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올레길/지리산둘레길 4차

지리산둘레길4차 7구간 역방향 운리~성심원 2024. 11. 17

방극만 2024. 7. 9. 14:48



여정 19.4km = 지리산둘레길7코스 운리에서 8.1km ~ 웅석봉 등산 6.83km ~ 둘레길6코스 성심원으로 3.54km


07:51 산청군 단성면 운리에서
산청읍 읍내리 성심원 방향으로
지리산둘레길7코스를 역방향
중간 웅석봉 밑 헬기장 전 운리 8.1kmㆍ성심원 4.5km 지점에서 둘레길 종료 하고
웅석봉 등산길 6.83km (오름 2.29km와  내리 5.3km를 따라 십자봉등산로입구(십자봉 2.25km, 내리저수지 0.76km)까지 하산 길 4.54km) 와 성심원까지 둘레길6코스 3.1km의 총 여정 18.03km 트레일


운리(雲里)는 탑동, 본동, 원정 등 3개 동네를 말한다.



단속사지 : 운리 탑동마을


단속사지
산청군 단성면 운리, 지리산 줄기가 힘차께 뻗어 내려오다가 멈춘 옥녀봉 아래 남향으로 자리한 단속사 절터에는 동.서의 삼층석탑과 주춧돌이 어지러이 놓인 가운데 매화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매화나무로서는 수령이 가장 오래된 정당매(政堂梅)이다.


후계목식재
정당매가 노거수로 수세가 좋지 않아 2013년 가지의 일부를 접목으로 번식 하여 2014년 완전 고사된 정당배 옆에 후계목을 식재하여 관리하고 있음
2014.03.20 산청군수


南冥先生詩興

유정산인에게 준다. 贈山人惟政
꽃은 조연(槽淵)의 돌에 떨어지고
옛 단속사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
정당매 (政堂梅) 푸른 열매 맺었을 때
花落槽淵后 春深古寺臺
別時勤記取 靑子政堂梅
단속사에 들린 사명당에게 준 시이다



탑동마을 단속사터
탑동마을은 원정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단속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하여 탑동이라 한다. 단속사(斷俗寺)는 말 그대로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뜻으로, 신라 경덕왕 때의 신충이라는 대신이 지리산으로 출가해 지었다는 설이 있다. 경덕왕이 두 번이나 불렀으나 신충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단속사를 짓고 속세를 떠났다고 한다.
신라 경덕왕 때 솔거가 그린 유마상이 있었다고 하는 단속사터에 현재 절집은 없고, 보물인 동서 삼층석탑 2기와 당간지주 2기가 남아, 과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단속사 옛터의 금당터 앞에는 동서로 두 탑이 서 있는데,
그중 동쪽에 세워진 것이 이 탑으로, 2단의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의 모습이다.
기단의 아래층은 [ㄴ]자 모양의 돌을 이용해 바닥돌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그 위로 기단을 한 층 더 올린 후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쌓아 탑신을 올려놓았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상·하의 비례가 적당하고, 위로 오를수록 탑신의 크기가 균형을 이루도록 구성되어 있어 그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함께 세워져 있는 서탑과 비교할 때 그 규모와 수법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쌍탑의 배치와 더불어 주목되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조성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속사지에는 신라시대의 유명한 화가 솔거가 그린 유마상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알 수가 없으며, 동 삼층석탑은 신라 중기 이후의 전형적인 신라 양식을 갖추고 있다.
특히 기단부가 상·하 2층이며, 하층의 탱주가 2주이고, 상층의 탱주가 1주인 점은 신라 중대 이후의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산청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山清斷俗寺址 東・西三層石塔
East and West Three-story Stone Pagodas at Dansoksa Temple Site, Sancheong

보물  Treasure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돌이나 나무로 만든 조형물로, 실제 사리가 없더라도 부처를 모신 신성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과 산청 단속사지 서 삼층석탑은 단속사지의 금당 터 앞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불탑이다.
기단, 몸돌과 지붕돌, 머리 장식이 남아 있는데, 기단은 2단이고 몸돌과 지붕돌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 장식은 일부만 남아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아래층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이 2개 있고 위층 가운데에는 1개만 있으며,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고, 모서리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쳐 두는 네모난 장식인 노반(露盤)과 연꽃 모양의 장식인 앙화(仰花)가 남아 있다.

장식이 많지 않고 간략하다는 점에서 9세기 통일 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문화재이다.



정당매각政堂梅閣



인재 강희안(1419~1464)의《양화소록(養花小錄에)》에 보면 우리 선조 통정공께서 소년시절에 지리산 단속사에서 글공부를 하실 때에 손수 매화 한 그루를 뜰 앞에 심어놓고, 시 한 수를 읊었다고 씌여 있다.
여기서 인재가 말하는 선조는 고려 말기의 문신인 통정(通亭) 강회백(1357~1402)으로 우왕2년(1376)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점점 높아져서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성과 문하성의 종2품 벼슬)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공양왕 4년(1392) 정몽주가 살해된 뒤 진양에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후 태조 7년(1398) 동북면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되었다.
그는 경남 산청 출신으로 강희안의 조부가 되며 통정이 소년시절 정당매를 심고 시를 읊었다.

통정집에 기록된 또 하나의 시는 그가 46세로 일생을 마치기 전에 손수 심은 정당매를 찾아와 읊은 시로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과 감회를 느끼게 한다.
단속사의 스님들이 공의 재덕(才德)을 생각하고 깨끗한 풍채와 고매한 품격을 사모하여 그 매화를 보면 곧 공을 본 듯 하였다.
해마다 흙으로 뿌리를 다져주고 북돋아 기르기를 때를 맞춰 알맞게 하였다.
그 가지의 모양이 가까스로 굽고 또 푸른 이끼가 나무줄기를 감싼 것이 《매보(梅譜)》에서 말한 고매(古梅)와 다름이 없으니 참으로 영남의 한 고물이라 하겠다.
이로부터 영남에 나랏일로 오는 사람들이 이 고을에 오면 누구든지 단속사를 찾아서 그 매화를 감상하고 우리 선조의 시운에 맞춰 시를 써서 문 위에 걸어놓곤 하였다.
이와 같이 단속사의 스님들은 이 매화나무를 극진히 보살피게 되었고, 통정공의 후손들과 영남에 내려오게 된 관리들이 정당매를 찾게 되었다.

이 매화나무의 나이는 통정공이 소년시절 단속사에서 글을 읽을 때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가 이 절에서 공부한 시기를 20세 이전의 등과하기 전으로 본다면 대체로 1376년 이전에 식재된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수령은 630년이 넘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정당매는 높이 8m에 둘레가 1.5m로서 근간에서 4본의 지간이 생겨 위로 혹은 옆으로 뻗었다.
꽃의 색깔은 백색이며 홑꽃이다. 3월 20일 전후이면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려 맑은 향기를 퍼뜨린다.
후손들은 이 정당매를 기념하기 위하여 비각을 짓고 비를 세웠다. 매각(梅閣)은 1915년에 매비의 건립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정당매각(政堂梅閣)'이란 넉자로 된 현판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는 매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정당매각기(政堂梅閣記)'와 통정공의 매화원운(梅花原韻)의 시와 후손들의 시 여러 편이 걸려 있다.
현재 이 정당매는 1982년 11월 10일자로 경상남도의 도나무(고유번호 12~41호)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산천재의 ‘남명매’ 남사마을의 ‘원정매’와 더불어 산청의 3매중 하나이다.





물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물을 소기 마시면 우유기 되네
지혜로운 이는 보리를 이루고
어리석은 이는 생사를 이룬다.

보왕삼매론

1.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병고를 좋은 약으로 삼아라.

2. 삶에 어려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어려움이 없으면 고민과 사치가 일어나니니 근심과 곤란을 함께 삶을 이루어라.

3.공부하는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운 것이 넘쳐 건너 뛰니 장애는 소요하는 것으로 삼이라.

4.수행에 마가 없기를 버리지 말라.
수행에 마가 없으면 굳건해 지지 못하니 마귀무리도 가르침의 벗으로 삼아라.

5.일을 처리할 때에 쉽게 이루길 바라지 말라.
열어 섞으면 뜻도 경솔하고 오만해 지나니 어려운 일을 즐거운 안락으로 삼이라.

6.친구를 사귐에 내가 이롭기를 버리지 말라.
나만의 이익은 의리를 심하게 하니니 손해된 벗도 자본과 양식으로 삼아라.





7. 남이 나에 순종하기 바라지 말라.
남이 순종하면 스스로 뽐내게 되나니 반대하는 이들을 동산의 숲으로 삼아라.

8. 덕을 베풀어도 보답을 바라지 말라.
답을 바람은 이익을 도모함이니 덕을 베품을 헌 신처럼 버려라.

9. 이익을 분에 넘게 바리지 말라.
이익이 분수에 넘으면 어리석은 마음이 발동하니 작은 이익을 부귀로 삼아라.

10. 억울함을 당해도 밝히려 하지 말라.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나니 억울함을 감수하여 나아가는 문으로 삼아라.


남의 허물을 꾸짓지 말고 스스로를 힘써 되살펴 보라.
그대가 이것을 바로 알면 근심이 영원히 없어지리라.


지혜로운 이는 쌀을 찌어 밥을 짓고 지혜없는 이는 모래 찌어 밥을 짓네.
행동 지혜 구비되면 수레바퀴 둘이 되고 나도 남도 이로우면 새의 날개 둘과 같다.


성불정사成佛精舍입구 : 웅석봉 5.7km, 성심원 8.7km, 운리 3.9km    
베푸는 이 깨끗히면 받는 이 없고 받는 이 깨끗하면 베푸는 이 없다.
주는 물건 맑으면 받는 이 없고 받는 물건 맑으면 베푸는 이 없다.
삼륜이 청정하면.



운리에서 8.1km 트레일 후 웅석봉 등산을 위해 성심원까지 4.5km는 생략 함


점촌마을
점촌은 쇠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던 점이 있었다 하여 점촌이라 불렸다.
내려갈수록 멀리 있던 청계저수지가 가까이 다가온다. 깊은 골에 맑은 물이 고인 산중호수다.
지리산 끝자락인 웅석봉 아래에 자리 잡은 청계계곡은 많은 이들이 찾는 휴양지다. 청계저수지가 생기면서 점촌마을이 수몰되고, 저수지 주변에 전원주택과 펜션들이 지어졌다.



웅석봉 하부헬기장
웅석봉은 산청읍 내리에 자리 잡고 있는 1,099m의 높은 산이며 지라산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웅석봉은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경사가 심하고 험하다.
하지만 곳곳에서 만나는 이름 없는 폭포와 아기자기한 소(물웅덩이)는 험난함을 잊게 한다.
지리산둘레길은 웅석봉 정상을 오르진 않으나, 아침재에서 오면 가빠진 숨이 턱에 차오를 무렵 고갯마루에 올라서는 지리산둘레길 최고의 된비알을 참을성 있게 올라야 하는 난이도 상의 구간인데 역방향의 오늘 트레일은 그렇지 않는 해발 약 800m의 웅석봉 하부헬기장이다.
곰바우산 꼭대기를 눈앞에 둔 지점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으로 꺾인다.
임도를 따라 걷는 오르막길로  ‘달뜨기 능선’(지리산 치밭목 쪽에서 쳐다보면 달이 뜨는 능선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웅석봉에서 감투봉까지의 능선을 일컫는다.)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웅석봉 능선을 바라보며 올라간다.


아침재
어천마을을 경유하는 순환구간과 성심원-운리구간이 만나는 곳.
아침재는 풍현마을과 어천마을 사이의 고갯길로 참나무숲과 솔숲, 히어리 군락지를 지난다. 히어리는 이름이 외래어 같지만 순 우리말이며(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지리산 곳곳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어천마을
어천마을은 산청군 단성면과 산청읍의 경계에 있는 경호강변의 마을이다.
예전에 어리내라 하고 우천(愚川)으로 부르다가 어천(漁川)이 되었다.
피서지로도 꽤 알려진 어천계곡이 마을을 지나는데, 지금은 작은 마을 전체가 별장과 펜션으로 변신을 거듭해 예전의 오지마을 모습은 거의 사라진 셈이다.
마을 앞 경호강은 지금은 다소 탁해지고 낚시보다는 래프팅이 먼저 떠오르는 지역이지만, 예전에는 쏘가리나 꺽지가 많이 잡히는 낚시 명소였다고 한다.



성심원
성심원은 1959년 프란치스꼬 수도회의 일원인 작은형제회 소속으로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꼬스탄죠쥬뽀니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에 따라 소외된 이웃인 한센인들을 받아들여 보호와 치료에 헌신하였다.
지금은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복지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아직도 사회적 차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열린 시설로의 변화를 위해 지리산둘레길이 지나면서 공간을 개방하였지만, 현재는 이곳을 통과하진 않는다.
성심원 내에 있던 지리산둘레길 산청센터는 자리를 옮겼고, 성심원 앞 옛 나루터를 지나



웅석봉

웅석봉 2024.11.17 - https://bkm2400.tistory.com/m/2866

웅석봉 2024.11.17

웅석봉(1,099m)꼭대기가 곰같이 생겼다는 웅석봉(熊石峰)은 유산(楡山)·웅석산으로 불린다.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할 정도로 산세가 험하며 가뭄이 든 해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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