.
영조 20년(1744)에 호남과 순창 지역의 유림이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비와 함께 비각을 세우고 삼인대라 불렀다.
삼인대의 비문 이재가 지었고, 전액(篆額 : 篆字體로 비석의 윗부분이나 머리돌에 비의 명칭을 세긴 부분)은 유척기가, 글씨는 민우수가 썼다.


모과나무 :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무렾에 심어진것으로 추정되는 300년 이상의 나이로 높이는 약 20m이고, 수관 폭은 3.1m로 주변 환경과 함께 조화로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강천사에 머물던 스님이 심었다는 이야기와 순창 출신 실학자인 신경준申景濬이 심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삼인정 : 이 정자는 삼인대三印臺 옆에 있는 곳으로 삼인정三印亭으로 이름지어 강천산剛泉山에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삼인대의 충절의리忠節義利 정신을 알리고자 함이다.
삼인三印이란 1506년 이조참판을 지낸 성희안成希顔과 중추부지사 박원종朴元宗 등이 폭정으로 국가의 기틀을 흔들어 놓은 연산군燕山君을 몰아내는 중종반정中宗反政이 성공하자 연산군의 처남이며 중종의 장인인 신수근愼守勤을 제거하고 중종의 비妃인 신씨愼氏 부인을 폐위하여 숙의윤씨淑儀尹氏를 비로 책봉했는데 10년 후에 돌아가시자 당시 순창군수 충암沖庵  김정金淨(1486~1521)선생, 담양부사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선생, 무안현감 석헌石軒 류옥柳沃(1487~1519)선생이 죽음을 무릎쓰고 신씨 부인을 다시 복위시키고 반정공신들의 죄를 논하여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쓰실 때 이 곳 소나무에 세 분의 직인을 걸어놓은 것을 말한다.
신씨 부인은 폐위된지 233년이 지나 1739년 영조英祖가 단경왕후端敬王后라 추상追上하고 능을 온릉溫陵이라 하였다.
삼인정三印亭의 글씨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선생의 글씨를 집자(글씨를 쓰거나 시를문을 짓기 위해서 옛 문헌이나 비첩碑帖 따위에서 필요한 글씨를 찾아서 모음)한 것이다集河西先生筆.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배향 된 하서 선생은 장성 출신으로 젊은 시절 눌재 박상선생을 찾아가 수학受學하였으며, 또한 강천사에서도 공부하셨다.
그리고 처갓집과 어머니 고향은 바로 이곳 순창이시다.



강천산 2024.08.05 - https://bkm2400.tistory.com/m/2755

강천산 2024.08.05

사방댐삼거리 ~ 형제봉 ~ 왕자봉 ~ 현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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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바위ㆍ폭포 : 병풍처럼 펼쳐졌다하여 병풍바위라 불리고 볼록한 등에 목을 쭉 빼고 있는 모습이 거북이 모양으로 거북바위라고도 부른다.
그리 깊지않은 이 곳 소는 밤마다 신선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노는 곳으로 어느 날 신선이 목욕을 하고 그만 갓을잊고 올라 갔는데 그 갓이 변한 갓바위가 병풍바위 아래에 놓여 있다.
병풍폭포는 병풍바위를 비단처럼 휘감고 있는 폭포로, 전설에 의하면 병풍바위 밑을 지나온 사람은 죄진 사람도 깨끗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